[SPECIAL REPORT] 6·12 북미 정상회담 취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회담 취소까지 긴박했던 순간들
볼턴 ‘리비아식 핵폐기’ 거론하자
김계관 “정상회담 재고려” 발끈
트럼프 ‘북한 뒤에 중국’ 의심 시작
실무 협의 미국 요청도 바람맞혀
표면적으로 이 같은 기류에 찬물을 끼얹은 계기는 13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북한에 ‘리비아식 핵폐기’를 적용하겠다고 공식화한 것이었다. 며칠 뒤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트럼프 행정부가 일방적인 핵 포기만을 강요하려 든다면 조·미 수뇌회담(북·미 정상회담)에 응하겠는가를 재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반발했다. 이날 북한은 또 16일 한·미 연합훈련 ‘맥스선더’를 빌미로 남북 간 고위급 정상회담을 취소했다. 북한이 수십 년 동안 써온 ‘벼랑끝 전술’의 재등장이었다.
속사정은 더 복잡했다. 김정은은 폼페이오의 2차 방북 직전인 이달 7~8일 중국 다롄으로 날아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났다. 3월 하순 베이징 극비 방문 이후 43일 만의 전격 회동이었다. 김정은은 “미국의 선(先) 폐기, 후(後) 보상 방식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시진핑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김정은이 북한으로 돌아간 당일인 8일, 시진핑은 트럼프와의 전화통화에서 “쌍방(북·미)이 단계를 나눠 상응하는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주장해온 ‘단계적 비핵화’ 옹호였다.
이는 김계관의 “정상회담 재고” 발언이 나오자 곧바로 트럼프가 북한의 뒤에 중국이 있다는 ‘시진핑 배후론’을 제기하게 만든다. 트럼프는 17일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과의 면담 자리에서 “북한이 중국과 만났을 때 상황이 조금 바뀌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런 실망감은 22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고스란히 표출됐다. 트럼프는 문재인 대통령을 옆에 두고 “우리가 원하는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회담이 열리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회담 취소 가능성을 눈치조차 채지 못했다.
북한은 한술 더 떴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23일 저녁(미국시간)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을 겨냥해 “무지몽매” “아둔한 얼뜨기”라고 비난하면서 “미국이 우리를 회담장에서 만나겠는지, 아니면 핵 대 핵의 대결장에서 만나겠는지는 전적으로 미국의 결심과 처신 여하에 달려 있다”고 위협했다.
그동안 미국과의 협상에서 배제돼 있던 외무성 라인(김계관-최선희)의 재등장과 이들의 ‘판깨기 협박’ 전술을 백악관은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백악관엔 이들을 상대하며 북한의 기만을 경험해온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있었다. 볼턴은 최선희의 담화가 발표되자마자 트럼프에게 보고했고, 트럼프는 곧바로 국가안보팀 회의를 소집해 정상회담 취소 문제를 논의했다. 회의엔 마이크 펜스 부통령,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 폼페이오 국무장관,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등 극소수만 참석했다. 트럼프는 24일 아침 김정은에게 회담 취소를 알리는 공개서한을 작성했다. 회담 취소 논의에서 결정까지는 12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서울=조진형 기자 jjpo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