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균의 현장 속으로] 리더십의 결정적 순간들 - 링컨의 피스메이커
링컨은 원칙이다. 그의 심성은 겸손과 관용이다. 목표 실현은 정교하고 치열했다. 그는 마키아벨리 근성도 차출한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링컨(Lincoln)’은 그런 승부사적 면모를 표출한다.
남북전쟁이 유혈로 넘치면서
타협해 휴전하자는 여론확산
링컨은 정치 위기에 몰렸지만
‘정의 평화’ 고수해 연방을 복원
링컨의 전쟁수행, 냉혹했지만
적의 항복순간 관용으로 전환
전범 없는 장엄한 서사시로 마감
한반도 평화, 협정문으론 안 돼
북한 핵 폐기의 완전한 실천으로
링컨 방식은 역사적 상상력 자극
그의 삶은 선명하지만 다면적이다. 1865년 4월 9일 남부가 항복했다. 닷새 뒤에 암살당한다(56세). 성공의 절정에서 비극적 최후다. 그 시대 미국의 분단→내전(남북전쟁)→재통일(연방 복원)은 역사적 감수성을 자극한다. 그 기억의 현장은 끊임없이 나를 끌어들인다.
링컨은 그것을 분열의 반역(rebel)으로 규정했다. 북부 연방(19개 주)은 인구(1900만 대 900만)·경제력에서 압도했다. 남부 연합은 역사적 상징성에서 우세했다. 링컨 이전 대통령은 15명. 그중 7명이 버지니아주(워싱턴DC 바로 밑) 출신이다. 조지 워싱턴(초대)·토머스 제퍼슨·제임스 매디슨·제임스 먼로·윌리엄 해리슨·존 타일러·재커리 테일러다. 그것은 남부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강화했다.
그곳에 링컨의 얼굴상(像)이 있다. 그의 게티즈버그 연설문이 붙어 있다. “새로운 자유의 탄생.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 3분 짜리의 짧은 연설. 272개 단어다. 링컨은 전쟁 의미를 압축했다. 연설은 대중의 민주 의식과 전쟁 의지를 키웠다. 버락 오바마는 대통령 시절에 “링컨의 위대함은 말과 의지로 미국을 통합하고 세상을 바꾼 것”이라고 했다. 지도자는 언어로 상황의 주도권을 잡는다. 말의 파괴력은 축약으로 커진다.
대통령 선거가 다가왔다. 야당은 타협 평화론(compromise peace)으로 기선을 잡았다. 링컨의 위기다. 그에 대한 불신과 비판도 커졌다. ‘독재자, 폭군, 무능한 링컨.’ 링컨도 낙선의 불안감에 시달렸다. 하지만 그는 신념과 의지를 단련했다. “가치 있는 목적(worthy object)을 달성할 때까지 전쟁이 끝나지 않아야···”( 도리스 굿윈 『경쟁자들의 팀』)목적은 연방 복원(재통일)과 노예제 폐지다.
협상평화론은 링컨에겐 악몽이었다. 역사가 셸비 푸트는 “협상으로 전쟁을 중단하면 노예제 폐지는 휴지로 바뀌고, ··· 그런 평화는 다시 깨질 수 있다는 게 링컨의 확신”(『남북전쟁』)이라고 했다. 링컨은 평화 지상주의를 경멸했다. 그것은 “나쁜 평화라도 전쟁보다 낫다”는 주장이다. 링컨은 그것을 ‘비굴한 위선’으로 파악했다.
링컨의 통찰은 21세기 한국에 역사적 지혜와 상상력을 준다. 한반도 평화는 협정문으로 얻을 수 없다. 평화 조건은 비핵화의 완전한 실천이다. 기존의 북한 핵무기를 집중해 검증하고 없애야 한다. 일관성은 기적을 생산한다. 9월 초 승전보가 날아왔다. 북군의 윌리엄 셔먼 장군이 조지아주 애틀랜타를 점령했다. 그곳은 남부의 심장부. 링컨의 인기는 다시 올라갔다. 유권자들은 남부의 항복 가능성을 기대했다.
나는 월더니스 전투의 재현 현장에 갔다. 그곳 전시관에 작은 사진이 있다. 그림을 찍은 것이다. 1865년 3월 말 링컨은 그랜트의 사령부(버지니아주 시티 포인트)를 찾았다. 거기에 셔먼, 해군제독 데이비드 포터도 합석했다. 그림은 북군 최고 통수권자와 지휘부의 전략논의 광경이다. ‘피스메이커스(The Peacemakers)’-. 그림의 제목이다. 그들의 평화제조는 타협방식을 제외한다. 평화는 적을 굴복시켜 만든다. 링컨은 ‘완전한 승리, 완벽한 평화’에 몰두했다. 그 그림은 백악관, 펜타곤(국방부)에 걸려 있다.
4월 3일 남부연합의 수도 리치먼드(버지니아주)가 함락됐다. 남부 대통령 제퍼슨 데이비스는 도망쳤다. 그곳 트레데가 제련소 박물관에 조촐한 링컨 동상이 있다. 동상 돌담의 글귀가 뇌리를 파고든다. "원한을 품지 말고···나라의 상처를 꿰매자.” 그것은 링컨의 재선 취임 연설문이다. 다음 말은 그의 평화 철학을 집약한다. “정의롭고 영원한 평화(just and lasting peace)를 이룩하고 소중히 간직···.” 정의로운 평화만이 지속 가능하다.
남부가 항복했다. 미국은 재통일됐다. 연방의 복원이다. 그 순간 링컨의 드라마는 요동친다. 거대한 반전(反轉)으로 진행한다. 4년 전쟁 동안 남·북 군인 62만 명이 죽었다. 그 숫자는 20세기 미군의 전체 전사자(1차+2차 세계대전+6·25+베트남전)보다 많다. 반역·배신에 대한 응징·처벌은 경험과 관례다. 하지만 링컨은 과거와 결별했다. 용서하고 사면했다. ‘전범(戰犯) 없는 전쟁’으로 마무리했다. 그 서사시는 장엄한 평화로 마감한다.
애퍼매톡스 종전 장소 … 역사의 절제는 위대한 드라마를 만든다
양쪽의 간판 장군들이 나왔다. 승자는 북군의 율리시스 그랜트, 패장은 남군의 로버트 리다.
그곳은 역설적 파격이다. 어떤 기념비, 동상도 없다. 추모비와 동상, 전적비로 넘치는 게티즈버그와 다르다. 입구부터 조용하다. 평범한 안내판과 국기게양대뿐이다. 전쟁 시절의 목책, 건물들이 유적지를 지킨다. 안내판 설명문이 시선을 잡는다. “이곳에서 리와 그랜트 그리고 그들의 지친 군대는 미국 역사에서 위대한 드라마를 연출했다.” 글 속에 승자의 환희, 패자의 절망이 없다. 그것은 격정(激情)을 누르는 숨 막히는 절제다. 그것은 링컨의 종전 정신이다. 화려한 웅변이나 감동적 회고보다 가슴을 찌른다. 전적지 안내자는 “같은 국민 간 내전(civil war)은 외국과의 전쟁보다 잔인하다. 교훈과 반성 등 어떤 의미의 기념비도 전쟁의 반목과 갈등을 재생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이곳은 간결하다”고 했다.
내전의 후유증은 깊다. 증오와 원한의 상흔(傷痕)은 오래간다. 그 때문에 남부에서 링컨의 기념상은 찾기 힘들다.
그곳의 풍광은 관대한 항복 조건을 상기시킨다. 남부의 체제 반역은 재앙적 희생을 낳았다. 하지만 누구도 체포돼 처벌받지 않았다. 리 장군은 고향으로 갔다. 그는 대학총장으로 제2 인생을 살았다. 애퍼매톡스의 절제는 역사의 경외감을 생산한다. 한반도 화해의 새 시대에 영감을 준다.
(미국)=글·사진 박보균 대기자 bgpar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