곪은 건 도려내야 새살 돋아…美도 우리가 운전석 앉길 원해

중앙일보

입력 2017.10.01 00:02

수정 2017.10.01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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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복심’ 김경수 민주당 의원

김경빈 기자

2008년 8월 봉하마을 사저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행 중인 김경수 의원(위 사진). 지난 4월 30일 문재인 대선후보 신촌 유세에서 김 의원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있다. [중앙포토·뉴시스]

김경수(50)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 통한다. 말 그대로 핵심 중의 핵심 측근이란 뜻이다. 특히 이호철 전 청와대 수석과 양정철 전 청와대 비서관이 2선으로 물러나 있다 보니 유일하게 현실 정치에 발을 담그고 있는 그에게 정치권의 이목이 더욱 집중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 두 번의 대선 때도 늘 함께 다녔고 문 대통령 당선 후에도 한동안 바로 곁에서 보좌하면서 ‘문재인의 입’ 역할을 맡았던 그였다.
 
그는 “복심이 아니라 오른발일 뿐”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생각을 가장 잘 읽고, 이해하며, 전달하는 참모라는 데는 안팎의 이견이 없다. 그가 문 대통령 취임 5개월째를 맞아 핵심 측근 중 첫 언론 인터뷰에 응했다. 적폐 청산, 외교안보 현안에 대한 문 대통령의 구상과 의중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에 얽힌 얘기까지 대화 테이블에 오르면서 인터뷰는 예정됐던 한 시간을 훌쩍 넘겨 1시간40분 동안 진행됐다.

적폐 청산, 국민이 촛불로 준 과제
삐거덕거려도 꾸준히 진행될 것

역사상 美가 운전석 앉은 적 없어
북핵 부담도 100% 떠맡진 않을 듯

노 전 대통령이 남긴 숙제하는 분
이번엔 꼭 성공한 대통령 만들어야

복심? 임종석·조국도 있다
2012년 대선 패배 후 4년반 만에 승리했는데.
“당시엔 암울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과연 다음 대선은 이길 수 있을까, 어디서부터 극복해야 할까 고민이 컸다. 시민들도 만나면 바로 눈물바다가 됐고. 서로 힐링이 필요한 시기였다. 그런데 답은 결국 국민이 갖고 있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경제성장도 민주주의 없이는 어렵다’는 걸 국민 스스로 체감하게 된 거다.”
 
문재인 정부를 한마디로 규정한다면.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잘 나와 있다. 첫 단추가 국가 비전을 뭘로 할지였는데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으로 최종 정리했다. 문 대통령 수락연설에 담긴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란 말도 같은 맥락이다.”
 
개혁과 적폐 청산은 잘되고 있다고 보나.
“아무래도 과거를 돌아보고 극복해내는 과정은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서로 상처도 생길 거고. 하지만 곪은 건 도려내지 않으면 새살이 돋질 않는다. 상처를 아물게 하기 위해서는 고름은 도려내야 한다. 이는 국민이 촛불을 통해 문재인 정부에 준 숙제다. 국민의 요구이자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기 때문에 우여곡절이 있더라도 꾸준히 진행될 거라고 본다. 삐거덕거리며 가겠지만 다시는 그런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과정이다. 다만 국민은 민생경제를 살리라는 숙제도 같이 준 만큼 국민통합이란 과정 속에서 두 숙제를 함께 해결해 나갈 방침이다.”
 
민주당 협치 담당 부대표를 맡았는데, 기대와 달리 협치가 왜 이리 지지부진한 건가.
“협치엔 네 가지가 있다. 당내와 당·정·청, 야당·국민과의 협치 등이다. 그중 유독 국회에서 협치가 안 되는 이유는 정치와 국민 사이에 괴리가 있기 때문인 듯싶다. 국민 여론과 여의도 여론의 간격이 너무 넓다. 국민이 뭐라 하든 우리 식대로만 하겠다고 하는 한 협치는 쉽지 않다. 국민이 바라는 걸 잘 받드는 게 대의정치의 기본 아니냐. 민주주의에서 경쟁은 불가피하지만 진흙탕 싸움에 이전투구하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경쟁해야 하지 않겠나.”
 
그래도 여당 책임이 더 큰 것 아닌가.
“여권의 리더십에 대한 지적은 새겨들을 만하다. 그런데 지금은 정권이 바뀐 뒤 각 정당이 자리를 잡아 가는 과정이다. 아직도 샅바싸움 중이다. 게다가 다당 체제에 여야까지 바뀌면서 협의 체계를 어떻게 갖춰야 할지 혼란스러운 측면도 있다. 이걸 하나씩 정리해 가는 중이다. 여야 공통 개혁과제부터 추진하면서 야당과의 협치를 이끌어낼 생각이다.”
 
핵심 측근 중 홀로 남았는데 부담은 없나.
“저만 있는 게 아니고 임종석 비서실장과 조국 민정수석도 있다. 문 대통령은 주변에서 늘 새로운 사람들이 보좌하면서 여기까지 왔고 지금도 그렇다. 양정철·이호철 선배도 기존에 있던 사람들이 길을 비켜주는 게 대통령을 도와드리는 길이라 생각하고 스스로 선택한 거다. 나도 전엔 몰랐는데 문 대통령이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공직기강비서관에 관료 출신을 임명한 데는 다 이유가 있더라. 권한이 크면서도 공정성이 필요한 자리엔 절대 측근을 앉히지 않는다는 게 대통령의 철칙이었다.”
 
문 대통령의 복심이란 게 세간의 평가다.
“요즘은 오른발로 정해졌다(웃음). 예전엔 실세라 하면 그만한 권한과 권력을 갖고 휘두르는 사람이었는데 우리는 권한은 전혀 없이 다 뒤로 빠지고 대신 열심히 발로 뛰며 땀 흘리는 일만 맡게 됐다.”
 
우리가 상황 주도해야 북·미 협상도 가능
북핵 문제가 최대 현안인데, 진보·보수 진영 모두로부터 우려와 비판이 거세다.
“끼어 있다고 볼 수도 있고 얹혀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거다. 반면 두 가지 요구를 동력 삼아 문제를 풀어나가고 있다는 게 더 맞는 설명일 수 있다. 우선 강력한 대북제재와 압박은 미국과의 관계에서 꼭 필요하다. 참여정부 때도 9·19 합의까지 만들었는데 바로 다음 날 미 재무부에서 딱 틀어버리니까 더 이상 한 발짝도 못 나가지 않았나. 그런 만큼 지금 상황에서 미국과 함께 가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는 그러면서도 남북 대화의 문을 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도 잊지 않았다. “그런 노력을 평소에 쌓아두지 않으면 막상 대화 국면이 왔을 때 서로 신뢰라는 게 생길 수 있겠나. 북한 주민, 특히 어린이에 대한 인도적 지원도 지금 하지 않으면 통일 이후에 전부 통일 비용으로 돌아올 거 아니냐. 지금이 오히려 적기다. 유엔도 인도적 지원은 계속하지 않나.”


겉으론 같이 간다며 돌아서면 딴소리니 미국이 어떻게 믿겠느냐, 핵무기 완성이 코앞인데 무슨 대화 타령이냐는 비판도 적잖다.
“우선 미국이 믿느냐, 믿지 않느냐는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 중요한데 인도적 지원에 미국이 공식 항의한 게 없지 않으냐. 이 부분은 국내 정치적 공방 정도로 보면 될 거다. 가장 중요한 건 대통령 간의 신뢰인데, 다행히 두 정상의 신뢰 관계는 국민이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국민 감정상 이런 상황에서 무슨 지원이냐는 문제 제기는 당연하다고 본다. 하지만 남북관계는 장기 레이스다. 단기 레이스 같으면 안 하는 게 맞지만 인도적 지원을 정치군사적 문제와 분리시켜 놓지 않으면 나중엔 풀래야 풀 수가 없게 된다. 이건 외교의 ABC 아닌가. 다만 지원 시기는 유동적으로 열어 놓는 타협책을 쓴 거다.”
 
운전석론에 대해 한국이 ‘보조석 패싱’만 안 당해도 다행이란 지적이 만만찮다.
여기서 그의 목소리가 한층 단호해졌다. “운전석론은 그동안의 역사가 증명한다. 잘 보면 미국이 운전석에 앉은 적이 없다. 우리 정부가 주도적으로 상황을 만들어갔을 때 한·미 동맹도 힘을 발휘했고 미국도 적극 참여하면서 문제가 풀려나갔다. 우리가 북한이 무너질 때까지 제재만 하고 대화는 절대 안 된다고 하면 그런 상황에서 미국만 대화할 수 있겠나. 우리 정부가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이란 원칙을 분명히 해야 북·미 협상도 가능할 수 있다. 오히려 우리 정부가 그렇게까지 강경하게 했는데도 북·미 협상이 열리면 그게 코리아 패싱인 거다.”
 
미국 입장에서도 향후 협상 국면을 위해 한국이 대화의 끈을 놓지 않길 원한다는 건가.
“그렇다. 미국도 주도적으로 나서면 그만큼 협상 과정에서 지불해야 할 몫이 늘어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경수로 협상 때도 그래서 한국을 끌어들인 거 아닌가. 앞으로 북핵 동결과 감축 과정에서도 미국이 그 부담을 100% 떠맡진 않을 거라고 본다. 굳건한 한·미 동맹 속에서 우리가 운전석에 앉기를 미국도 바라고 있을 거다.”
 
지난 6월 한·미 정상회담 때도 동행했는데.
“그때만 해도 수행팀이 완전히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어쨌든 여기까진 도와 드려야겠다 싶어 마지막 수행 대변인 역할을 맡게 된 거다. 그전엔 당선되자마자 정상 간 전화통화를 하지 않았나. 그때 대단히 호의적인 대화를 나누는 걸 곁에서 보면서 공감대가 잘 형성되는구나 싶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때도 수행했는데 그때는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책을 어떻게든 풀어보려 애쓰는 상황이었다면 지금은 미국이 문 대통령에게 거는 기대가 상당하다는 점에서 사뭇 다르다.”
 
정진석 의원 너무 패륜적, 도저히 용서 못해
문 대통령과의 인연은 언제 시작됐나.
“참여정부 인수위 때 처음 봤다. 그 후 청와대에서 업무적으로 뵙다가 봉하에 내려간 뒤 노 전 대통령 검찰 조사 문제를 상의하고 서거 후 재단을 만들면서 같이하게 됐다. 본격적으로 ‘정치인 문재인’과 함께한 건 2011년 『운명』 북콘서트를 하고 야권통합운동에 나서면서다. 그때만 해도 옆에서 도울 사람이 거의 없었다.”
 
노 전 대통령은 마지막까지 함께했는데.
“(이름을 열거하며) 그분이 정말 좋아했던 사람은 따로 있었다. 나는 막내로 결합하다 보니 퇴임 후에도 막내가 따라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해서(웃음).”
 
김경수에게 노무현이란 어떤 존재인가.
한 시간 이상 거침없이 논리정연하던 그가 일순간 말을 멈췄다. 30여 초 동안 그는 오른 손가락으로 탁자 유리만 톡톡 칠 뿐 미동도 하지 않았다. 눈가는 어느새 충혈되기 시작했다. 잠시 뒤 그가 말문을 열었다. “한마디로 얘기하기가 어렵네요.” 다시 짧은 침묵이 흐른 뒤 그가 말을 이었다. “대통령 묘역에 ‘함께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라고 새겼는데 그걸로 갈음하시죠.”
 
김경수에게 문재인이란.
“노 전 대통령이 남긴 숙제를 함께 해나가고 있는 분? 가장 큰 숙제는 이번만큼은 반드시 꼭 성공한 대통령을 만들어보는 거다. 이는 대한민국의 숙제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가 성공할 수 있다고 보나.
“성공시켜야 하고, 또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참여정부 때의 경험도 중요한 자산이 될 거다.”
 
정진석 의원의 ‘자살’ 발언이 논란이다.
“특별히 말을 많이 하고 싶진 않다. 강력하게 법적 대응할 거고, 저쪽이 의도하는 정쟁화 시도에는 일절 응할 생각이 없다. (잠시 말을 멈췄다가) 그날 아침 노 전 대통령이 나가려고 할 때 권양숙 여사가 ‘같이 나갈까요’라고 묻자 ‘됐다’며 그냥 나가신 거 아니냐. 그때 함께 나서지 못한 게 평생 한이 돼 있는 분의 가슴에 그런 식으로 못을 박는 건 너무나 패륜적이다. 이번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원래 정치인을 꿈꿨나.
“전혀. 출마하지 않는 게 결혼 조건이었다. 그런데 대통령의 서거가 인생을 바꿔 놓았다. 그때는 집사람도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우리가 합시다’ 그러더라.”
 
정치 말고 인생의 버킷 리스트가 있다면.
“자유롭게 되면 봉하로 내려가 노 전 대통령 기념사업을 열심히 할 생각이다. 기념관장을 맡고 싶은데 경쟁률이 워낙 높아서(웃음). 원래 노 전 대통령과 봉하에서 함께하려던 일들이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어린이들에게 왜 민주주의가 좋은 건지, 공동체가 왜 소중한지 알려주는 공간을 만드는 게 그중 하나다. 대장(노 전 대통령)도 그걸 바라지 않겠나.”
 
 
박신홍 기자 jbje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