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유보금에 대한 오해와 진실
“기업들이 투자를 하지 않고 임금을 올리지도 않는다. 이런 기업들이 보유한 유보금을 사회로 환수해 노동자·서민 생존에 사용하는 것이 마땅하다.”
주식발행 차액, 이익잉여금 합한 것
회계기준·상법에 없는 모호한 용어
쌓아놓은 돈이라는 오해 바꾸려고
‘세후재투자자본’ 신조어 만들기도
사내유보금이란 말은 사실 회계기준에도 없고 상법에도 나오지 않는 모호한 용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회계상 자본잉여금과 이익잉여금의 합을 의미한다. 자본잉여금은 주식의 액면가액 이상으로 투입된 자본을 말한다. 회사가 신주 1주를 발행하는 유상증자를 실시하는데, 발행가액이 1만5000원(액면가액은 5000원)이라고 해 보자. 재무상태표에서 증가하는 자본은 1만5000원이다. 발행가액인 1만5000원을 주주가 회사에 불입하고 주식 1주를 취득하기 때문이다.
이때 증가하는 자본 1만5000원을 세부적으로 더 나눠 보면 액면가액 5000원은 자본금 계정 증가액, 액면가액을 초과하는 금액 1만원은 자본잉여금 계정 증가액이 된다. 신주를 10주 발행하는 유상증자를 한다면 자본은 15만원(1만5000원*10주)이 증가한다. 그리고 자본 계정 내에서 자본금이 5만원(5000원*10주), 자본잉여금이 10만원(1만원*10주) 증가하는 것으로 기록하면 된다는 이야기다. 액면가를 초과한 발행가로 증자를 한다면 이처럼 자본잉여금은 증가한다.
한편, 회사는 해마다 연말에 손익 결산을 하면서 손익계산서에 당기순이익을 산출해 낸다. 그리고 이 당기순이익은 자본 내 이익잉여금이라는 계정으로 이동해 누적된다. 만약 결산 결과 당기순손실이 발생했다면, 자본 내 이익잉여금 누적치는 당기순손실 금액만큼 줄어든다. 따라서 회사의 재무상태표 내 자본항목에 나타난 이익잉여금은 회사가 설립 이래 지금까지 얼마만큼의 당기순이익을 창출했는지 그 누적수치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생각하면 된다. 참고로, 이익잉여금은 배당을 하면 그만큼 감소한다. 즉 배당은 이익잉여금의 처분으로 회계처리된다. A사가 2011년 초부터 사업을 시작, 매년 10억씩 6년간 당기순이익을 꾸준히 냈다면 2016년 말 이 회사의 재무상태표에 기록된 이익잉여금 금액은 배당이 없었다고 가정하면 60억원이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자본 내의 두 가지 계정, 즉 이익잉여금과 자본잉여금의 합인 사내유보금에 대해 왜 시민단체와 정치권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사내유보금을 기업이 쌓아 둔 현금(또는 현금성 자산)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내유보금이 증가하면 기업이 투자를 감소시켰거나 회피해 온 것으로 해석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런 판단은 오류이자 오해일 가능성이 크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번 돈을 모두 투자하거나 임금 인상에 사용해도 사내유보금은 계속 증가할 수 있다.
유보금 142조 삼성전자, 보유현금은 5조
회사는 외상 없이 현금으로만 거래해 이익잉여금을 모두 현금자산으로 보유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표 1의 왼쪽> 2014년 중에 B사는 늘어나는 주문에 대응하기 위해 50억원을 들여 신규설비투자를 단행했다.
그렇다면 이 회사의 재무제표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 현금을 지급하고 신규설비를 매입하였으므로 자산 항목 내에서 현금자산이 감소하고 대신 유형자산(건물)이 생겼다. 회계처리는 이것으로 끝이다. 즉 현금을 사용해 실물에 투자했지만 자본 내 이익잉여금에는 아무런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 <표 1의 오른쪽>
이처럼 재무상태표 자본 내에 기재되어 있는 이익잉여금을 기업 내부에 쌓아둔 현금으로만 단정해서는 안된다. <표 1>의 왼쪽에서는 현금자산의 형태로 존재했다. 하지만 오른쪽에서 보면 50억원은 설비자산으로 바뀌었고 10억원만 현금자산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이익잉여금, 즉 사내유보금 수치는 60억원 그대로다.
삼성전자의 올 1분기 재무상태표(별도기준)를 보면 이익잉여금의 합계액은 약 142조원이다. 그런데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의 규모는 약 4조8000억원뿐이다. 차액인 약 137조원은 설비(기계장치)나 건물 등의 유형자산에 50조원, 사업목적 등으로 다른 회사 지분에 투자한 금액 55조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사내유보금은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의 형태뿐 아니라 각종 투자자산·유형자산·무형자산·재고자산·당좌자산 등의 형태로도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남양유업의 2016년 말 재무상태표(별도기준) 자본항목의 구성내역을 살펴보면 이익잉여금은 8982억원이지만, 현금 및 현금성자산 보유액은 771억원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회사가 지금까지 투자를 게을리 해 왔다고 말할 수는 없다.
배당에 인색하면 유보율 높아질 가능성
벌기만 하고 배당에 인색하다면 사내유보금 수치가 올라가는 것은 사실이다. 과도한 사내보유율 속에는 인색한 배당정책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창출한 이익 이상으로 배당을 지속하는 경우는 없으므로 회사가 건실하게 이익을 내고 적절한 배당을 해도 유보금은 충분히 증가한다는 점도 감안할 필요는 있다. 위에서 언급한 삼성전자나 남양유업이라는 회사가 얼마나 배당에 적극적인지는 자본변동 내용이나 이익잉여금처분표 등을 통해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내유보금에 대한 오해가 빈발하자 한국회계기준원에서는 지난해 6월부터 한국회계학회 소속 교수 등 관련 전문가들과 대체용어 개발을 논의했다. 이를 통해 기준원에서는 최종적으로 ‘세후재투자자본’이라는 용어를 제안했다. 세후재투자자본은 세금을 이미 납부한 금액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영업활동을 통해 조달된 자본이 다시 여러 형태로 재투자되었음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이에 대한 권리는 주주의 몫(자본)임을 나타내는 것으로, 사내유보금의 의미를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바뀐 용어가 사내유보금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를 얼마나 해소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사내유보금이 됐건, 세후재투자자본이 됐건, 중요한 것은 손익계산서와 재무상태표 계정에 대한 이해다. 용어의 변경만으로 의미를 전달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재홍 공인회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