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물광고 보고 대출받아 어린이집 인수했어. 그래서 마누라는 원장, 나는 원장 남편이자 이사장. 이사장이 할 일은 노란버스 운전. 아직 우리가 애도 안 낳았을 때인데 주변에 항상 애들이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풍경이었지.
서현의 상상력 사전: 흥부전
궁리 끝에 카페를 지어보자는 생각이 들었지. 요즘 교외에 가면 말도 안 되는 위치인데 특이한 카페라고 찾아가는 사람들 많잖아. 어린이집 부속시설로 허가 내고 커피 팔면 현상유지는 되겠다고 본 거지. 그래서 초가집 모양으로 적당히 설계하고 공사를 시작했어.
그런데 워낙 싸게 짓는 건물이니 공사업자도 성의가 없어. 당연히 현장소장도 없고 알바생 비슷한 친구가 현장관리를 하는 거야. 공병으로 막 제대한 친구였는데 복학하기 전에 현장 체험 중이래. 군대 가기 전에는 나이트클럽 웨이터도 했대. 웨이터들은 부르는 이름이 따로 있잖아. 강호동, 뻐꾸기, 도깨비 하는 식으로. 이 친구 이름은 제비였어. 원래 이름은 재희야, 박재희. 본명하고 제일 비슷한 이름을 지은 거지.
저녁에 작업 끝나면 제비하고 소주도 한 잔씩 했어. 어린이집은 애들 빼면 여자들만 우글거리는 데야. 그러니 지금 보면 제비와는 건물 지은 게 아니고 소주 마신 기억만 남아 있어. 제비가 나보다 열 살 아래였는데 인생 경험은 열 배 화려해. 인생의 희로애락이 다 나이트클럽에 모여 있더라고.
지붕 공사하는 날이었어. 처마 끝에 가설구조물 덧대는 일이었는데 제비가 그걸 직접 하겠다고 나섰다가 떨어진 거지. 사람이 바로 눈앞에서 툭 떨어지는데 환장하겠더라고. 나는 제비가 죽은 줄 알았어. 내가 할 줄 아는 건 만화에서 본 것밖에 없지. 뺨 때려보고 물 갖다 끼얹고.
한참 있다 제비가 정신 차렸는데 내가 제 목숨 구한 걸로 오해하는 거야. 자기 심장이 멎었는데 내가 심폐소생술 하느라고 땀으로 온몸이 다 젖은 줄 알더라고. 정신이 없으니 오해할 수도 있었겠지. 그래서 졸지에 내가 제비 목숨 구해준 흥부가 된 거지. 다리 부러진 제비는 결국 두 달 목발 짚고 다녔어.
그런데 알고 보니 제비 아버지가 그룹사 회장인 거야, 강남역 근처에 사옥이 있는. 제비가 가서 아버지에게 생명의 은인 이야기를 한 거지. 이 그룹 건설회사에서 신도시 아파트 건설하고 있었어. 회장이 손을 써서 거기 어린이집 자리 분양받게 해준 거야. 물론 아무 주저 없이 원래 있던 어린이집 팔고 또 대출받아 옮겼지. 그게 지금 여기인데 큼지막한 박이 터졌지, 대박이. 엄마들이 우리 어린이집에 애들 보내겠다고 아우성이라 대기번호가 항상 밀려.
흥부전에서는 박씨 덕분에 부자가 된다고 하지? 박씨 덕분인 건 맞아. 제비가 김씨 아니고 박씨라니까. 그런데 생각해 봐. 하루아침에 부자가 되는 방법은 로또밖에는 없어. 그렇게 로또 당첨된 사람들이 결국 모조리 불행하더라는 소리 들었지? 나는 로또 당첨된 거보다 훨씬 더 부자고 행복해. 그 뒤로 우리가 낳은 애만 넷이야. 투 볼 투 스트라익. 게다가 어린이집에 가면 꼬맹이들이 매일 삐약삐약 거리는데 그거 보고 있으면 시간이 오는지 가는지 몰라.
우리 어린이집 노란버스는 여전히 내가 운전해. 앞으로도 죽 그럴 거고. 아침에 애들 태우려고 운전대 앞에 딱 앉으면 항상 흥분돼. 이유는 내가 흥부기 때문이지. 그럼, 내가 흥분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