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투자은행가 존 피어폰트 모건 1세가 1913년 숨을 거두며 남긴 유언의 한 대목이다. 돈을 지급하는 일을 아들 모건 2세에게 맡기진 않았다. 아내를 위해 펀드를 설정한 뒤 금융인 한 명을 관리자로 지명했다. 우울증에 앓고 있는 아내가 실수로 유산을 탕진할까 걱정되서다. 이 펀드는 요즘 미국 수퍼리치(super rich)들이 활용한다는 ‘가문재산 관리회사(패밀리오피스)’의 20세기 초 버전이다.
가문 헌장 만들어 탈선 미리 방지
국외로 재산 옮겨 상속세 회피도
미국의 부호들을 다룬 부와 민주주의의 지은이인 케빈 필립스는 “패밀리오피스는 후손이 사치나 사업 실패 등으로 재산을 날리지 않도록 해줄 뿐 아니라, 재산을 불려 태어나지 않은 먼 후손이 풍요로운 생활까지 할 수 있도록 하는 놀라운 발명품”이라고 말했다.
패밀리오피스의 핵심은 패밀리펀드(FLP, family limited partnership)다. 애초 FLP는 가문의 재산을 운용하기 위한 펀드였다. 그런데 미국 세법의 규정 때문에 상속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패밀리펀드를 통해 이자소득이나 배당 등을 자녀들에게 지급하면 미혼자녀의 경우 해마다 1만5000달러까지 증여세가 면제된다. 결혼한 자녀의 경우는 3만 달러다. 아들, 손자, 며느리 등이 12명에 이른다면, 결혼한 상태를 기준으로 연간 36만 달러(약 3억8000만원)에 대해선 증여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아도 되는 셈이다. 다만, 후손이 펀드 자체를 상속받으면 지분에 따라 상속세를 내야 한다. 펀드가 미래에 벌어들일 수익은 상속세 대상이 아니다.
패밀리오피스의 주요 업무 가운데 하나는 재산의 국외 이동(international relocation)이다. 최근 미국 패밀리오피스는 상속세율이 낮거나 아예 0인 나라들에 패밀리펀드를 설립해 운용하고 있다. 호주나 오스트리아, 스웨덴 등이 대표적으로 상속세가 없는 곳이다. 이들 펀드가 상속세 면세 지역에 설립되지만 주요 투자한 곳은 애플 등 미국계 기업과 미 국채 등이다. 상속세 면제를 내세워 미국 부호의 자금을 유치한 나라의 경제엔 별 도움이 안 된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까닭이다.
요즘 미국 수퍼리치는 패밀리오피스를 차리지 않아도 된다. 다른 수퍼리치의 패밀리오피스가 이들의 재산까지 관리하는 자산운용사로 바뀐 경우가 많아서다. 대표적인 예가 록펠러금융서비스(RFS)다. RFS는 록펠러 가문뿐 아니라 다른 수퍼 리치들이 남긴 유산을 관리해 주는 ‘유산관리 전문 자산운용사’다. 자산 규모는 400억 달러(약 42조8000억원) 이상이다. 고객이 RFS에 전화만 하면 컨설턴트가 나와 가문헌장 제정, 패밀리펀드 설립, 해외 이전 등을 도맡아 처리해준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