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세계를 삼킨 7원칙
‘SARANGHAEYO(사랑해요)’.
‘Namjoon♥(남준)’.
인터넷방송인 V라이브앱에 오른 방탄소년단(BTS)의 동영상엔 이런 유의 댓글이 끊임없이 달렸다. BTS의 리더인 RM(랩몬스터)의 32분20초짜리 신년 인사였다.
지방 출신의 젊은 친구들
“음악해봐야 … ” 진솔하게 노래
‘옆집 오빠’ 같은 공감 얻어
글로벌 팬들과 허물없이 수다
리더 RM 32분 새해 동영상엔
17시간 동안 ‘하트’ 1억2000만
“니 멋대로 살어 … 져도 괜찮아”
노랫말엔 지금, 우리 얘기 가득
RM은 친구에게 하듯 일상에 대해 시시콜콜하게 이야기를 했다.
이 동영상엔 17시간 동안 날린 ‘하트(좋아요)’만 1억2168만9789개, 초당 2000개꼴이었다. 프랑스·러시아·포르투갈·베트남·아랍어 등 11개 언어의 자막이 달렸다.
‘소셜미디어의 왕’으로 불리는 BTS의 모습이다. BTS는 지난해 5월 저스틴 비버 등을 제치고 2017 빌보드 뮤직 어워드 톱 소셜 아티스트 부문 수상을 했고, 6월엔 미국 타임지에서 인터넷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25인으로 선정됐다. 2013년 6월 결성된 이래 5년여 만에 이룩한 성취다.
BTS를 키운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방시혁 대표는 지난해 4월 인터뷰에서 “방탄소년단의 모습을 최대한 많은 콘텐트를 통해 보여 주자는 게 의도”라며 “평소 어떤 생각과 고민을 가지고 있고, 또 어떤 방식으로 그것을 풀어 나가는지 알게 된다면 BTS의 음악에 더 잘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멤버들의 자발적이고 꾸준한 노력이 있었다”고 했다. 그의 말에 BTS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소통 원칙이 담겼다. 7가지로 추려 본다.
② 진솔 자신들의 얘기를 하는 데 솔직했다. 슈가는 ‘어거스트 디’란 이름으로 발표한 믹스테이프(힙합 등 주로 흑인음악 장르에서 기존의 노래를 리믹스하거나 그 노래 위에 랩을 해서 녹음해 만드는 앨범)에서 자신의 데뷔 시절을 떠올렸다.
“대구에서 음악하면 잘되봤자 음악학원/원장이나 하겠지란 생각이 날 빡 때려/(중략)/밤에는 연습하고 새벽엔 알바하고/그렇게 지친 몸 끌고 학교로 가면 잠만 자던/내가 20살이 되버렸네 졸업식 풍경은 썩 구리내.”(치리사일사팔(724148))
영어 인터뷰를 도맡아야 하는 RM은 지난해 11월 미국에서의 토크쇼 출연을 앞두고 V라이브에서 “많이 무섭고 긴장도 많이 된다”고 털어놓았다.
김성철 작가는 “BTS는 TV 속의 아이돌 스타가 아닌 ‘나와 소셜미디어로 연결된 친구’ 같은 존재로 각인됐다. 이들의 성장과 성공은 자기 친구 혹은 오빠·형·동생·조카의 성장과 성공으로 동일시되며 함께 울고 웃는 효과까지 낳는다”(THIS IS 방탄DNA)고 분석했다.
③ 성실 이규혁 대중음악평론가는 “일상을 거의 보여 준다”며 “횟수도, 내용도 충실하다”고 평했다. 실제 이들은 뮤직비디오와 방송 공연 영상은 기본이고, 자작곡은 물론 다른 가수들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바꿔 부른 노래 등 비정식 음원도, 자신들의 일상을 담은 영상(‘방탄밤’)도 올린다. 활동하지 않는 기간에도 자체 제작한 콘텐트를 제공한다. ‘혜자스러운’(인심이 좋다는 의미의 유행어) 모습이라며 ‘혜자소년단’이란 별칭까지 붙었다.
게다가 꾸준하다. 지난해 11월 미국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AMA) 무대에 오른 후 이들은 파티에 가는 대신 호텔 방에서 인터넷 라이브 앱 방송을 통해 팬들에게 인사했다. 처음엔 불과 300여 명이 시청했다는데 이들은 “데뷔 무대 이후 살다 살다 이렇게 떨렸던 적이 없었다” “여러분이 너무 응원을 해서 기가 살았다”고 인사를 했다. 결과적으론 200만 명 이상이 봤다.
⑤ 개성 이 과정에서 음악적으로나 인간적으로 7명의 개성이 드러나도록 했다. 작사·작곡 등 앨범 제작에 적극 참여토록 해 ‘아티스트’로 여겨지게 했다. 일상에서 뷔는 필름카메라 풍경과 정물사진을, 정국은 여러 뮤지션 음악을 트위터를 통해 소개했다. 진은 때때로 ‘먹방’ 방송인 ‘잇진(EAT Jin!)’을 했다. 멤버별 캐릭터로 형성됐다.
⑥ 다층적 스토리텔링 ‘흙수저’와 중소기획사의 결합이 만들어 낸 성공 스토리라는 기본 얼개에다 소년들의 성장이란 걸 결합해 냈다. 두 번째 정규 앨범인 ‘WINGS(윙스)’가 헤르만 헤세의 성장소설 ‘데미안’에서 영감을 받은 게 그 예다. 김숙영 UCLA 연극영화방송학부 교수는 “세계 고전문학과 영화를 아우르는 클래식한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일부 콘텐트는 과거와 연계되거나 미래를 암시하기도 한다. 일종의 ‘떡밥’이다. 지난해 5월 진이 ‘Smeraldo(스메랄도)’란 문구와 함께 꽃을 들고 있는 사진을 트윗했는데 팬들은 여러 추론 단계를 거쳐 BTS의 컴백을 의미한다는 걸 밝혀냈다. 잡지 ‘롤링스톤스’는 “BTS는 앨범을 두고 신화(mythologies)를 구축했다”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아미(ARMY)’로 불리는 열광적 팬들도 만들어졌다. 방시혁 대표가 “역수입적 느낌이 있을 정도”라고 표현할 만큼 해외에서도 활발하다. 다국적 팬들에 의해 BTS의 한국어 콘텐트엔 수분 내 다양한 언어의 자막이 달린다. 최스테파니 캘리포니아주립대 샌타바버라 음악인류학 박사 과정은 “흔히 국적 혹은 지역별로 팬덤을 형성한다고 생각하나 요즘 팬들은 온라인을 통해 친구를 만나고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세대라 언어별로 팬덤을 형성한다”고 말했다. 팬들이 제작한 콘텐트도 많다. 김숙영 교수는 “싸이는 유명인들이 언급하면서 유명해진 일종의 톱다운 방식이었던 데 비해 BTS의 경우 팬들이 꾸준히 방탄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어 내는 ‘보텀업’ 방식”이라며 “한국 팬과 해외 팬의 활동 방식엔 차이가 있는데 BTS의 경우 이 격차가 좁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고정애·박민제 기자 ockha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