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규제로 부동산 양극화 심화
서울 송파구 아시아선수촌 단지 인근에서 공인중개업체를 운영하는 A모 대표가 최근 분위기를 이같이 전했다. 국토교통부가 전문가들 예상보다 빠르게 이달 5일부터 강화된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을 시행했다. 아시아선수촌 단지는 다음날 예정된 안전진단 용역업체 선정을 위한 입찰 공고를 취소했다. 강화된 기준의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통과하지 못하면 주민들이 모은 용역비만 날릴 수 있다. 각 구청에 따르면 명일동 고덕주공9단지, 노원구 공릉동 태릉우성, 강남구 도곡동 개포우성5차 등도 잇따라 용역업체 입찰을 취소했다. 재건축을 추진했던 서울 양천구 목동신시가지 단지에 사는 한 주민은 “이번 기준은 주거환경보다 구조 안전성 위주로 평가하다보니 오래된 아파트라도 통과하는 게 쉽지 않다고 들었다”며 “지금이라도 팔고 새 집으로 이사가야 할지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목동신시가지 아파트에서 그동안 거둬들였던 매물이 나오고 있다. 지난 1월 국토부 실거래가시스템 기준으로 8억원 선에서 거래됐던 목동 신시가지 6단지 47㎡가 최근 1000만원 가량 떨어진 7억9000만원에 나왔다.
안전 기준 강화 영향
목동 등 거둬들였던 매물 나와
리모델링 추진 분당은 반사이익
강남-강북·지방 양극화
반포 84㎡ 분양권에 5억 이상 웃돈
울산은 20개월 연속 집값 떨어져
실수요자들 어떻게
노량진·청량리·한남 재개발 관심
과천·위례·하남 택지도 노려볼 만
리모델링·재개발 지역 ‘풍선효과’
강남 재건축 특수
부동산 전문가들은 정부가 규제를 강화할수록 강남과 강북·지방간의 양극화가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 통계를 봐도 정부가 나서서 아파트값을 잡으려고 하면 거꾸로 뛰고 부양하려 해도 효과가 신통치 않았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집권 첫해 김대중·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부동산 규제를 풀었지만 집값은 하락했다. 반대로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후 집값이 오르자 투기과열지구 지정, 양도소득세 강화, 분양권 전매 제한 등 12차례 부동산 대책을 쏟아냈다. 하지만 집값은 더 올랐다. 노무현 정부 임기 5년 동안 서울 아파트 값은 57% 상승했다. 정봉주 전 하나은행 부동산팀장(현 매니저부동산 대표)은 “지난 20년간 한국 부동산 시장을 보면 정부가 시장 뒤를 쫓아가며 내놓은 후행적 조치가 강남권 집값 상승세를 부추기는 일이 되풀이됐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강남권 아파트 가격이 오른 뒤 정부 규제가 이어지면 일시적으로 공급이 부족해진다. 수요자가 웃돈을 줘서라도 매입을 하면 아파트 가격은 오를 수 밖에 없다. 다음달부터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대책이 시행되면 강남권을 중심으로 ‘똘똘한 한 채’에 대한 쏠림 현상이 더 커질 수 있다. 김인응 우리은행 테헤란로 금융센터장은 “고액자산가들은 지난해부터 장기적으로 보유가치기 낮은 주택은 정리한 뒤 투자가치가 높은 강남구 압구정동 등 한강변 단지에 투자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와 달리 지방 부동산 시장은 미분양이 쌓이면서 침체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1월 말 기준 지방 미분양은 4만9259가구로 한 달 전보다 4.9% 증가했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와 조선·기계 등 지역 기반산업 침체가 맞물리면서 집값도 떨어지고 있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국내 최고의 부자도시로 손꼽혔던 울산시가 2016년 5월부터 올해 1월까지 20개월 연속 주택 가격이 하락했다. 경남 거점 도시인 창원시와 거제시도 1년 이상 하락세를 그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올해 상반기까진 시장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김연화 IBK기업은행 부동산 팀장은 “투기 수요를 잡겠다는 정부 의지가 워낙 강해 앞으로도 보유세 등 추가 대책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함영진 부동산114리서치센터장 역시 “투자보다 실수요자 위주로 수도권 분양시장을 노리는 게 안전하다”고 조언했다. 특히 과천 지식정보타운, 위례신도시, 하남 감일지구 등 수도권 알짜입지로 손꼽히는 택지지구를 유망하게 봤다. 공공택지인 만큼 분양가도 상대적으로 저렴한데다 강남과 인접해 있어 강남 재건축 사업에 따른 반사효과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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