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그렇다고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일 경우 정국 냉각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파행으로 얼룩진 총리 인준 절차야말로 날아가버린 협치 허니문 정국을 상징한다. 야당은 ‘우리가 당한 만큼 갚아주겠다’며 국회선진화법을 들먹이고 있다. 어차피 여소야대 국회다. 120석의 여당만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구조다. 입법부와 행정부가 대화하고 협력하지 않으면 원활한 국정운영을 기대하긴 어렵다. 무거운 짐이 이 총리의 어깨 위에 걸렸다.
협치와 통합 외엔 길이 없다. 매개는 다름 아닌 인사다. 문재인 정부 첫 총리에 오른 이 총리는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화합과 통합을 강조했지만 코드 인사와 편 가르기로 자신이 내세운 가치를 스스로 훼손했다.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탕평 인사와 함께 친문 패권세력이란 인의 장막을 과감하게 걷어내야 한다. 그래야 문재인 정부의 통합이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사실 인사를 통한 권력 분점은 새 대통령이 선거운동 기간 중 약속한 정책 과제를 실현하는 발판이기도 하다. 사상 최초의 통합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한 문재인 대통령은 이 총리를 발탁하며 “새 정부 통합과 화합을 이끌 적임자”라고 소개했다. 이 총리는 이런 기대에 부응해 호남 총리를 넘어 국민통합 총리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야당과 협치를 실현할 대범한 통합정부를 꿈꾸지 못할 이유가 없다. 진정한 국민통합과 새로운 세상을 엿볼 수 있는 지점이다.
총리 인준안 통과로 내각 구성의 첫 단추는 꿰어졌다. 이 총리는 앞으로 지명될 국무위원 등 주요 인사에 대한 인사 제청권을 곧 행사해야 한다. 과거와 같은 의전 총리를 뛰어넘어 실질적 권한 행사에 나서는 게 마땅하다. 장차관 추천과 거부권은 물론 새로운 인선 기준도 청와대와 적극 협의하는 게 필요하다. 그래야 내각을 효율적으로 통할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국정의 균형추 역할에 나서는 게 가능하다.
그러자면 이 총리의 역할은 과거 총리와 완전히 달라야 한다. 명실상부한 국정의 2인자로서 권한과 책임을 다하는 책임총리가 돼야 한다. 그러려면 그런 역할을 보장해 주는 대통령의 의지가 확고해야 하지만 총리 스스로의 의지와 책임감도 중요하다. 문 대통령이 “일상적인 국정운영은 책임총리를 비롯한 내각이 담당하도록 하겠다”고 여러 차례 약속한 만큼 각 부처의 정책 결정과 집행도 총리와 장관이 주도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새 정부가 맞은 현실은 어느 때보다 엄혹하다. 대통령 탄핵 과정을 거치며 나라는 촛불과 태극기, 이념과 세대로 갈기갈기 찢겨 있다. 서로 삿대질하는 나라에 미래가 밝을 리 없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이 지난주 발표한 한국의 국가 경쟁력은 63개국 중 29위였다. 특히 사회통합 정도는 43위에서 55위로 추락했다. 최순실 사태 등 국정 혼란의 여파다.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방법은 간단하다. 잘되는 부분은 유지하고 모자라는 부분은 개선하면 된다. 분열과 대립을 끊어내고 대통합의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이 총리는 제1야당의 피켓 시위 속에 취임했다는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정부와 국회, 여야 간 협치에 매진해야 한다. 야당 주장과 요구를 경청하고 국정에 반영해야 한다. 그래야 말로만 ‘100% 대한민국’을 외치면서 독선과 불통으로 일관한 배제의 정치를 끝낼 수 있다. 그게 새 정부가 말하는 새 정치고 시대정신에 맞는 정치개혁이다. 때론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해야 하는 어려운 길이다. 하지만 가야만 하는 길이다. 시대가 바뀌면 총리의 역할도 바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