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얼 경제사] 기호음료의 세계화
그림1을 자세히 보자. 왼쪽 인물은 머리에 터번을 두르고 온몸을 긴 옷으로 가린 모습이다. 그가 손에 들고 있는 음료는 커피다. 가운데 인물은 중국 청나라 사람이다. 그는 차를 마시고 있다. 오른쪽 인물은 깃털로 만든 옷과 머리장식으로 신체의 일부를 가리고 있다. 아메리카의 원주민이다. 그가 마시는 음료는 코코아다. 뒤포의 책은 다양한 지역에서 수입한 기호음료를 소개하고 각 음료가 지닌 고유한 맛과 향기, 그리고 제조 방법과 건강상의 효능을 설명하고 있다.
노동계층도 귀족 기호품 즐기려
더 일하고 더 벌자는 풍조 확산
유럽 산업혁명 원동력으로 작용
아프리카산 커피, 이슬람 통해 유럽으로
차의 역사는 커피보다 훨씬 길다. 차는 중국 남서부지역이 원산지인데 이미 한나라 사람들이 즐겨 마셨다는 증거가 있다. 수와 당 시기에는 우리나라와 일본에도 전파될 만큼 차의 인기가 폭넓었다. 당의 육우가 쓴 『다경(茶經)』은 차의 재배, 가공, 품질 평가, 음용법 등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상세했는가를 잘 보여 준다. 이후 여러 왕조를 거치면서 차의 생산지가 확대됐고 다양한 가공법이 개발됐다.
차가 유럽에 전해진 것은 장거리 무역 덕분이었다. 우선 아시아 항로를 개척하고 마카오에 무역기지를 건설한 포르투갈 상인들이 차의 존재를 널리 알렸다. 이어서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가 최초로 중국 녹차를 수입해 암스테르담 시장에 풀었다. 이를 계기로 많은 유럽인들이 차의 은은한 맛과 향기에 빠지게 됐다. 특히 영국에서는 동인도회사가 수입한 막대한 물량의 차가 사람들을 대중을 도취시켰다. 18세기 중반에는 수입가격 인하에 힘입어 차가 영국인들 사이에 국민음료로 자리를 잡았다.
코코아를 처음 접한 유럽인은 다름 아닌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였다. 1502년 그와 선원들이 온두라스 해안에 상륙했을 때 아스텍 부족장이 가져온 선물 중에 카카오 콩이 있었다. 그들은 코코아 음료를 만들어 콜럼버스에게 건넸지만 콜럼버스는 이 ‘쓰디쓴 물’에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했다. 이 일화가 말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 코코아가 아스텍 제국에서 높은 가치를 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국가적 의례와 종교적 예식에서 코코아는 빠져서는 안 되는 구성요소였다. 권력자와 엘리트층의 권력과 권위를 상징하는 음료였기 때문이다. 황제 목테수마는 거대한 창고를 두고서 자신이 정복한 사람들에게 카카오 콩을 조공으로 바치도록 강요했다. 아스텍인들은 카카오 콩을 화폐로 사용하기도 했다. 콜럼버스는 이런 가치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17년 후 아스텍제국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을 점령한 코르테스는 달랐다. 이 눈치 빠른 정복자는 코코아를 스페인으로 가져갔고, 곧 값비싼 음료로서 유럽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게 됐다. 커피와 차가 북유럽 신교도 중산층의 음료라면 코코아는 남유럽 구교도 귀족층의 음료였다.
중국산 차, 중남미 코코아도 중상주의 부채질
물론 이런 선택의 자유가 가난한 노동자들에게까지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이중에 하나도 사서 마실 수 없는 형편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기회가 완전히 봉쇄된 것은 아니었다. 다행히 기호음료의 수입이 증가함에 따라 가격이 점차 낮아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노동자는 구매력을 키우기 위해 어떻게 대응했을까? 하나는 노동시간을 늘리는 것이었다. 적게 일하고 적게 버는 것보다 많이 일하고 많이 버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또 하나는 자급자족적 생산을 그만두고 시장에 판매할 수 있는 물품 위주로 생산하는 것이었다.
이런 변화들은 실제로 유럽의 산업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예를 들어 18세기에 영국이 세계 최초로 산업혁명에 들어서게 된 데에는 기술진보나 자본증가 같은 공급요인도 작용했지만 소비욕구의 증대라는 수요요인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경제사학자들은 산업(industrial)혁명과 대비해 근면(industrious)혁명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수요 변화가 경제발전에 끼치는 영향을 강조했다. 세계화된 커피·차·코코아에 대한 소비 욕망은 바로 근면혁명이라는 역사적 변화를 이끈 핵심 원동력이었다.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학·석사 학위를 마친 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경제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비주얼 경제사』『세계경제사 들어서기』『경제사: 세계화와 세계경제의 역사』 등 다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