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6일(현지시각) 캐나다 밴쿠버역에 안내 방송이 울려 퍼지자 승객 200여 명이 환호성을 질렀다. 함성을 덮어버리듯 ‘로키 마운티니어(Rocky Mountaineer)’의 기적 소리가 울렸다. 2박 3일 동안 밴쿠버에서 밴프까지, 로키 산맥을 가로 지르는 955km의 탐험이 시작됐다. 로키 마운티니어의 2018년 첫 기차였다.
로키산맥은 캐나다 서부 브리티시컬럼비아주부터 미국 남서부 뉴멕시코주까지, 4800㎞에 이르는 날개를 펴고 있다. 6월 이른 여름과 9월 이른 가을이면 우리는 로키산맥에서 계절의 한 묶음을 볼 수 있다. 예컨대, 산머리께에선 만년설의 위용을, 산허리에서는 지난 가을 떨어진 나뭇잎들의 잔흔과 이제야 치고 올라가는 신록의 여흥을, 산발치에서는 초록의 만발을 볼 수 있다. 흑곰·무스·늑대가 곳곳에서 튀어나오고 물수리, 흰머리독수리는 하늘을 휘젓는다. 그 로키로 들어간다.
프레이저강 끼고 ‘지옥의 관문’으로
미국 산호세에서 온 게리와 아그네스 부부. 둘 다 80세가 되면 이 로키 마운티니어에 오르기로 했단다. 게리는 지난 3월에, 아그네스는 지난해 80세 생일을 맞았다. 게리와 아그네스가 태어나기 훨씬 전, 아마도 그들의 할아버지·할머니가 태어나기 이전인 1850~60년대에 캐나다엔 골드러시 광풍이 불었다. 로키 마운티니어는 이때 들어선 마을들을 스치고 지나간다. 애거시즈와 호프, 보스턴 바….
■ 2018년 첫 운행 캐나다 ‘로키 마운티니어’를 타다
밴쿠버~밴프 955㎞ 달린 2박3일 호화 열차여행
시속 60㎞, 전 세계 여행자와 자유로이 어울리고
해발 3000m 산마루 보며 특급호텔 식사ㆍ서비스
게리와 아그네스 부부는 무거운 트렁크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열차 스태프들이 호텔과 버스 등으로 트렁크를 ‘알아서’ 전달해 준다. 게리와 아그네스가 열차에서 내려 배정된 숙소의 문을 열자 트렁크가 기다리고 있었다.
승무원이 짐 운반·호텔 체크인까지
뉴질랜드에서 온 에버데일의 눈가는 촉촉했다. 슈스와프(Shuswap)호수를 지날 때였다. 터키석 색을 발하는 호수 뒤에는 하얀 구름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순간, 열차는 속도를 늦춘다. ‘볼만한 곳’에서는 천천히 눈과 가슴에 담아가라는 신호다. 열차가 로키 산맥으로 빨려 들어간다. 만년설 쌓인 웅장한 꼭짓점들이 반겨준다.
열차는 평균 시속 60㎞로 느릿느릿하게 가지만 스태프들은 바쁘게 움직인다. 방금 아침식사를 끝냈는데, 객차마다 한 명씩 배정된 셰프가 벌써 점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침과 점심 사이에는 주전부리와 음료를 내준다. 음료에는 와인·위스키·맥주도 포함된다. 식사 메뉴는 웬만한 호텔 수준. 데워서 내주는 비행기 기내식과 달리 직접 조리해서 준다.
객차에는 스태프 2명이 더 있다. 가는 곳마다 역사와 에피소드를 전달해 준다. “자, 조금 있으면 파란 지붕 밑에서 매거릿이 손을 흔들어 줄 겁니다. 벌써 10년째랍니다.” 그러면 여지없이 5초 뒤 한 중년 부인이 손을 흔드는 식이다.
열차는 ‘분수령’에 오른다. 콘티넨털 디바이드(Continental Divide)다. 해발 1626m, 열차 여행의 최고점이다. 서쪽으로 내려가던 강물은 이제 동쪽으로 흐른다. 스마트폰 시계가 자동으로 한 시간 앞당겨졌다. ‘퍼시픽’ 시간대에서 ‘마운틴’ 시간대로 들어서면서다.
캐슬 마운틴(Castle Mountain)을 지나며 열차는 다시 기분 좋은 늑장을 부린다. 성채처럼 웅장하다고, 말 발길에 차여 혼수상태 신세를 져야 했던 헥터가 산에 붙인 이름이다. 2차 대전 후에 캐나다 정부에서 연합국의 수장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의 이름을 이곳에 갖다 붙였지만, 뜬금없다 싶었는지 현재는 ‘아이젠하워 마운틴’보다 캐슬 마운틴으로 불린다.
종착역인 밴프. 에버데일은 대기하고 있는 6대의 리무진 버스 중 하나에 올랐다. 이미 호텔 체크인은 로키 마운티니어에서 해준 상태였다.
열차 내린 뒤 밴프 시티투어
미국·중국인으로 구성된 젊은이 네 명과는 공교롭게도 일정이 상당 부분 겹쳤다. 중국인 수잔은 “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들이 놓은 철도를 보고 싶었다”고 했다.
19세기 후반, 중국인은 캐나다 철도 건설의 막강한 인력이었다. 1만여 명이 미국에서 건너와 일당 1달러로 일했다. 당시 다른 중국인들의 하루 수입은 7센트 수준이었다. 그들은 큰돈을 쥐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대부분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괴혈병·천연두로 쓰러졌고 암반을 깨뜨리려고 사용한 다이너마이트의 희생자가 되기도 했다. 캐나다에 남은 중국 노동자들은 브리티시컬럼비아에서 거대한 차이나타운을 일궜다.
이곳에서 게리·아그네스 부부를 다시 만났다. 게리와 아그네스는 밴프에서 하루를 더 묵은 뒤 버스를 이용해 재스퍼로 이동, 다시 로키 마운티니어를 이용해 밴쿠버로 돌아간다고 했다. 수잔 일행은 로키 마운티니어에서 제공한 리무진 버스를 이용해 캘거리로 이동한 뒤 비행기 편으로 밴쿠버로 간다고 했다. 그만큼 로키 마운티니어의 일정 옵션이 다양하다. 게리·아그네스 부부는 골드리프(Gold-leaf)를 이용했고, 수잔 일행은 그보다 조금 저렴한 실버 리프(Silver-leaf)를 이용했다.
◇여행정보=로키 마운티니어의 객실은 실버리프와 골드리프로 구분된다. 객실 등급에 따라 식사·호텔도 달라진다. 출발 시기와 투어 옵션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5~9월 실버리프 1799캐나다달러(약 150만원)부터. 국내 여행사 샬레트래블(02-323-1062)이 항공·호텔을 포함한 6박8일 로키 마운티니어 상품을 판다. 캐나다관광청 홈페이지(keepexploring.kr/mosaic/travel/tView/rm) 참조.
밴쿠버·밴프(캐나다)=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