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닥터 둠’ 마크 파버의 시장 진단
- 요즘 왜 주가가 떨어지는가.
- “주가가 너무 많이 올랐다. 한국이나 미국 증시의 시가총액을 국민총소득(GNI)에 비교해보라. 최고 수준이다. 미국 시가총액은 GNI의 1.5배 이상이다. 한국은 100% 안팎이다.”
- GNI 기준 시가총액 비율이 2008년 위기 이전보다 높은가.
-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불거지기 직전인 2006년 말 미국의 비율은 141%, 한국은 80% 전후였다. 주가 자체가 실물 경제에서 너무 벗어나 있다.”
- 주가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말인가.
- “취약한 상황인 것만은 분명했다. 그렇다고 주가가 하락할 수밖에 없다는 말은 아니다. 조건은 무르익고 있었다. 이런 때 방아쇠가 당겨진 것이다.”
- 그 방아쇠는 무엇인가.
- “미국 재정적자 악화다. 트럼프 행정부의 감세 때문에 재정적자가 더욱 커질 게 분명하다. 국채를 더 발행해야 한다. 최근 미 국채 값이 하락(시장금리 상승)하고 있는 이유다.”
올해 미국 정부가 추가로 빌려야 할 돈이 1조 달러(약 1080조원) 정도다. 여기엔 지난주 수요일에 의회를 통과한 2년간 연방정부 지출안도 포함된다.
- 재정확대는 경기를 부양하지 않을까. 시장이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듯하다.
- “지나치게 대대적인 경기부양이다. 버락 오바마가 2009~2010년 사이 2년간 경기부양에 쓴 돈이 5800억 달러인데, 트럼프의 재정적자는 이보다 더 크다. 시장이 긴장할 수밖에 없다.”
- 무슨 말인가.
- “미국 노동시장이 아주 빡빡하다. 임금이 서서히 오르고 있는 와중에 재정적자까지 확대됐다. 시장 참여자들은 ‘연준(Fed)이 더욱 긴축할 수밖에 없겠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지난주 미국 증시는 조정국면에 들어섰다. 최고치에서 10% 떨어졌기 때문이다. 20% 떨어지면 침체장이다. 파버는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등을 정확하게 예측했다. 이런 그라면 최근 주가 하락이 무엇을 경고하는지 알 듯했다. 최근 주가 하락이 위기의 징조인지, 아니면 단순 기술적 조정인지 물었다. 그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말하기에 너무 이르다(too early to tell)”는 것이다.
한국·미국 등 주가 많이 올라
실물 경제에서 너무 벗어나 있어
트럼프 감세 탓에 재정적자 확대
시장서 연준 긴축정책 강화 우려
뚜렷한 악재가 없는데 시장 요동
위기 징조인지 단정하기 어려워
80년대식 고금리·고주가도 가능
물가 상승으로 기업 이익 늘 수도
암호화폐는 반등 있을 수 있지만
열풍이 가라앉고 있는 게 분명
- 파버 박사와 지금까지 5차례 이상 인터뷰했는데, 이번처럼 유보적인 답변은 처음이다. 좀 당황스럽기도 하다.
- “(껄껄 웃으며) 이번은 좀 판단하기 쉽지 않다. 단기적으로 너무 많이 떨어진 느낌이다. 주가가 가파르게 다시 튀어 오를 수도 있을 듯하다. 실물 경제 영역에서 뚜렷한 악재가 없는데 금융시장이 먼저 반응했다.”
- 비관적인 전망 때문에 흔들리는 금융시장이 실물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자기실현적(self-fulfilling)인 요동이란 말인가.
- “그런 듯하다. 이번엔 금융시장이 먼저 요동치고 난 뒤 실물 경제가 뒤따를 수 있다. 그런 메커니즘은 이미 형성돼 있다.”
- 좀 더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을까.
- “최근 글로벌 기업의 순이익 흐름이 아주 좋다. 물건이 잘 팔린 탓도 있기는 하지만 저금리 효과가 상당했다. 따라서 금리가 오르면 기업 실적도 나빠진다. 이게 주가를 더 끌어내릴 수 있다.”
- 악순환이 시작될 수 있다는 말로 들린다.
- “실제 그럴 가능성이 있다. 미국 재정적자 악화와 임금상승 →금리 상승→기업 실적 전망 악화→주가 추가 하락 순이다. 결과론이기는 하지만 주가가 최고치에서 20% 떨어지면 실제 이런 악순환이 금융시장 안에서 작동하기 시작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다만 예외가 있다.”
- 어떤 예외말인가.
- “1980년대 초 금리가 아주 높았다. 그런데도 주식의 수익률이 아주 좋았다. 인플레이션 우려가 컸는데도 상품에 투자한 사람들은 손해보기 일쑤였다. 국제 원유 시세가 많이 떨어져서다. 금리와 주가, 상품 시세가 규칙적인 것만은 아니란 얘기다.”
- 악순환 가능성과 상반된 얘기로 들린다.
- “그래서 현재 주가 하락을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재정적자와 인플레이션 우려로 뛰는 금리가 어느 순간 진정될 수도 있다. 또 물가 상승이 기업 순이익을 늘려주는 효과 때문에 주가가 다시 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주가가 계속 떨어져 하락률이 20%에 이르면 긴장해야 한다. 앞으로 한 두 주가 고비일 듯하다.”
파버는 전통적인 투자의 고수들과는 달리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를 긍정적으로 봤다. 그는 지난해 미국 경제매체 CNBC 등과 인터뷰에서 “트럼프 경제정책 때문에 달러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시장의 돈이 암호화폐로 집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 요즘 비트코인 값이 많이 떨어졌다. 아직도 암화화폐 값이 강세를 보일 것으로 보는가.
- “암호화폐 열풍이 가라앉고 있는 게 분명하다. 일시적인 반등이 있을 수 있다. 암호화폐와 주가가 더 떨어지면 돈은 금 등 귀금속 시장으로 몰릴 수 있다.”
- 파버 박사는 요즘 어떻게 자금을 배분하고 있는가.
- “주가가 흔들리고 미국 10년만기 국채 값이 눈에 띄게 떨어지고 있다. 그래서 요즘 미 국채 가운데 만기 1~3년짜리 단기 국채에 내 돈 30% 정도를 투자했다.”
- 그나마 기대할 만한 곳은 어느 나라 주식시장일까.
- “유럽과 한국을 뺀 신흥국의 주가가 상대적으로 낮다. 한국은 상당히 오른 나라 가운데 하나다. 다만, 미국 주가가 20% 정도 떨어지면, 유럽과 신흥국 주가도 미끄러질 수밖에 없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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