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인문학에 길을 묻다] 게오르크 뷔히너 『당통의 죽음』
당통 "혁명은 자기 친자식도 잡아먹는다"
왕정 복고 혼란 겪은 프랑스혁명
60년 지나고 나서야 공화정 완결
과업 지향형 리더 로베스피에르
극단적 공포정치 펴다 단두대로
인간관계 지향적인 리더 당통은
20세기에 민주주의 수호자로 복권
연극 중반, 당통과 로베스피에르의 만남에서 긴장이 고조된다. 당통은 로베스피에르가 명분으로 내세우는 도덕이라는 것이 악덕이 될 수도 있으므로 도덕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죽이는 행위를 그만둘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로베스피에르는 혁명은 아직 반밖에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혁명의 완수를 위해서 걸림돌이 되는 가진 자들을 마저 처형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당통은 그가 도덕의 탈을 쓰고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자, 로베스피에르는 자신의 양심은 깨끗하다고 응수한다. 당통은 “당신은 하늘이 보낸 경찰이라도 된다는 건가?”라고 힐문하며 혁명이 공화국에 이익을 가져다 주기 위해서는 죄 없는 시민들을 죄인 취급해서는 안된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로베스피에르는 “나는 죄 없는 사람을 한 사람도 죽인 일이 없다”고 응수했고, 당통은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이며 퇴장해 버린다.
결국 1794년 4월 5일 당통은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단두대에서 처형된다. 로베스피에르파가 승리한 것이다. 당통이라는 걸림돌이 사라지자 로베스피에르는 공포 정치를 확대했고 가뜩이나 경제난에 지친 민중들의 불만이 가속됐다. 민중의 분노가 극에 달하자 로베스피에르는 국민공회 내부 반대파에 의해 체포돼 1794년 7월 단두대에서 처형당했다. 당통이 죽은 지 불과 3개월 만이다. 그후 프랑스는 총재 정부를 구성했으나, 외국군의 침공과 경제파탄으로 정국이 통제불능의 상태가 되자 나폴레옹이라는 젊은 장군이 허약한 정부를 쿠데타로 쓰러뜨리고 집권했다. 나폴레옹이 독재정치를 하다가 스스로 황제로 등극하여 제국을 선포하면서 자유와 평등의 민주공화정의 기치를 내건 프랑스혁명 정신은 빛이 바래게 되었다.
혁명처럼 파괴적 기업 혁신은 거의 없어
1789년 발발한 프랑스혁명이 사회변혁을 통해 명실상부한 시민 민주주의 공화정으로 완결된 것이 1848년 2월 혁명이라고 볼 수 있다. 프랑스 국민이 혁명을 통해 자유·평등·박애가 보장되는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 근 60년이 걸린 셈이다.
오스트리아 출신 경제학자 슘페터는 1947년 경영에 있어서 ‘혁신(innovation)’ 이라는 개념을 학문적으로 처음 도입했다. 이후 무수히 많은 기업들이 혁신의 기치를 내세우고 기업조직을 바꾸려고 했지만, 근본적인 혁신이 달성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업무의 내용과 방식을 변경하는 점증적 혁신은 여러 번 있었지만, 프랑스혁명처럼 기업조직을 근본부터 바꾸는 ‘파괴적인 혁신’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프랑스혁명사를 되돌아보면서 두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아무리 혁명의 명분이 좋다고 해도 국가안보와 경제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권은 오래갈 수 없다는 것이다. 혁명주체들은 국왕을 비롯하여 성직자와 수구 귀족들을 숙청하고 국민주권을 확립하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이들은 외국군대의 침공, 그리고 경제난에 따른 물가폭등과 기아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민중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처단되고, 대체되는 악순환을 겪었다. 두 번째 교훈은 난세의 혼란기에는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프랑스혁명의 지도자들 가운데 두드러진 인물인 당통과 로베스피에르는 경영 리더십 연구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두 영웅이 활동하던 프랑스대혁명 시대와 오늘날 기업이 당면한 경영환경이 닮았기 때문이다.
로베스피에르는 혁명과업 완수를 위해서 공포 정치도 마다하지 않는, 극단적으로 ‘과업지향적인 리더’였다. 이에 비해서 당통은 전형적인 ‘인간관계 지향적인 리더’였다. 당통은 왕정을 무너뜨리고 프랑스 제1공화정을 세우는 데 핵심 역할을 한 투사였지만 친화력이 뛰어나 귀족들로부터 거리의 여자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을 포용했고 온건한 정치노선을 견지하면서 대중의 인기를 얻었다. 이에 비해서 로베스피에르는 혁명 이데올로기에 충실하여 반혁명 분자들은 누구든지 인민의 적으로 간주하고 이들을 처단하는 데 열정을 쏟았다. 리더십 상황이론에 의하면, 혁명과 같이 혼란기에는 로베스피에르와 같은 과업지향적 리더가 성과를 많이 낼 수 있어서 리더로서 적합하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혁명과업 수행에서 많은 실적을 달성하여 대중의 복수심을 충족시킴으로써 인기를 얻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는 공포정치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을 단두대로 보냄으로써 스스로 공공의 적이 됨으로써 인간관계의 파탄을 가져왔고 결국 단두대가 그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장사란 결국 이문이 아닌 사람 남기는 것"
당통과 로베스피에르의 비극적 죽음은 현대의 조직에 시사점을 주고 있다. 혁신은 어느 한 사람의 노력이나 원리에 충실한 것만으로 달성되기 어렵다는 것을 말해 준다. 모든 혁신에는 좌절과 숙성기가 필요하다. 프랑스혁명이 제대로 된 성과를 달성하는 데 근 60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 이처럼 한 조직이 기존의 질서를 동결시키고, 변화시키고 재동결시키는 혁신의 과정을 거친다고 해도 단번에 혁신되는 일은 매우 드물다. 기업은 리더를 바꾸어 가며 꾸준히 혁신을 하고 때로는 좌절도 겪고 그러면서 숙성을 하면서 혁신을 지속하는, ‘혁신의 사이클’을 거치면서 풍상을 이겨 내야 한다. 과거의 체제를 부정하고 단죄하는 혁신의 폭풍우 속에서도 사람을 선대하고 인재를 알아보며 선행을 베푸는 리더는 살아남을 수 있다. 조선후기 거상 임상옥은 “재물은 흐르는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 장사란 결국 이문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요즘과 같은 조직혁신의 리더십 교체기에 곱씹어 볼 필요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서울대 인문대 졸업, 독일 만하임대 경영학박사, 베를린 자유대 등 객원교수 역임. 대한리더십학회 초대 회장, 한독경상학회·한국인사조직학회 및 아시아-유럽미래학회 회장, 한국경영대학·대학원협의회 이사장. 『인적자원관리 5.0』 『모멘트 리더십』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