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슈올레는 2012년 2월 29일 사가(佐賀)현 다케오(武雄市) 코스가 개장한 이래 지난해까지 모두 19개 코스가 열렸다. 올해도 두 개 코스가 개장했다. 지난 10일 오이타(大分)현의 사이키·오뉴지마(佐伯·大入島) 코스가, 11일 후쿠오카(福岡)현의 지쿠호·가와라(筑豊·香春) 코스가 각각 문을 열었다. 이로써 규슈올레는 21개 코스가 됐다. 전체 길이는 243.1㎞다.
일본 규슈올레 20, 21 코스 개장
한적한 섬 사이키ㆍ오뉴지마 코스
50년 전 끊긴 학교 가는 길 되살려
산골 광산마을 지쿠호ㆍ가와라 코스
신라인의 구리 제련기술 전파 흔적
학교 가는 길 - 사이키·오뉴지마 코스
오이타현 맨 남쪽 해안마을이 사이키시다. 규슈에서 가장 면적이 큰 시라지만, 인구 7만여 명의 한갓진 지방 도시다. 한때는 번창했다는 조선업이 쇠락의 길에 접어든 지 오래, 도시는 한가롭다 못해 허전하다. 변변한 명소도 없어 한국인은커녕 일본인의 발길도 뜸하다.
사이키 항구 앞바다에 길게 누운 섬이 오뉴지마(大入島)다. 둘레 17㎞에 불과한 섬의 이름이 거창하다. 섬을 돌아서 항구를 들락거렸던 사이키 어민의 정서가 밴 듯하다. 이 섬에 규슈올레 20번째 코스가 들어섰다. 조선업이 호황일 때는 주민 수가 5000명이 넘었다는데 지금은 700명도 안 된다. 섬 주민 대부분이 앞바다에서 굴·진주 따위를 키우며 산다. 말하자면 사이키·오뉴지마 코스는 낙도 올레길이다.
항구에서 보면 섬은 벽처럼 서 있지만, 하늘에서 보면 호리병 모양이다. 남북으로 기다란 섬을 올레길이 종단하듯이 들어섰다. 길의 절반은 해안을 따라 이어지고, 나머지 절반은 섬 복판의 산 두 개를 넘는다. 길이 10.5㎞의 트레일에 난이도 ‘중·상’을 매긴 까닭이다. 해발 200m 언저리라 해도 섬 산행은 힘들다. 해발 0m에서 산행이 시작되거니와 섬 산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경사가 심하다. 체력이 달리면 산 하나는 안 넘어도 된다. 해안을 따라 대체 코스를 조성했다.
길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듯하다. 산길 대부분이 50년쯤 전에 끊긴 학교 가는 길을 이은 것이어서다. 섬 주민들이 지난해 넉 달 동안 500만 엔(약 5000만원)을 들여 옛 등굣길 일부를 복원했다. 올레길의 절반 정도가 옛 등굣길이다. 해안을 따라 도로가 깔리면서 산을 넘는 등굣길도 자연스레 지워졌다. 그 사연 많은 길이 올레길로 거듭난 것이다. 길은 새로 내는 것이 아니다. 잊힌 옛길을 되살리는 것이다. 하여 길을 걷는 것은, 길을 걸었던 누군가의 흔적을 되새기는 일이다.
신라의 흔적 - 지쿠호·가와라 코스
규슈는 일본 열도를 이루는 큰 섬 4개 중에서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섬이다. 하여 규슈는 예부터 한민족과 교류가 활발했다. 백제 무령왕이 태어난 섬이라는 전설이 규슈 북쪽 가라쓰(唐津) 앞바다의 가카라시마(加唐島)에 전해온다. 규슈 남쪽의 화산은 아예 이름이 한국악, 가라쿠니다케(韓國岳)다. 가야 유민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집결했던 도시도 가라쓰였다. 그 유적을 따라 규슈올레 가라쓰 코스가 들어서 있다. 조선 도공이 끌려와 뿌리를 내린 땅도 여기 규슈다. 아리타(有田)·이마리(伊万里) 같은 도자 마을, 도자 가문 심수관(沈壽官) 모두 규슈에 있다.
신라는 없었다. 뻔질나게 규슈를 드나들었어도 신라와 얽힌 역사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신라의 흔적을 찾았다. 후쿠오카(福岡)현 내륙 깊숙한 곳에 들어선 지쿠호·가와라 코스가 신라의 숨결을 찾아가는 길이다.
지쿠호는 후쿠오카 내륙 산간지역을 가리키는 전통 지명이고 가와라가 행정 지명이다. 가와라는 마치(町)다. 우리나라의 읍·면 단위로, 가와라 인구는 1만 명이 겨우 넘는다. 지쿠호·가와라 코스는 강원도 정선 같은 내륙 산골 에 들어선 시골길을 닮았다.
굳이 정선을 떠올린 것은 가와라가 광산으로 이름난 고장이어서이다. 특히 사이도쇼(採銅所) 광산의 구리는 역사가 깊다. 8세기 이 광산에서 캐낸 구리로 거울을 만들었고, 이 거울은 지금도 일본 천황 가문을 받드는 신사 우사진구(宇佐神宮)에 모셔져 있다. 가와라에서 신사가 멀지 않다.
규슈 글·사진=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