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균형'…진보진영도 전술핵 재배치 필요성 제기

중앙일보

입력 2017.08.20 01:15

수정 2017.08.20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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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 위로 떠오른 전술핵 재배치 논란
북한 핵·미사일 위기가 고조되면서 국내 정치권에서도 자체 핵무장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핵 개발과 핵탄두 미사일 탑재에 성공한 나라가 핵과 미사일을 스스로 포기한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북한의 핵 보유를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며, 이에 맞서 “핵에는 핵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게 핵무장 불가피론의 요체다. 더욱이 그동안엔 보수층을 중심으로 전술핵 재배치 주장이 제기됐던 데 비해 최근 들어서는 진보진영 일각에서도 핵에 의한 ‘공포의 균형’ 외엔 뾰족한 대응책이 없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박선원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이 “핵 균형과 전천후 대북 억지력 유지를 위해 전술핵을 재반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게 대표적이다. 특히 박 전 비서관은 노무현 정부 시절 비핵화 전략을 주도했고 문재인 대선 캠프에서도 외교안보 전략 마련에 깊이 관여했다는 점에서 그의 발언은 적잖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박선원 전 靑 비서관 재반입 주장에
“북핵 억제효과” 학계도 갑론을박
여권 “자기모순식 정치 공세” 일축

청와대는 일단 “개인 의견”이라며 선을 그었다. 정부도 1991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유지하는 게 공식 입장이라고 거듭 밝혔다. 하지만 외교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에 대한 논의가 이미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장은 “전략 핵무기는 사용하는 쪽의 정치적 부담이 크고 핵보유국 간 전면적인 핵전쟁으로 확전될 가능성도 큰 반면 제한된 범위에 사용하는 전술핵은 북한이 핵을 쓰지 못하도록 막는 억제력이 크다는 점에서 유용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도 “미국과 (전술핵 재배치) 논의를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북한과 중국의 계산을 복잡하게 만드는 변수가 될 수 있다”며 “북한이 노리는 한·미 동맹 균열을 막을 수 있고 동아시아 유일의 핵보유국이라는 중국의 지위도 흔들리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한을 향한 이중적 태도에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같은 흐름에 발맞춰 보수정당들도 일제히 자체 핵무장론을 꺼내들었다. 당장 자유한국당은 ‘전술핵 재배치’를, 바른정당은 ‘핵 공유’를 각각 전면에 내세웠다. 더욱이 이들 정당은 북핵 위기를 계기로 안보정국의 주도권을 거머쥐고, 이를 통해 그동안의 침체된 당 분위기에서도 탈피하겠다는 전략을 세워 둔 상태다. 그런 만큼 보수 지지층을 겨냥한 선명성 경쟁도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한국당은 지난 16일 의원총회를 열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해 주한미군 전술핵의 한반도 재배치를 당론으로 정식 의결했다. 91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한반도 비핵화 선언 이후 주한미군 전술핵이 한반도에서 모두 철수한 지 26년 만에 한국당이 전술핵 재배치 논의에 다시 불을 지핀 셈이다.
 
이에 바른정당은 전술핵 대신 핵 공유를 내걸고 차별화를 시도하고 나섰다. 핵 공유란 전술핵과 같이 북한의 핵 위협에는 핵으로 대응하되 핵무기를 우리 영토 안에 들여와 주변국과 마찰을 빚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핵잠수함 등 미국 전략자산에 포함돼 있는 핵무기를 함께 관리·운용하자는 주장이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등도 평소 이 같은 주장을 펴 왔다. 하태경 최고위원도 “자체 핵무장은 악수고, 전술핵 배치는 하수며, 핵 공유가 진짜 보수”라며 “굳이 국내에 핵을 배치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핵 방어 능력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은 “한국당과 바른정당의 자체 핵 보유 주장은 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정치 공세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우원식 원내대표는 “전술핵 재배치 주장은 북한의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는 자기모순에 빠지는 것”이라며 “야당이 단지 정부 정책에 반대하기 위해 제기한 무책임하고 위험한 발상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정용환 기자 narrativ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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