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박 전 대통령 죽어 나오란 거냐” 문 “나도 안타깝다”

중앙일보

입력 2018.04.14 02:37

수정 2018.04.14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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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 홍준표 첫 단독 회동

문재인 대통령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13일 오후 청와대에서 만나 남북 정상회담 등 외교·안보 분야,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을 둘러싼 논란 등 국정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뉴스1]

문재인 대통령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13일 오후 전격 회동했다. 문 대통령으로선 취임 11개월 만에 처음으로 제1야당 대표와 단독 회동한 것이다. 한국당은 ‘영수(領袖) 회담’이라고 주장했다.

 
양측은 이날 따로 브리핑했고 합의문이나 공동성명 등은 나오지 않았다. 1시간20분 동안 진행된 회동에서 문 대통령은 “남북, 북·미 대화에 반대하지 말라”고 요청했고, 홍준표 대표는 “김기식 금감원장을 해임하라”고 답했다고 한다.

홍 대표, MB 구속에 대해선
“아들·형 잡고, 부인 잡아넣고…”
문 대통령 “청와대 사안 아니다”
홍장표 경제수석 해임 요구도

이날 회동은 문 대통령이 전날 임종석 비서실장을 통해 남북대화 등 안보에 국한된 회담을 제안했지만, 홍 대표가 국내 현안으로 주제를 넓히자고 역제안했고 이를 청와대가 수용하며 성사됐다.
 
이날 회담에서 홍 대표는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의 임명철회를 요구했다. 문 대통령은 요구에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는 게 청와대의 전언이다. 홍 대표는 그러나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문 대통령은) 요청에 대해 즉답은 없었지만, 나는 ‘김 원장은 집에 보내는 게 아닌가’라고 현장에서 느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이 그만두도록 하는 걸 임명철회로 표현할 수 있는지를 놓고 대화하던 중 문 대통령이 “아 임명철회라고 할 수도 있겠다”고 답한 대목을 두고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그러나 “문 대통령은 홍 대표의 김 원장 사퇴 요구에 답변 없이 듣기만 했다”며 “문 대통령은 이 문제에 대해 일절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홍 대표는 또 ▶북한의 1년 내 리비아식 핵 폐기 ▶한·미 동맹 강화 노력 ▶대통령 발의 개헌안 철회 ▶한국당 의원들에 대한 수사 중단 ▶대통령의 지방선거 중립 및 지방출장 자제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 해임 등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홍 대표는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판도 언급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이 뇌물 사건인데 추징금이 0원이었다. 추징금 0원인 뇌물 사건을 본 일이 있느냐”며 “나이가 66세인데 24년을 살면 90세다. 죽어서 나오란 말인가. 그게 상식에 맞는 판결이라고 보느냐”고 따졌다. 이 전 대통령에 대해선 “대통령을 잡아넣었으면 됐다. 아들 잡고 형 잡고, 부인 잡아넣고 꼭 그렇게 해야 한다고 보느냐”며 “이제 그만해도 됐다”고 했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이 저렇게 된 건 나도 안타깝다. 정치보복 문제는 청와대가 개입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고 말했다고 회담에 배석한 강효상 대표 비서실장이 전했다.
 
안보 문제를 두곤 팽팽했다. 문 대통령은 “남북대화가 시작된 만큼 야당의 건전한 조언과 대화는 바람직하지만, 정상회담을 부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홍 대표는 “대화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며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기회인 만큼 과거의 잘못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 이 과정에서 문 대통령은 수차례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반대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홍 대표는 “마치 (내가) 정상회담을 반대하는 것이 부담돼 부른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올 정도로 ‘반대하지 말라’는 그 논리만 계속 얘기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정상회담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8번에 걸쳐 북핵(에 대해) 거짓말을 한 정권이 9번째에는 진실을 말할 거라고 믿는 게 너무 순진한 발상 아니냐고 말했다”고 했다.
 
사실상 토론도 벌였다.
 
홍준표 대표=“북한의 위장전술이 의심돼 회담 실패 가능성이 높다. 미국과의 관계도 원활하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그렇지 않다. 북·미가 굉장히 진중한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
홍 대표=“한·미 관계가 걱정스럽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THAAD) 체계, FTA(자유무역협정) 이런 문제로 신뢰 관계가 없어진 것 아닌가.”
문 대통령=“한·미 관계에는 이상이 없다. 평창올림픽만 하더라도 긴밀한 관계를 통해 진행됐고 모든 사안을 긴밀한 협력과 협조 하에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일자리 확대를 위한 추가경정예산에 협조해 달라는 요청을 했고 홍 대표는 “추경은 김성태 원내대표의 사안이라 내가 왈가왈부할 수 없다. 김 원내대표와 의논해 보겠다”고만 답했다. 문 대통령은 회담을 마치며 “여야정 상설협의체가 활성화됐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회동에 대해 “80분 회담의 70%는 정상회담 등 안보 문제를 논의했고, 나머지 모든 국내 현안을 합해도 30%도 되지 않았다”며 “국내 현안에 대해서도 홍 대표가 주로 말을 하고 문 대통령은 경청했다”고 말했다. 홍 대표도 “김 원장의 거취와 관련한 내용은 1분이었다”고 전했다.
 
홍 대표는 이후 기자들과 만나 “왜 문 대통령이 40분 동안 정상회담 반대하지 말라고만 말했는지 판단해 보라”며 “(정상회담 진행 상황에 대한) 내 느낌을 말할 수 없지만 뭔가 문제가 있으니까 제1 야당 대표를 부른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하지만 “문 대통령이 직접 반대 의견에 대해 청취하고 가장 많은 반대를 하는 한국당에 생각을 충분히 전달하고 싶어했다”며 “야당의 우려에 대해서도 남북뿐만이 아니라 북·미, 북·중 간 국제 협력을 통해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걱정 안 해도 된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자리일 뿐 특별한 의미는 없다”고 말했다.
 
강태화·김경희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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