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뉴스토리아] 사우디의 카타르 목줄 죄기 왜?
‘중동의 강소국’의 계몽주의 왕가
사우디·이란 패권 경쟁 속 ‘조정’ 자임
왕조 보안 사활 건 사우디 결정적 자극
카타르, 중동에선 드물게 산업화 성공
입헌군주국에 여성·이주민 권리 향상
지역의 전제군주·독재자들 바짝 긴장
테러 무풍지대 이란에서도 자폭 공격
중동 긴장 가속화에 트럼프 책임론도
여기에 더해 미디어·교육·과학기술·스포츠·레저 등 21세기형 지식기반형 서비스산업의 중심지가 되겠다는 야망을 키우고 있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을 치른 데 이어 2022년 월드컵 개최권도 따낼 정도로 스포츠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중동의 교육 중심지로 자리 잡겠다는 야망도 키워 왔다. 수도 도하 외곽의 14㎢ 부지에 에듀케이션시티를 건립하고 버지니아코먼웰스대(미술·디자인), 코넬대(의학), 텍사스A&M대(공학), 카네기멜런대(경영·컴퓨터), 조지타운대(외교정책), 노스웨스턴대(미디어)의 분교를 유치해 중동의 교육허브로 거듭나고 있다. 인구의 10%를 차지하는 필리핀 이주자를 위해 페르시아만 연안국가로선 드물게 가톨릭교회 건립을 허락할 정도로 개방과 관용, 현대화를 이끌고 있는 중동의 ‘매력국가’로 자리 잡고 있다.
하마드는 즉위 이후 개방적인 개혁정치를 선보이면서 주목을 받아 왔다. 산업 다각화로 95년 이후 지금까지 연평균 15%가 넘는 경제 성장을 이뤘다. 2006년부터 아미르 대신 왕(King)이란 호칭을 쓰고 있다. 2013년 하마드로부터 국왕 자리를 양위받은 타밈은 아버지가 추구했던 중동·아랍세계의 변혁을 더욱 가속화하려 할 것으로 관측돼 왔다.
하마드 이후 카타르는 지역 내 여타 군주국과 확실히 다른 길을 걸어왔다. 이 지역에선 드물게 계몽정치를 펴 왔다. 99년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했으며 2005년 헌법을 채택해 입헌군주국가가 됐다. 이런 행동이 전제군주국가로 남녀 차별을 당연시하는 사우디 등 이슬람 와하비즘 신봉 왕실의 비위를 거슬렸을 가능성이 크다.
알자지라 설립해 중동 민주화에 영향
타밈 국왕은 군사령관이던 왕세자 시절부터 중동 정치에 깊숙이 개입해 왔다. 2011년 카다피를 권좌에서 밀어낸 리비아 시민혁명 당시 다른 중동 국가들이 머뭇거리는 사이 과감하게 반군에게 무기 등을 지원한 것은 물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리비아 폭격작전에 자국 전투기를 보냈다. 시리아 내전의 반군에게도 자금과 무기를 지원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서구에서는 발상이 대담하고 보는 안목도 국제적이고 미래 지향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이런 독자 행동은 사우디의 반발을 불러 이번 사태의 원인을 제공했을 가능성이 크다.
미군 기지 유치한 대표적 친미 국가
국경을 맞댄 사우디가 카타르의 이런 태도에 분노했을 가능성이 크다. 역사적으로 볼 때 카타르의 알사니 가문은 사우디의 알사우드 왕실과 관련이 깊다. 19세기 사우디 왕가가 오스만 튀르크의 탄압을 받아 근거지 리야드에서 쫓겨났을 때 바레인·쿠웨이트·카타르의 아미르에게 잠시 몸을 의탁했던 관계이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그런 관계임에도 자국을 추종하는 대신 숙적 이란과 자국의 중간에 서서 세력 균형자 역할을 하겠다는 카타르를 용납할 수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중요한 것은 이번 사태로 친미국가라도 지역정치에 휩쓸리면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 점이다. 카타르는 중동의 대표적인 친미국가로 중동 최대의 미군기지를 유치하고 있다. 92년 이후 미군 중부군사령부의 전진기지와 공군작전센터가 들어섰다. 미 해군 함대는 카타르 항구에 기항한다. 페르시아만 건너 이란을 견제하기 위한 이들 미군 기지는 군사적·전략적으로 카타르의 가치를 높인다. 하마드는 걸프전에 연합군 측으로 참전한 드문 중동·아랍 지도자다. 2011년 카다피를 무너뜨린 리비아 폭격에도 동참했다. 그럼에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100억 달러 무기 수출에 취해 일방적으로 사우디 편만 들고 있다. 트럼프의 언행은 미 국무부의 입장과도 다르다. 카타르의 친미정책은 국가적 위기 앞에서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중동국가들이 이를 바라보고 있다. 앞으로 중동에서 미군기지를 내주고 미군 주도의 전쟁이나 공습에 동참하면서 친미정책을 펼치겠다는 나라가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가능성도 작지 않다. 그럴 경우 미국은 중동에서 근거지를 잃고 무기나 파는 나라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카타르는 야망에 비해 인구가 적어 고민이 많다. 올해 1월 기준 인구가 240만 명도 안 된다. 이 가운데 카타르인은 12.1%인 33만 명에 불과하다. 카타르 사태는 이러한 국력의 실상을 제대로 헤아리지 않고 경제력과 군사력, 동맹의 힘에 의존한 세력 균형자론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잘 보여 준다.
사우디-이란 패권 경쟁 불똥이 카타르로
실제 양국은 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 이후 갈등과 충돌을 거듭해 왔다. 2016년에는 사우디가 자국의 시아파 지도자인 님르 바크르 알님르를 전격 처형하자 이란인들이 테헤란의 사우디 공관을 공격하면서 사우디는 이란과의 국교를 일시 단절했다. 알님르는 사우디의 시아파 인구가 가장 많은 페르시아만 연안 지역에서 활동해 왔다. 카타르와도 가까운 곳인데 사우디의 유전지대이기도 하다. 사우디가 이러한 지역 보안 문제로 인근의 카타르를 누르려고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문제는 사우디와 이란의 갈등이 중동평화를 본격적으로 위협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7일 중동 테러의 무풍지대였던 이란에서 발생한 테러가 그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 이날 중동 극단주의 단체 이슬람국가(IS)의 대원 6명이 총기를 난사하고 자살폭탄 조끼를 터뜨려 13명이 목숨을 잃었다. 공격 대상은 수도 테헤란의 국회의사당과 79년 이슬람혁명의 주체인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영묘였다. 이란의 민주주의와 신정체제를 각각 상징하는 곳이다. 이란의 혁명수비대는 “이번 테러는 미국 대통령이 계속 테러리즘을 지원해 온 이 지역의 반동정부(사우디를 가리킴) 지도자를 만난 지 일주일 만에 발생했다”며 테러 배후에 미국과 사우디가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사우디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란이 테러세력을 지원한다며 사우디 편을 드는 발언을 했다. 트럼프는 사우디와 이란이 중동에서 본격적인 대결을 벌이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비난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트럼프가 다녀온 중동에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일까.
채인택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