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과 FBI 국장의 악연
미국 현대사를 연구하는 더글러스 찰스 미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교수의 말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러시아 스캔들’ 수사 중단 압력 의혹을 제기한 제임스 코미 전 FBI 국장의 의회 증언이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놨다. 코미 전 국장의 발언은 국정 최고통치자인 대통령과 막강한 수사기관인 FBI와의 힘의 균형과 독립성 논란을 낳고 있다.
백악관과 법무부의 수사 사건 논의
법무장관 통해서만 하도록 명문화
트럼프 수사 외압, 원칙 저버린 것
FBI의 정점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던 후버가 사망한 72년 미국 사회에는 FBI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후 대대적인 개혁작업이 이어졌고 76년 국장의 ‘10년 임기제’가 도입됐다. 법무부는 FBI 국장과 백악관의 관계, 수사방법 등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최근 개정된 가이드라인(2009년)에 따르면 사건의 수사 등에 관한 백악관과 법무부의 최초 논의는 오직 법무장관이나 법무부(副)장관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코미가 트럼프와의 독대나 전화 통화를 부담스러워하며 별도의 기록을 남긴 것도 이런 역사적 맥락과 닿아 있다. 후버 시대 이후 FBI 개혁작업은 수사의 진정성을 확보하고 FBI가 정치적 영향에서 자유롭도록 하기 위해 이뤄졌다. 코미가 주장하는 트럼프의 수사 외압은 이러한 원칙을 무너뜨리는 행위인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러시아 스캔들’ 의혹을 수사할 특검으로 지명된 로버트 뮬러 역시 FBI 국장 출신이다. 그는 재임 시절 두 차례나 사표 카드를 꺼내면서 권력과의 타협을 거부했다. 2004년 부시는 국가안보국(NSA)이 영장 없이 도청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기한을 연장하려 했다. 뮬러는 이 같은 조치가 헌법에 위배된다며 “대통령이 계속 밀어붙이면 국장에서 물러나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뮬러의 강경한 태도에 부시는 결국 꼬리를 내렸다. 뮬러는 2011년 후버 이후 역대 국장 중 처음으로 10년 임기를 마쳤지만 버락 오바마는 2년 더 일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의 임기 연장안은 공화·민주 양당의 초당적인 지지를 받으며 의회를 통과했다.
코미는 재임 시절 대통령과 크게 부딪힌 적은 없다. 그러나 오바마 임기 말 대선을 불과 11일 앞두고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e메일 스캔들’ 재수사를 발표하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 민주당 인사들은 “특정 정당의 후보를 도우려는 의도”라며 코미를 맹비난했다. 오바마도 “수사는 암시나 불충분한 정보, 누설 등으로 하는 게 아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지만 FBI의 수사에 개입하지 않았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