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바람 덜 타는 미·일·영 외교부
여기까지는 새 정책을 지지하느냐 반대하느냐와 상관없이 사회적으로 인정된다. 문제는 새 정부의 정책을 집행하는 공무원 조직이다. 정권이 바뀌면 새 정권의 정책을 공유하는 새로운 인물들이 주요 포스트에 등장하곤 한다. 반대로 이전 정부에서 주요 정책을 담당했던 인사들은 새 정권에서 주요 업무를 맡을 기회를 잃을 가능성이 있다. 정책의 영역과 정치의 영역에 겹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도 정권 바뀌면 고위직 교체
전문성 없으면 청문회 통과 못 해
일본은 관료가 정책 집행 주도
안보국장 총리 면담 시간이 3위
예를 들어 보면 지난 1월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함께 국방부 동아태차관보로 일하고 있는 랜디 슈라이버는 과거 군과 국방부·국무부에서 두루 근무했다. 이후 민주당 정부 동안에는 싱크탱크와 민간 컨설팅회사에서 일한 뒤 이번에는 정무직으로 국방부에 입성했다. 국방부 전략 및 전력개발 담당 부차관보인 엘브리지 콜비 역시 행정부 입성 전에 여러 싱크탱크에서 일하면서 워싱턴 정책 서클에 계속 관여해왔다.
오바마 행정부 때도 마찬가지였다. 국방부 동아태차관보를 지낸 데이비드 쉬어는 국무부에서 오랜 경력을 쌓은 정통 외교관이었다. 쉬어는 국무부를그만둔 후 정무직에 도전해 국방부 동아태차관보를 지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함께 사임한 쉬어는 요즘 워싱턴에서 열리는 수많은 전문가 회의에서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같은 정부에서 국방부 동아시아담당 부차관보를 지낸 에이브러햄 덴마크는 공무원→싱크탱크(National Bureau of Asian Research) 부소장→국방부 부차관보 근무를 거쳐 또다시 싱크탱크인 윌슨센터에서 아시아 프로그램 디렉터로 활동 중이다. 다음 또는 그다음 행정부에서 부차관보 이상의 직위에서 일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미국 상·하원의 외교안보 관련 보좌관들과 전문위원들은 대부분 정부-의회-싱크탱크로 구성된 삼각의 ‘정책 생태계’에서 오랫동안 경험을 쌓았던 인물들이다.
의원내각제인 일본은 사정이 조금 다르다. 국회의원인 외무상이 수시로 교체되는 상황에서 일본 외교안보정책의 키는 관료가 쥐고 있다. 2009~2012년 민주당 정권 시기를 제외하고 전후(戰後) 자민당이 장기 집권하면서 확고한 미·일 동맹에 기반을 둔 외교안보정책 기조가 바뀌지 않은 것도 한 요인이다. 여기에 전문가를 우대하는 일본 특유의 사회 분위기도 영향을 미쳤다.
다만, 2014년 아베 총리가 총리실에 중앙부처 심의관급 이상 간부 600명의 인사를 관리하는 인사국을 신설하면서 일부 변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주일본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총리실이 외무성 고위 인사에 관여하면서 외교관들이 총리실의 눈치를 보는 경향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같은 의원내각제인 영국은 일본과 사정이 비슷하다. 정치인 출신 장관(secretary와 minister)와 고위 공무원(mandarin)의 역할은 확실히 구분돼 있다. 이는 영국 정부가 규정해놓은 공무원의 역할에서도 잘 드러난다. “공무원은 영속적이며 정치적으로 편파적이지 않아야 하며 현 정부를 위해 일하면서도 동시에 다음 정부를 위해 (정책의) 유연성을 유지하고(retain the flexibility to serve future governments) 있어야 한다”는 게 바로 그것이다. 공무원은 정권을 위해 봉사하는 조직이 아니라는 것이다. 주영국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오랜 의회정치의 역사를 통해 정권 교체에 따른 갑작스러운 정책 변화의 폐해를 막기 위해 이런 개념을 정립해놓았다”며 “이런 풍토 하에서 새 정권이 자신의 입맛대로 정책을 급변경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차세현 기자 cha.se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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