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기획] 돌봄의 사회화, 성년후견제 <에필로그>
나홀로 성년후견, 기자가 직접 해보니
나홀로 성년후견, 기자가 직접 해보니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전화는 수시로 걸려왔다. 전화 속 목소리는 늘 다급했고 화가 나 있었다. 일하는 중이라 해도 “당장 집으로 오라”는 말을 반복했다. 전화를 못 받으면 받을 때까지 했다. 온화하고 배려심이 넘쳤던 아버지는 그렇게 변하셨다. 간혹 “내가 요즘 정신이 오락가락한다”며 미안해 하실 때를 제외하고 말이다.
신청서 다운로드 받아 서류작성
첨부서류 빼놓지 않고 제출해야
재산목록 위해 주민센터·은행 방문
업무 매뉴얼 없어 한참 기다려야
변호사 없는 진행 처음부터 막막
고령화 시대 좋은 가이드 됐으면
상황은 계속 악화됐다. 어떻게든 아버지의 불안감을 해소시키고 생활 전반을 관리해야 했지만 ‘아들’이 대신할 수 있는 영역엔 제약이 너무 많았다. 이미 각종 세금과 아파트 관리비 등 일상 업무 처리가 안 되면서 문제가 커지던 상황이었다. 누군가 이를 대신해 처리해야만 했다. 그래서였다. 성년후견을 신청하기로 한 것은. 그간 무심히 지나쳤던 ‘도움이 필요한 성인에게 후견인을 지정해 폭넓은 보호와 지원을 제공한다’는 광고 문구가 그즈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청구서 작성보다 까다로운 첨부 서류 확보
청구서 작성보다 까다로웠던 것은 첨부 서류를 확보하는 일이었다. 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체로 필요한 서류 종류가 8~9가지가 됐다. 일단 청구인과 사건본인, 후견인 후보자에 대한 기본적인 서류가 필요했다. 주민센터(동사무소)에서 각자의 가족관계증명서, 주민등록표등(초)본을 발급받았고, 아버지는 기본증명서도 뗐다. 평상시 다니던 병원에 가서 진단서도 발급받았다.
선순위 상속인들의 동의서도 받아야 했다. 사건본인이 사망할 경우 상속인이 되는 사람들의 동의서다. 통상 1순위 상속인인 배우자와 자녀(직계비속)들이다. “○○○의 성년후견인으로 □□□을 선임하는 데 동의한다” 취지의 문서를 작성해 제출하면 된다. 각각의 동의서에는 당사자의 인감도장을 찍고 인감증명도 첨부해야 한다. 1남 2녀 중 막내인 기자의 경우 어머니와 누나 2명의 동의서를 받았다. 후견등기사항부존재증명서는 가정법원 종합민원실에서 확보했고 범죄경력조회서는 경찰서에서 받았다. 필요 서류를 모두 갖춘 뒤 가정법원을 찾았다. 법원 내부 은행에서 인지대(8만8800원)와 송달료(5000원)를 납부한 다음 종합민원실에 청구서를 접수시켰다. ‘2017느단○○○○’이라는 사건번호를 받았다. 서류를 준비하기 시작한 지 두 달 만이었다.
접수 후 열흘 만에 보정명령서가 집에 도착했다. 병원 진단서 내용을 보다 상세하게 해서 제출하라는 취지였다.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된 사람’이라는 성년후견 개시 요건과 관련해 내용이 미비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시 병원을 방문해 좀 더 상세하게 소견을 밝힌 진단서를 받아 제출했다. 그러자 심문기일 소환장이 날아왔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 법원에 출석했다. 재산 상태와 부양계획 등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한 달쯤 뒤 성년후견이 개시됐다며 심판문이 집으로 송달됐다. 송달된 심판문을 들고 가정법원에서 열리는 친족후견인 교육에 참가했다. 한 시간 반에 걸쳐 후견인의 권한과 역할, 주의사항에 대해 배웠다. 사건 확정 후 두 달 안에 내야 하는 재산목록 작성 방법에 대해선 법원의 상담 프로그램을 이용해 법무사와 따로 약속을 잡고 만나 무료로 배울 수 있었다.
후견인에게 필수품인 3종 세트가 있다. 심판문과 후견등기사항 증명서, 확정증명원이다. 가정법원 종합민원실에서 발급받을 수 있다. 이 세 가지 서류와 자신의 신분증이 있다면 어디에서도 피후견인을 대신해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더 얘기하자면 인내심도 필요하다.
재산목록 작성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주민센터와 은행을 방문하는 일이었다. 사망자의 재산을 조회해 주는 시스템을 후견인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민센터 직원에게 “후견인 재산조회(안심상속 원스톱 서비스)를 신청하러 왔다”고 말했다. 3종 세트도 제시했다. 하지만 직원 얼굴에는 곤혹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성년후견이 뭐죠”라는 질문에 법원에서 나눠 준 책자까지 동원해 한참 설명했다. 그러자 잠시 앉아 있으라고 하더니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통화한 끝에 후견인도 재산조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공문을 찾아냈다. 법원 책자의 관련 내용까지 다 복사한 끝에 1시간 만에 접수를 받아줬다. 시중은행에서 금융거래조회 서비스를 신청할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일단 재산조회가 접수되면 몇 주 사이 결과가 문자메시지 등으로 통보된다. 이 내용을 기반으로 개별 내역서를 받아야 한다. 즉 예금이 있다고 나오면 해당 은행에서 잔액증명서와 예금거래내역서를 떼야 하고, 부동산이 있다고 나오면 등기부등본과 공시지가확인서를 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이 또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금융회사들의 후견인에 대한 업무처리 속도는 정말 느리기 때문이다. 즉 은행 창구에 앉아서 상당 시간을 기다리는 데 허비해야 한다는 얘기다.
변호사 선임하면 300만~500만원 들어
여기까지가 지난 2월부터 ‘나홀로 성년후견’을 진행해 온 기자 개인의 경험담이다. 개인사에 해당하는 내밀한 얘기까지 이렇게 지면을 통해 쓴 것은 처음 성년후견을 청구하려 했을 때 맞닥뜨렸던 막막함에서 비롯됐다. 열심히 인터넷 검색창을 두드려 봤지만 도대체 어떻게 서류를 작성하고 뭘 준비하면 되는지에 대한 정보는 찾기 힘들었다. 도움이 될 것 같아 클릭한 글엔 ‘우리 로펌이 잘한다’는 광고성 내용만 넘쳐났다. 변호사를 선임해 보려 했으나 300만~500만원은 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마음을 접었다. 결국 조금 수고스럽고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물어물어 혼자 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알게 된 내용들을 조금이나마 공유하고 싶었다.
모든 사람에게 성년후견이 필요한 건 아니다. 다만 갈수록 고령화되는 사회에서 부모의 부양은 필연적으로 장기전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장기전에는 단기전에 필요 없었던 여러 가지 변수들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성년후견제는 그런 관점에서 부모를 부양하는 이들이 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