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명 공간을 3명이 쓰는데 교도소에 ‘낭만’은 무슨

중앙일보

입력 2018.01.14 00:02

수정 2018.01.14 01:46

SNS로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드라마선 그럴듯 한데, 교도소 실제는

교도소는 최근 드라마를 통해 금기의 장소가 아닌 나름 낭만을 가진 공간으로 묘사된다. 사진은 tvN의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한 장면. [중앙포토]

‘슬기로운 감빵생활’ ‘피고인’ ‘의문의 일승’…. 교도소 드라마가 안방을 파고들더니 곧 ‘감옥 예능’까지 등장한단다. 금기의 장소였던 교도소는 어느새 친숙한 장소, 호기심을 자극하는 장소로 이미지를 바꾸며 일상으로 파고든다. 드라마 속 교도소 사람들은 억울하다.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들어온 인물들은 드라마마다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하나 현실 속 교도소 사람들이 억울한 이유는 따로 있다. ‘교도소의 억울함’은 그 공간 자체로부터 나온다. 가장 큰 문제는 과밀수용이다. 수도권 지역 일부 구치소와 교도소는 법적으로 두 명이 쓰라고 규정된 공간에 세 명을 우겨넣기 일쑤다. 최근 교도소 드라마를 본 교정당국자와 전문가들이 가장 억울하게 느꼈다는 대목도 선량한 사람에게 누명을 씌어 교도소에 보낸다는 설정이 아니라 드라마에 등장하는 그 널찍한 공간때문이었다고 했다. “우리는 과밀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드라마처럼 낭만적으로 그려지면 과밀의 심각성을 국민들이 제대로 알겠느냐”는 게 한 교정당국자의 푸념이었다. 실제로 드라마와 같은 ‘낭만교도소’가 되려면 현실의 교도소들은 많은 난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현실 속 교도소들의 최고 난제들을 짚어본다.
 
과밀 ‘낡은 대형 건물에 정원을 초과한 수형자들이 복닥거리는 공간’. 한국의 교도소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이렇다. 어느 정도냐 하면 평균 5명이 써야 할 공간을 6명이 나눠 쓴다. 수도권과 대도시에 있는 교정시설에선 2명 공간을 3명이 써야 한다. 일인당 법정 공간이 넓은 것은 아니다. 2.58㎡. 물론 적정 면적에 대한 국제적 기준은 없다. UN은 개인의 건강유지에 필요한 면적이라고만 규정했다. 국제적십자사는 독방은 5.4㎡, 여럿이 쓰는 공간(혼거실)에선 일인당 3.4㎡ 확보를 권고한다. 독일에선 독방은 9㎡, 혼거실도 7㎡는 확보해야 한다.

교도소당 인원 OECD 1등 불명예
20개 시설 더 지어야 과밀 해소
기피시설이라고 주민들은 반대
가석방 확대, 여성용 시설 늘려야

낡은 대형 건물이라는 점도 큰 문제다. 교도소 10개 중 4개는 30년 이상 된 건물이다. 수용규모도 세계 최고수준이다. 1개 교정시설 당 평균수용인원은 1070명. OECD국가 중 1등이다. 수용자 수가 우리와 비슷한 일본엔 교도소가 188개 있지만, 한국은 53개다. 유엔의 ‘만델라 규칙’은 수형자 수가 개별처우에 방해받을 정도로 많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에 많은 나라들은 한 시설당 최대수용인원을 500명 이하로 한다.
 
게다가 2005년부터 국가인권위원회는 법무부에 과밀을 해소하라는 권고를 8차례나 했다. 헌법재판소는 ‘지나치게 협소한 국가형벌권 행사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한다’며 조속한 해결방안을 마련하라고 2년 전 결정했다. 지난해엔 부산고법이 과밀수용에 따른 국가배상을 판결했다. 하루 평균 8840원꼴이다. 만일 수감자들이 배상소송을 청구하고 이런 배상판결이 계속 나온다면 세금으로 수천억원대의 배상금을 물어줘야 한다. 교정당국은 사면초가다.
 
님비 지금 수준의 과밀을 해소하기 위해선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교도소 20개가 더 필요하다. 그러나 교도소 신증설은 기대난망이다. 교도소가 대표적 님비(not in my backyard. 특정 시설이 자기 지역 내에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현상)시설로 꼽히는 탓이다. 교도소 이전 혹은 신증설 예정지마다 주민반대가 극렬하다. 최근엔 대전교도소 이전지인 유성구 방동이 시끄럽다. 주민들은 대책회의를 열고 대전교도소 이전반대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그런가하면 과거엔 주민들이 찬성했던 거창교도소 이전도 지금은 거센 반발에 부딪쳐 있다. 안양교도소,부산구치소, 경기북부구치소, 경기서부구치소 등 길게는 1997년부터 추진했던 사업들이 아직 한 삽도 못 떠보고 줄줄이 지연되고 있다. 반면 님비시설이 아닌 지역경제 창출 시설로 개념을 전환해 해결방안을 찾은 사례도 있다. 2009년 준공된 영월교도소가 대표적이다. 이 교도소는 주민들이 적극 유치한 경우다. 계속 줄어가는 지역인구를 늘리고, 식사·청소·경비 등 일자리를 지역주민들로 채워 고용을 창출하는 등의 지역경제 살리기가 주효했다. 진정한 문제는 님비보다 일방통행식 행정, 지역주민과의 갈등해소를 위한 협상전략이 없는 것이라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가석방 교정당국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수용자수를 줄이는 것.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재소자들의 가석방을 확대하는 것이고, 아예 입소자수를 줄이는 방법이다.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문제는 가석방 늘리기. 현행법상 가석방은 형기 3분의1을 경과하면 행정처분으로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형기의 80%정도를 채워야 심사 대상이 된다. 우리나라 가석방 비율은 해마다 줄고 있다. 2007년만 해도 전체 출소인원 중 가석방 출소자는 세 명 중 한 명꼴(32.5%)였지만 2016년에는 네 명 중 한 명꼴(25.1%)로 줄었다. 일본은 출소자의 56.7%가 가석방자라는 점에서 한국은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평을 받는다. 그러나 우리의 형사사법은 수용자를 늘리는 쪽으로만 달리고 있다. 살인·강도·절도 같은 전형적 범죄는 줄고 있는 반면, 검찰과 경찰이 범죄단속을 강화하면서 대표적 단속범죄인 마약류 등이 최근 5년 사이 50%가 넘게 늘었고, 사기·횡령 등 경제사범(57.3%)과 성폭력(70.7%) 범죄가 대폭 늘었다. 게다가 범죄에 대한 사회적 압력이 강해지면 불구속 수사와 재판 원칙이 다소 흔들리고, 법원의 엄벌주의가 점점 강화되며 형량이 늘어나는 것도 큰 고민거리다.
 
여성과 노인 과거 교도소의 단골 수용자들은 청·장년층 남성이었다. 그러나 최근엔 수용자들의 구성이 달라지고 있다. 여성과 노인인구가 크게 늘고 있는 것이다. 요즘 교도소마다 단차를 없애고, 짚고 일어설 수 있는 시설을 만드는 등 노인들을 위한 시설을 보강하고 있다. 노인성질환과 대사성질환 등의 의료대책도 세우고 있다. 이에따른 의료비 증가도 일본 사례를 주시하며 연구 중이다. 그래도 남성노인은 이처럼 기존 시설을 이용하고 있지만 여성은 더 큰 문제다. 최근 10년 사이 여성범죄는 54.6%나 증가했는데 여성 교도소는 정체돼 있어서다. 여성 평균 수용률은 130.2%, 상위 10개 기관의 수용률은 평균 160.3%나 된다.
 
“대형 시설과 과밀에 따른 여러 현상들은 수용자의 개인적 고통을 넘어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교정행정도 어렵게 할 수 있다.” 안성훈 연구원(형사정책연구원)은 교도소가 과거에는 벌을 주는 장소였지만 지금은 수형자의 사회복귀를 돕는 재사회화 기관으로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교도관들도 과거 학교 경비업무를 봤다면 지금은 교사업무로 바뀌었는데, 과밀 대형 시설들은 경비업무에 더 치중하도록 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 교도소의 현실은 ‘낭만’을 어렵게 한다.
 
 
양선희 선임기자 sunny@joongang.co.kr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