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리네 민박’ 문경수 탐험가가 들려준 탐험 이야기
“실의에 빠진 아이들에게 이 하늘을 보여 주면 좋을 텐데.” 그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이 아름다운 우주의 일부분이라는 걸 알게 되면 그 누구든 희망을 갖게 될 거란 확신이 들었습니다.
서호주 킴벌리 지역서 조난 겪고
호주 여행사 취직해 과학에 관심
지질학자 반크라넨동크 알게 돼
NASA의 호주 탐사에 세 차례 동행
‘효리네 민박’ 출연 이후 “과학 탐험가가 있는 줄은 몰랐다” “탐험가는 도대체 뭘 먹고사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현재는 호주 여행사에 소속돼 일반인 대상 탐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답니다. 틈틈이 국제 탐사 프로젝트에 동행하기도 하고요.
사흘 내리 걸어 원주민 마을 도착
한낮 기온이 40도를 넘나들었습니다. 음식은 오렌지 한 알이 전부였고, 어쩌다 발견한 물웅덩이엔 모기 유충이 가득했어요. 낮에는 탈수증세와 싸우고 밤에는 야생 딩고(들개)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경계해야 했습니다. 유분이 많은 유칼립투스 잎을 모아 매일 밤 불을 피웠습니다. 마지막이 될 수 있겠다 싶어 갖고 있던 카메라로 서로의 영정사진을 찍어 줬죠. 종이지도 위에 ‘여기 2명의 아시아인이 머물렀다’는 생존 노트를 남기고요. 가장 공포스러웠던 건 따로 있었습니다. 종일 걸어도 제자리인 것처럼 풍경이 바뀌지 않았어요. 실존과 시간의 흐름을 의심하는 순간이 계속됐지요. 밤하늘의 남십자성에 의지해 사흘을 내리 걸어 겨우 원주민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한 달 뒤 같은 곳에서 조난당한 일본인들은 마을을 불과 1㎞ 앞두고 같은 자리를 맴돌다가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전재영씨는 이 사건을 계기로 인간의 인지영역에 관심을 갖게 됐고 지금은 인공지능(AI)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때의 강렬한 기억을 잊지 못해 탐험가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한국 자연의 과학적 가치 알려졌으면”
호주는 태초의 지구를 간직한 동시에 화성과 유사한 환경을 갖고 있어요. 서호주 샤크만에는 35억 년 전 지구 최초의 광합성을 했던 시아노박테리아가 스트로마톨라이트라는 버섯 모양의 돌에 아직도 붙어 살고 있어요. 광합성으로 산소를 생성하기 때문에 장래 화성의 대기를 바꾸는 데 이 박테리아가 활용될 수 있답니다.
2010년 이후로 세계적인 우주생물학자들과 호주 탐사를 갈 일이 많았는데 매번 이들의 개척정신에 놀라곤 해요. 수천만원짜리 드론으로 화성과 유사한 필바라 지역을 촬영하다가 드론이 두 차례나 박살 난 적이 있었어요. ‘저 비싼 걸 어쩌나’ 걱정이 앞섰는데 이 친구는 마냥 실실대는 겁니다. 베이스캠프에서 밤새 뚝딱거리더니 임시방편으로 촬영을 완수하더군요. 책임 소재를 따지기보다 ‘당면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를 고민하는 태도가 몸에 배어 있었어요. 이들에게 화성에서의 생존을 다룬 영화 ‘마션’은 공상과학이 아닌 현실이었던 거죠. 실리콘밸리에서 테슬라·스페이스엑스를 만든 일론 머스크가 나온 것도 이런 환경 때문일 겁니다. 호주에서 시작한 제 여정은 다른 대륙으로 확장됐습니다. 2013년 8월 몽골 고비사막에선 초식공룡 브라키오사우루스의 화석을 찾았고 2015년엔 알래스카에 다녀왔어요. ‘효리네 민박’을 계기로 제주도를 새롭게 보게 됐어요. 제주 비양도에서 80대 해녀 할머니를 만났는데 그 어떤 전문가보다 생생하게 화산섬의 구조를 알고 계시더군요. 한국에도 울릉도·제주도 등 세계적인 가치를 인정받는 지역이 많아요. 이번 계기로 한국 자연의 과학적 가치가 널리 알려졌으면 합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