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신고리 5·6호기 재가동 여부 이번 주 결정
“신고리 5·6호기를 짓지 않으면 부족해지는 전력 수요를 LNG(가스) 발전으로 대체할 경우 전기 요금은 얼마나 오릅니까? 미세먼지 문제는요?”
14일 오전 충남 천안의 계성원(교보생명 연수원)에서 열린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시민참여단 종합토론회. 전국에서 무작위로 선정된 시민참여단 471명이 이날 1시간30분 동안 원전 건설 중단 여부를 놓고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전문가와 지역 주민이 답변을 했다. 단상 양쪽으로 ‘경청’ ‘숙의’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걸려 있었다. 이날 토론회는 13일부터 이틀간 합숙으로 진행됐다. 원전 건설 중단이라는 첨예한 문제를 이해 당사자가 아닌 제3자, 시민들의 숙의와 표결로 결정하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시도하는 ‘숙의 민주주의’ 실험 1호인 셈이다.
시민참여단 471명 15일 최종 표결
17일부터 권고안 작성, 20일 발표
“당사자 아닌 제3자가 결정 첫 시도”
공론화 3개월간 찬반 양측 평행선
참여단·공론화위 자격 논란 불씨
시민참여단은 15일 오후 찬반을 묻는 최종 공론조사(4차)를 할 예정이다. 공론조사 문항은 1~4차의 공통 문항(찬성·반대 여부, 원전에 대한 지식)과 신상 질문 등으로 구성됐으며 서면으로 작성한다.
시민참여단의 결론이 나오면 신고리 5·6호 공론화위원회(위원장 김지형 전 대법관)는 이를 토대로 17일부터 수도권의 모처에서 비공개 권고안 작성에 들어갈 예정이다. 공론화위원회 관계자는 “표결 결과가 미리 유출되면 공정성 시비가 생기기 때문에 보안이 생명이다. 철저하게 비밀을 유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위원회가 작성해 정부에 제출하는 권고안은 오는 20일 발표된다. 청와대는 “위원회의 결정을 따른다”고 밝혔다. 이번 공론화 과정은 문재인 정부의 갈등 관리 능력의 시험대 역할도 하게 됐다. 임승빈 한국지방자치학회장은 “공론화는 선거와 국회를 통해 갈등을 조정해가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보완책으로 숙의 민주주의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원전과 같이 가치 대립이 극심한 문제를 토론과 공론화를 거쳐 양측의 입장을 이해한 후 시민들이 결정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론화 과정은 ‘디테일’을 둘러싼 싸움의 연속이었다. 절차에 대한 사전 준비 기간 없이 3개월 만에 결론을 내기 때문이다. 찬반 양측은 전문가 집단으로 누가 참여할지, 자료집에는 어떤 내용을 담을지 사사건건 충돌했다. 위원회 관계자는 “통상 공론화는 준비 기간만 6개월이 소요되지만 원전 문제만큼은 양쪽에서 연구가 충분히 진행된 상황이다. 3개월이 결코 짧은 기간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양측의 주장에 대한 사실 검증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뢰 위기 초래한 3개월 공론화
백지화에 찬성하는 주부 엄미옥(45)씨는 “공론화라는 게 하나 하나의 과정에 신뢰가 있어야 하는데 정작 ‘부울경’ 주민들 의견은 안 듣고 수도권 사람들이 결정하는 거 아닌가. 재개 결론이 나오면 저희는 승복할 수 없고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신고리 원전 하청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이모(40)씨는 “전 정부와 이념이 다르다고 정책을 하루아침에 바꿔 버리면 일하던 사람들은 그대로 실업자가 된다. 노후화된 순으로 폐쇄하는 것도 아니고 왜 하필 신고리 5·6호기인지도 설명이 없다. 문 대통령을 상대로 월급 소송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인권단체 운동을 하고 있다는 김대현씨는 “이제까지 원전을 지으면서 전기료 인상은 얼마나 되는지, 위험하면 얼마나 위험한지 제대로 알려준 적이 없어 이렇게 토론회를 여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말했다.
임 회장은 “찬반이 첨예한 사안일수록 주민들은 전문가로부터 확증 편향(자신의 신념을 강화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만을 확인하게 된다. 이 때문에 제3자가 판단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론화위원회가 시민참여단에 제공할 자료집도 양측이 “자료 구성이 편향돼 있다”며 줄다리기를 하는 바람에 예상보다 열흘 늦은 지난달 28일 제공됐다. ‘팩트 검증’이 제대로 안 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12일 국회 산업통상자원부 국감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용환 원자력안전위원장은 “건설 중단 측이 ‘5·6호기 건설이 한 달 만에 허가됐다’고 주장한 자료집 내용은 허위”라고 말했다.
시민참여단의 투표 결과가 51대 49 등으로 비등할 경우 법적인 자격을 문제 삼아 승복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지난달 28일 서울행정법원은 원전 주변의 주민이 국무총리실을 상대로 낸 훈령 취소소송에서 각하 처분을 하며 “정부는 공론조사 결과를 그대로 수용하겠다는 태도를 밝히고 있지만 공론화위원회가 원자력발전소의 건설 중단 여부를 결정할 권한을 가지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김지형 공론화위원장도 9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찬반이 박빙으로 갈려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이 꿈에 나올 정도다”고 했을 정도다. 김 위원장은 “최종적으로 불이익 받는 사람들이 생기더라도 공론화 절차를 끝까지 마무리하는 것은 우리 민주주의를 성숙시킨다. 다른 사안에도 적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전력 수급 차질” vs “안전 우려”
지역 민심은 양분돼 있다. 서생면 주민들은 지난 정부 때인 2014년 한수원과 신고리 5·6호기를 짓는 대가로 1500억원가량의 주민 보상을 받는 ‘지역발전 상생협력 기본합의서’를 이미 체결했다. 주민의 소득 증대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사업, 문화관광사업과 노령인구 복지 증진, 체육시설 사업 등이 포함돼 있다. 한수원과 하청업체에 고용된 주민도 많아 “생계가 달려 있다”며 백지화를 반대한다. 이런 지역 민심이 지난해 9월 경주 지진을 기점으로 쪼개지기 시작했다. 관측 이래 한반도에서 일어난 최대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하면서 이곳 주민들은 지진의 공포를 몸으로 겪게 됐다.
공론화를 통해 갈등 해결을 시도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노무현 정부 때 한탄강댐, 사패산 터널 등을 공론화한 것이 시초다. 하지만 당시 찬반 의견차를 좁히지 못해 공사 기간만 늘어났다는 비판이 나왔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고준위 방폐장(사용후 핵처리시설) 설치를 위한 공론화위원회가 출범해 20개월간 활동했지만 큰 성과는 보지 못했다.
공론화위원회 대변인을 맡고 있는 이윤석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는 “이번 과정에서 시민참여단의 결정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국민 숙의 과정이다. 공론화 과정을 통해 과거보다 많은 사람이 이슈에 대해 알게 됐다. 이 또한 공론화의 큰 목적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울산·천안=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