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장 실장은 1996년 참여연대에서 소액주주 운동을 시작했다. 대기업의 차입을 통한 몸집 불리기 경쟁으로 외환보유액이 바닥나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기 이전이다. 20년 전 신진 학자였던 시절부터 그는 “총수가 1%도 안 되는 지분으로 자산 규모가 수십조원씩 되는 재벌을 경영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98년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는 계열사 간 부당거래 문제를 집중적으로 공격하며 13시간30분간 쉬지 않고 의사진행 발언을 이어갔다. 20년 넘게 삼성그룹의 경영 승계를 신랄하게 비판해 ‘삼성 저격수’란 별명도 얻었다. 2003년 장 실장은 SK를 상대로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나선 미국계 헤지펀드 소버린과 교섭을 벌이기도 했다.
한국식 주주자본주의 선구자 평가
98년 삼성전자 주총서 13시간 발언
고려대 경영대학장 맡으면서 변화
‘삼성전자·현대차 배워라’ 광고도
장하성 펀드로 지배구조 개선 작업
대기업에 목소리를 내는 방식도 변화했다. 몇 시간씩 주총에서 소액주주 발언을 이어갔던 방식에서 탈피해 2006년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KCGF)를 만들어 주요 주주로서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요청했다. ‘장하성 펀드’로도 불린 KCGF는 태광그룹 계열사인 대한화섬에 투자한 뒤 지배구조 개선 합의를 이끌어내면서 기업가치를 높이는 데 성공했다. 소액주주운동의 또 다른 형식이었다.
재계에선 장 실장과 인간적인 유대 관계가 깊은 인사로 정의선(47) 현대차 부회장을 꼽는다. 고려대 경영학과에 89년 입학한 정 부회장은 90년 고려대 조교수에 임용된 장 실장과 20년 넘게 인연을 쌓았다. 2002년 6월 정 부회장(당시 현대차 전무)이 대주주인 전장업체 본텍을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최상단에 있는 모비스와 합병하려다 포기한 것도 당시 교수였던 장 실장의 충고 덕이다. 장 실장은 제자인 정 부회장에게 “편법으로 경영권을 승계받기보다는 정정당당하게 시장에서 경영 능력을 입증하라”며 “인생은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니 아버지에게 당당히 말하라”고 설득했다. 2006년 정몽구 회장이 구속기소되는 등 현대차그룹 최대 위기였던 글로비스 비자금 사건 때도 정 부회장은 은사인 장 실장을 찾아 조언을 구했다.
일감 몰아주기 막아 일자리 창출 의도
장 실장은 노무현 정부 시기 경제 운용에 비판적 시선을 가지고 있다. 지난해 펴낸 저서 『왜 분노해야 하는가』 333쪽에서 그는 “진보적인 정부였다고 평가받는 노무현 대통령도 당선인 시절에 집권 초기 경제정책의 구상을 삼성경제연구소에 의뢰할 정도로 재벌에 의존적이었다”고 썼다. 이 때문에 그가 문재인 대통령의 청와대 합류 요청을 선뜻 수락한 것이 의외라는 반응도 나온다. 실제로 그는 2012년 대선에선 안철수 당시 무소속 대선후보의 경제교사 역할을 했다. 임명 직후 청와대 기자회견 자리에서 장 실장은 “지명 사흘 전 대통령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얼떨결에 이자리에 섰다”며 “문재인 정부의 파격적 인사에 감동받은 덕분”이라고 말했다.
정책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게 된 장 실장은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뿐만 아니라 일자리 창출에도 우선순위를 두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그는 “재벌의 문제는 호텔부터 꽃배달 서비스까지 직접 다 하려는 것”이라며 “고용 창출 효과는 제조업보다는 서비스업에서 나오기 때문에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김영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