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국 자동차 산업
공교롭게도 그의 출신지인 호주, 직전 부임지 인도 두 곳 모두 GM이 2010년대 들어 시장에서 철수한 지역이다. 카젬 사장은 인도 부임 1년 5개월째였던 지난 5월 쉐보레 브랜드를 올 연말까지 철수하겠다고 밝혔다. 당초 GM본사는 구자라트주 할롤에 위치한 생산 공장까지 중국 상하이자동차(SAIC)에 매각하려 했으나 양측 간 가격 차이로 인해 일단 판매 부문부터 정리하기로 결정했다.
호주·남아공 등 구조조정하는 GM
한국 군산공장도 정리 가능성 커
프랑스 자동차 생산 100만 대 줄어
곤, “고용 늘리라” 마크롱 요청 거부
국내업체도 “인건비 더 늘면 해외로”
일감 줄어든 군산공장 주간조만 근무
GM의 한국시장 출구 방식으로도 전면 철수보단 디자인·엔지니어링 파트만 일단 남기는 방식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디자인센터·기술연구소가 있는 인천 부평 사업장은 존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정리 수순 첫 번째 타깃으로 꼽히는 곳은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올란도, 준중형세단 크루즈를 생산하는 군산공장이다. 주간조와 야간조, 2교대제로 운영되는 일반적인 완성차 조립공장과는 달리 군산공장은 주간조(오전 7시~오후 3시40분)만으로 공장이 가동 중이다. 생산량 대비 국내 주문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풀체인지(완전변경) 모델로 사내외에서 기대를 모았던 크루즈의 판매량은 지난달 1050대로 아반떼(7109대)의 15%에도 못 미쳤다. 올란도의 후속작인 에퀴녹스 역시 미국에서 수입할 예정이다. 한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GM은 자사가 보유한 공장터를 매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물량이 없어 군산공장 라인이 멈추게 되더라도 그냥 공장을 폐쇄할 뿐, 부동산을 팔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9년 GM은 미국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하면서 미국 내 14개 공장을 폐쇄했다. 당시 폐쇄됐던 공장 중 2곳(스프링힐·오리온타운쉽)은 재가동했지만, 나머지 공장은 여전히 폐쇄된 상태다.
이남석 중앙대 교수(경영학)는 “정규직 노조가 지식인의 후원으로 고임금을 받는 사이, 국내 자동차 산업이 프랑스·이탈리아 등 남유럽 국가의 침체 경로와 유사한 패턴을 밟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과 언론의 후원을 받은 강성 노조가 생산성 대비 과도한 보상을 받고, 그 결과 차량 경쟁력이 떨어진 완성차 업체가 도산 위기에 몰려 공적자금이 투입되지만, 여전히 법적·정치적으로 고임금 체계를 해결하지 못해 라인을 해외로 이전하는 구조다.
현지생산 중심 르노-닛산 1위로 부상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본사는 현재 프랑스가 아니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해직 근로자(366명)에게 추가 연금(3만 유로)을 지급하지 않으면 완성차 조립공장을 폭파하겠다고 협박한 프랑스 특유의 강성 노조 때문이다. 같은 해 프랑스 정부가 공적자금 60억 달러를 지원하며 회유책을 쓰기도 했지만, 르노-닛산은 신규 생산 라인을 전부 해외로 돌렸다.
2015년에는 프랑스 정부가 급작스레 르노 보유 지분을 15%에서 20%까지 늘리면서 회사 측을 압박했다.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높은 닛산에 르노를 묶어 자국 내 생산량·고용을 보장하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당시 경제장관으로 재직했던 에마뉘엘 마크롱 현 대통령이 주도했다. 그렇지만 두 회사 연합을 이끄는 카를로스 곤 회장은 마크롱의 요구를 단번에 거부했다. 곤 회장은 올 2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프랑스 정부가 르노를 국가대표 기업으로 간주하는 한 르노-닛산 합병은 논외의 대상”이라며 “프랑스 정부의 요구를 수용한다면 개발·디자인·상품화에 이르기까지 지금과 같은 르노-닛산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잘라 말했다.
국내 자동차 산업에서도 프랑스와 같은 사태가 충분히 벌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상대적 고임금이 지속될 경우 더 이상 국내에서 대량 생산은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달 14일 현대·기아·한국GM·르노삼성·쌍용 등 국내 완성차 5사는 “기아차 통상임금 판결에 따라 약 3조원의 추가 인건비 부담을 지게 될 경우, 국내 생산을 줄이고 인건비 부담이 낮은 해외로 생산 거점을 옮기는 방안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남석 교수는 “생산만이 자동차 산업의 전부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남유럽 국가처럼 보조금으로 완성차 업계가 연명할 처지에 놓일 수 있다”며 “디자인·엔지니어링 부문이나 상대적으로 고부가가치인 자율주행부품 분야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한국이 자동차 강국의 위상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