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욱의 빅 히스토리] 20억 명 머리 속의 기생충, 톡소포자충
덜 익힌 고기, 씻지 않은 채소
고양이 배설물 등 통해서 감염
기생충에게 유리하게 마음 조종
조현병·자살·공격성 폭발과 연관
도파민 생산·분비 증가에 영향
쥐가 고양이 무서워하지 않게 해
쥐가 고양이 오줌에 매력 느끼게 만들어
웹스터가 2000년 8월 발표한 결과는 한걸음 더 나아갔다. 톡소는 들쥐가 겁을 덜 먹게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고양이 오줌 냄새에 매력을 느끼게 만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효과에는 ‘치명적인 고양이의 유혹’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무엇이 이런 현상을 일으키고 있을까?
2009년 영국 리즈대학 글렌 맥콘키의 연구팀이 발표한 내용을 보자. 톡소의 유전체를 분석한 결과 도파민 전구체의 생산을 돕는 특정효소(tyrosine hydroxylase)를 만드는 유전자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도파민은 포유동물의 뇌에서 쾌락 및 고통에 관여하는 신경전달 물질이다. 앞서 1980년대 중반엔 톡소에 만성 감염된 설치류의 도파민 수준이 그렇지 않은 생쥐에 비해 14% 높다는 사실이 보고됐었다.
2011년 11월 영국 리즈대학 연구팀은 톡소가 도파민 생산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공공과학도서관(PLOS One)’저널에 발표했다. 쥐가 고양이를 두려워하지 않는 원인은 감염된 뇌세포에서 도파민의 생산과 분비가 여러 배 증가한 탓으로 나타났다. 도파민은 뇌의 보상 및 쾌락 중추를 제어하며 공포 같은 감정 반응을 조절한다.
감염돼 낳은 아이 조현병 가능성 커
2002년 그는 프라하에서 교통사고 원인을 제공한 운전자와 보행자(146명)는 일반 주민(446명)보다 감염율이 2.6 배 이상 높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들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톡소 감염은 무모한 행동과 연관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같은 연관성은 다른 연구팀의 후속연구에서도 확인됐다. 그 결과 톡소가 과거 생각했던 것보다 인간에게 더욱 해롭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사람의 경우도 도파민을 복용하면 충동적이고 위험한 행동을 할 위험이 커진다.
2008년 연구자들은 톡소 항체를 지닌 사람은 조현병 발병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했다. 38건의 기존 연구를 검토한 2012년의 한 논문에 따르면 조현병 환자의 톡소 항체 보유율은 일반인의 3배였다. 또한 톡소에 감염된 조현병 환자는 그렇지 않은 환자와 뇌의 해부학적 구조가 다르며 증상도 더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루이스빌 대학의 진화생물학자 폴 이왈드는 조현병의 3분의 1 가량은 톡소 때문에 유발된 것이라고 믿고 있다.
또한 톡소 감염은 상황에 맞지 않게 공격성이 폭발하는 증상, 즉 간헐적 폭발성장애와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시카고대학 연구팀이 지난해 3월 임상정신의학 저널에 발표한 내용을 보자. 연구팀은 폭발성장애 환자, 다른 정신질환자, 건강한 일반인 등 성인 358명을 검사했다. 그 결과 폭발성장애환자는 일반인에 비해 양성반응이 2배 이상으로 나타났다. 다른 정신질환자도 감염율이 더 높았다. 모든 그룹에 걸쳐 양성 반응이 나온 사람은 음성에 비해 공격성, 분노, 충동성 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톡소가 뇌의 신경전달물질을 변화시켜 공격성을 키우는 것으로 추정했다.
한편 여기 감염된 수컷 들쥐는 그렇지 않은 들쥐보다 암컷에게 특별히 인기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생충에 감염된 개체는 이성의 호감을 받지 못하는 진화적 경향과는 반대의 현상이다. 싱가포르 난양기술대학의 연구팀이 2011년 11월 ‘PLOS ONE’에 발표한 내용이다. 이런 들쥐는 짝짓기에 더 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입할 뿐 아니라 이 과정에서 걱정일랑 던져 버리고 과감하게 행동한다. 톡소는 섹스를 통해 암컷에게 옮겨지고 후손 중 60% 가량에게 전달된다. 이와 비슷한 효과는 사람에게서도 확인된다. 톡소에 감염된 남성은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농도가 이상하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남성은 특별히 사내답고 지배적이라는 평가를 여성에게서 받는 경향이 있었다. 2013년 실험생물학 저널에 실린 내용이다.
자살 시도할 위험도 7배나 높아
여기에 양성반응을 보인 사람은 자살을 시도할 위험이 그렇지 않은 사람의 7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미시간주립대학의 리나 브룬딘 박사는 “톡소포자충은 인체에서 휴면상태에 들어가는 것으로 생각됐지만 사실은 뇌세포에 염증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염증에 따른 대사산물이 축적되면 뇌의 신경전달물질에 변화를 일으켜 우울증이나 경우에 따라 자살 생각을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기존의 연구는 모두가 상관관계에 대한 것일 뿐 인과관계에 대한 것은 없다. 사람을 감염시켜서 실험을 할 수는 없는 탓이다. 하나의 방법은 감염된 사람을 치료해서 행태가 달라지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문제는 지방에 둘러싸인 낭종 속에 숨어 있는 톡소를 제거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이다.
집고양이 때문에 감염될 확률 아주 낮아
한국은 어떨까? 한국의 길고양이 감염율은 10%대로 알려져 있다. 감염돼도 1, 2주 후에는 면역력이 생겨서 감염력이 있는 유충이나 주머니를 내보내지 않는다.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 때문에 감염될 가능성은 정말로 낮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우리나라 일반 국민의 2~8%, 서울대병원에 입원한 10세 이하 환자들의 8.5%가 항체 양성반응을 보였다. 감염율이 그 정도라는 얘기다(임상기생충학,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11).
다만 임신부는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 고양이를 집안에만 두고 익힌 통조림 음식만 먹일 경우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사냥을 하거나 익히지 않은 고기를 먹는 고양이다. 급성 감염이 된 고양이는 2주간 5억 개의 감염성 낭포체를 배출한다. 일년간 물이나 흙에서 감염성을 띠고 살아남을 수 있다. 한알이라도 접촉하면 감염될 수 있다. 치료를 하면 기생충이 해를 끼치지 않게 만들 수는 있으나 완전 제거는 불가능하다. 백신과 치료법은 개발 중이다. 항말라리아제와 설파제를 병용하지만 만족스러운 약제는 아직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