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엇갈린 시간을 이어주길

중앙일보

입력 2018.05.05 02:00

수정 2018.05.05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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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樂: 북한의 클래식 연주가

2006년 신나라뮤직에서 나온 백고산 바이올린 솔로 음반

두어 해 전 일이다. 우연히 알게 된 분이 SNS 상에 연주 동영상을 하나 올렸다. 모스크바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그분의 딸과 동문수학하는 천재 피아니스트의 연주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엄·친·딸’ 연주인 셈이다. 처음에는 유학생 부모들의 흔한 자식자랑 정도로만 여겨 그 동영상으로 세 번이나 놀라게 되리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영상이 시작되자 흰 드레스를 입은 소녀가 무대에 등장했다. 의자가 낮았는지 낑낑대며 높이를 조정했다.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곧 장내가 정리되고 소녀는 호흡을 골랐다. 그리고 바흐의 평균율을 연주했다. 눈 녹은 물이 흐르듯 아름다웠다. 이어지는 쇼팽의 스케르초는 충격이었다. 건반에서 불꽃이 튀었다. 나이답지 않게 강렬하고 확신에 찬 연주였으며 강약의 조절도 뛰어났다. ‘대한민국 피아니스트의 층이 참으로 두텁구나’하며 아빠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소녀의 신상을 확인하고는 두 번째로 놀라고 말았다. 그는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음악원에서 공부하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출신의 마신아였다. 유소년 국제 콩쿠르에서 여러 차례 우승하며 기대주로 주목받고 있던 친구였다.  
 
세 번째 놀람은 내 마음속의 장벽을 들켜버린 충격 때문이었다. 냉전시대 소련 피아니스트 에밀 길렐스나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의 등장에 미국인들이 놀랐던 것처럼 말이다. 북한에도 굉장한 수준의 클래식 연주자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그런 가능성에 대해서 거의 생각해보지 않았다. 내가 아는 유일한 북한 연주자는 10여 년 전 음반으로 나와 한두 번 듣고 잊어버린 바이올리니스트 백고산(1930~1997)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북한 최고의 바이올린 연주자 백고산은 신동이었다. 1936년 4월 7일자 조선중앙일보 기사에는 ‘천재 제금가(提琴家) 백고산 소년’이라는 제목으로 그의 사진이 실려 있다. 평양에 살던 그의 가족은 중국 하얼빈으로 이주했다가 해방 이후 북한으로 돌아간다. 이후 청년 백고산은 차이콥스키 음악원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게 되는데 당시 그를 눈여겨 본 이가 세기의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였다. 백고산은 그의 제자가 된다. 이후 백고산은 58년 제1회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수상하고 78년부터는 이 대회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며 북한을 대표하는 음악가로 자리 잡는다.
 
그의 음반에는 정서적으로 공감하기 쉬운 민요풍 곡들과 사회주의 리얼리즘 계열의 곡이 들어 있다. 상대적으로 전자가 듣기 좋다. 눈에 띄는 곡은 그가 작곡한 무반주 바이올린 ‘아리랑 변주곡’이다. 이국적이고 서글픈 서주가 끝나고 본조 아리랑의 주선율이 등장한다. 높은 음역에서 기교 섞인 변주가 빠르게 진행된다. 이어 음역이 낮아지며 곡은 자유롭고 격정적으로 발전해 나간다. 녹음상태는 좋지 않지만 백고산의 자작자연을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유산이다.  
 
고향과 관련된 두 곡도 듣기 편안하다. 김길학 작곡의 ‘고향길’은 낮은 담장들 사이로 이어지는 고향의 봄길을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아름답게 묘사한다. ‘고향마을’ 역시 피아노의 분산화음으로 시작하여 가요풍의 친숙한 멜로디가 정감어린 고향의 모습을 그려낸다. 반면 ‘굴진공’ ‘용광로가 보이는 바닷가에서’ 같은 협주곡들은 기교적으로 돋보이기는 하지만 녹음의 질도 많이 떨어지고 정서적으로도 크게 와 닿지 않는다.  
 
2018년 한반도의 봄은 어느 때보다 따뜻하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무언(無言)의 음악이 서로 엇갈린 시간을 잇는 고리가 되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북한 연주자들의 바흐와 베토벤을 남쪽 무대에서 듣게 되는 날을 고대한다. ●
 
글 엄상준 TV PD 90empero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