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선 당시 뉴욕타임스(NYT) 인터뷰를 통해 30년 전 트럼프의 성추행 사실을 폭로했던 제시카 리즈는 WP에 "웨인스타인은 끌어내릴 수 있었는데, 트럼프는 여전히 '*테플론 돈'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말했다. 리즈는 80년대 초반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옆자리에 앉았던 트럼프가 좌석 팔걸이를 제치고 몸을 더듬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테플론 돈'은 숱한 살인과 마약, 마피아 관련 범죄에 연루되고도 무죄로 풀려난 존 고티(1940-2002)에게 언론이 붙인 별명이다. 아무 것도 달라붙지 않는 화학물질로 유명한 '테플론' 처럼 아무 범죄혐의도 들러붙지 않는다는 의미다.
WP, 피해 여성들 "그는 왜 아직 대통령인가"
이후 여러 거물이 성추문으로 곤두박질쳤다. 폭스뉴스의 간판 진행자 빌 오라일리가 폭스 뉴스의 설립자인 로저 에일에 이어 하차했고,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가장 입김이 센 사람으로 꼽혔던 웨인스타인이 추락했다. 특히 여러 스타들이 피해 사실 폭로에 합류한 웨인스타인 건은 전세계 여성들이 SNS상에서 자신도 성폭력의 피해자였음을 고백하는 '#MeToo' 캠페인 대열에 합류하게 만드는 기폭제가 됐다.
WP는 트럼프는 웨인스타인과는 달리 상황을 자신에게 맞게 왜곡시킬 능력이 있다고 분석했다. 여성의 성기를 움켜쥐었다고 자랑하는 녹음파일이 공개됐음에도 "락커룸 농담"이라면서 "누군가 불쾌감을 느꼈다면 사과한다"고 모면했다. 또 피해를 고발한 여성들을 고소하겠다고 큰 소리 치며 여론의 화살을 돌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WP는 하지만 트럼프가 해당 여성들을 무고 혐의로 고소하지는 않았다고 지적했다.
1997년 마라라고에서 브런치를 먹는데 트럼프가 입가에 키스했다고 주장한 캐시 헬러는 피해자들의 유명세 차이 때문인 것 같다고 WP에 말했다. 그는 "귀네스 펠트로 같은 유명인은 마라라고에서 만난 사람이나 미인대회 참가자 보다 무게감이 크다.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사람과 유명인들이 나섰을 때의 영향력이 다른 것 같다"면서도 웨인스타인의 하차에 대해선 "마침내 무언가 실제로 벌어졌다는 점에서 기쁘며, 트럼프가 어떻게 되는지도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강경한 대응에 맞불을 놓은 여성도 있다. 트럼프가 진행했던 리얼리티 쇼 '어패런티스(견습생)'에 출연했던 서버 저보스는 2007년 트럼프가 거칠게 키스하고 유방을 쥐었다고 대통령 선거 당시 폭로한 바 있다. 저보스는 폭로 후 트럼프가 자신을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자 대통령 취임 3일 전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트럼프는 여전히 "완전히 가짜 뉴스"라며 부인하고 있다.
WP는 하지만 트럼프의 변호사들은 이 사건을 기각하고 싶어한다고 보도했다. 트럼프가 퇴임할 때까지는 형사 소송 대상에서도 면책된다는 주장을 펼칠 예정이라는 것이다. WP는 법원의 결정이 대통령직 수행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 나온 전략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법원은 이달 31일까지는 사건 기각 여부에 대한 결정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이경희 기자 dungl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