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 개혁의 아이콘 ‘애리조나주립대’ 가보니
지난달 26~27일 ASU의 템피·피닉스 캠퍼스를 찾았다. 필자가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재직 때(2010년 8월~2013년 3월)는 이 대학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다. 2년 전 뉴욕에서 열린 한 국제회의에 참석했다가 그곳 전문가들이 ASU에 대해 “가장 혁신적인 대학”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뒤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총장 16년째 재임, 통폐합 주도
지원받은 연구비 15년간 5배 늘어
학과들간 담 쌓는 한국과 대조
‘학과 동굴’서 벗어나 파격 변신해야
이 변화는 마이클 크로 총장(전 컬럼비아대 부총장)이 이곳에 온 2002년 이후 가능했다. 크로 총장은 그의 저서 『새로운 미국 대학 설계』에서 “우리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사회적·환경적 도전을 맞고 있는데도 지금까지 대학은 학과 간 단절과 전공 학과 증설에 치중했다”며 “ASU는 학과 간 융합이 원활하게 일어날 수 있는 학문 플랫폼을 재구성했다”고 썼다.
학문과 전공 간 벽이 견고한 한국 대학에서 상상도 못할 이런 변화가 어떻게 ASU에선 가능했을까. 크로 총장과 교수들을 만나 얻은 답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대학 연구비 지원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는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이 전공의 벽을 허무는 변혁적인 연구(transformative research)를 장려한 덕분이다. 이에 따라 ASU 교수들은 학과 통폐합이란 부담을 떠안으면서도 연구비가 늘어나는 혜택을 얻을 수 있었다. 이 대학의 전체 연구비는 2002년 1억1000만 달러에서 2017년 5억5000만 달러(5885억원)로 다섯 배 늘었다.
다음으론 크로 총장의 리더십이다. 그는 학과 통폐합과 관련해 “교수들에게 일정한 시간을 주고, 그 안에 합의할 것을 요구한다. 만일 합의가 안 되면 내가 결정하겠다고 단호하게 말한다”고 했다. 이번 방문 과정에서 만나본 일부 교수들은 “하루하루 일어나는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며 산다”고 자조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크로 총장이 2002년 이후 16년째 총장으로 재임한다는 점이 4년마다 총장이 바뀌는 한국 대학에선 상상하기 힘든 변화의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한국 대학의 가장 큰 문제는 좁은 학과로 나뉘어 담을 쌓고 다른 학과와 전혀 협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치 동굴 안에선 아늑하게 느낄지 몰라도 바깥의 밝은 세상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ASU는 파격적인 학과 통폐합과 융합 학문의 탄생으로 대학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티미·피닉스(미 애리조나주)=이주호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jhl@kdischool.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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