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그림책 작가 이자벨 카리에의 『아나톨의 작은 냄비』는 정체 모를 냄비를 지니고 살게 된 한 꼬마의 이야기다. 저자 최혜진은 이 동화에서 사람들이 마음 속에 품은 상처와 열등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불우한 기억을 읽어낸다. 떨쳐내고 싶어도 잘 안되는 그 무엇에 발목이 잡혔을 때 우리는 어떻게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학창 시절 집단 따돌림을 당했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전에도 그랬듯 난 결국 안될 거야”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며 상담을 청해 온 대학생에게 저자는 이 책을 ‘처방’해 준다.
『그림책에 마음을 묻다』
저자: 최혜진
출판사: 북라이프
가격: 1만6000원
자신이 그림책으로부터 받은 위로를 다른 이들에게도 전하고 싶어 그림책 처방을 시작했다. 책에는 ‘꿈’이라는 단어 앞에서 막막함을 느낀다는 취준생부터 성과만 생각하며 달음박질하는 30대 직장인, 밥을 안칠 때마다 알 수 없는 서러움이 솟는다는 주부까지 다양한 고민이 등장한다. 저자는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자신의 생각을 조심스레 들려준 후, 읽어보면 좋을 그림책을 소개한다. 타인의 SNS를 볼 때마다 박탈감을 느끼는 이에게는 빛나는 것에서 눈을 떼는 법을 가르치는 『고래가 보고 싶거든』을, 혼혈아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이에겐 다름의 소중함을 가르치는 『너』와『나』라는 책을 권하는 식이다.
그림책이 강렬하게 마음을 두드리는 건 복잡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단순하고 간결한 이야기가 어른의 머리 속에서 엉켜버린 실타래를 가차 없이 싹둑 잘라버리는 느낌이랄까. 그림책은 그 어떤 심각한 고민에도 ‘별 거 아냐. 간단해’ 라고 속삭이며 이런 진실을 들려준다. 우리는 모두 부족하고 흔들리고 불완전한 상처투성이지만, 있는 그대로 가치 있고 사랑 받을만한 존재라고.
그나저나 애물단지 같은 냄비를 달고 다니던 아나톨은 어떻게 됐을까. 어느 날 한 아주머니가 원피스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작은 녹색 냄비를 아나톨에게 보여준다. 자 나도 냄비가 있어, 라면서. 평범하지 않은 사람, 냄비를 갖고 다니는 사람은 자신 말고도 많다는 걸 알게 된 아나톨은 용기를 내 세상으로 걸어나간다. 저자는 말한다. “누구나 감당하기 쉽지 않은 냄비가 있다는 것, 그 냄비를 자신의 일부로 끌어안으려고 고군분투하면서 달그락달그락 걸어나가는 것이 인생의 본질이라는 점을 꼭 기억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글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