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ISM] 만화책이 잘 팔린다, 그 이유는
일본출판과학연구소가 지난 2월 발표한 2016년 만화시장 통계에 의하면, 일본의 경우 2015년 대비 0.4% 증가한 4454억엔으로 나타났다. 2014년 4456억엔에서 2015년 4437억엔으로 하락했다가 2016년 반등에 성공한 것이다.
작년 교보문고 130만권 역대 최고
10년 전보다 10~20대 비중 줄고
30~50대 비중은 늘어 세대 이동
웹툰 독자의 확대가 변화 이끌어
만화책 판매 모든 장르에서 고루 증가
하지만 동물과 수퍼히어로의 인기만으로는 설명이 다소 부족하다.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순위를 보면, 2016년 만화부문에 네코마키의 『고양이와 할아버지』『시바 아저씨』가 각각 6위와 23위에 올라 있다. 하지만 2015년에는 엘렌 심의 『고양이 낸시』가 2위였다. 2015년에도 동물만화는 인기있었다는 걸 보여준다. 수퍼히어로물 역시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지, 2016년에 유독 인기가 올라간 건 아니다. 2016년 만화분야 베스트30 목록을 분석해 봐도 특별히 차트를 지배하는 대형작품이 보이지 않는다. 이 말은 베스트셀러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만화책 판매가 늘어났다는 걸 의미한다. 2016년 만화책을 소비한 독자층은 30대가 31.44%, 20대가 29.98%, 40대가 25.07% 순이다. 2007년과 비교하면, 10대가 16.76%에서 6.45%로 하락, 20대도 37.97%에서 29.98%로 하락했다. 반면 30대는 24.66%에서 31.44%로, 40대는 17.15%에서 25.07%로 상승했다. 50대도 3.00%에서 6.06%로 성장했다. 전통적으로 청소년이나 청년층의 문화였던 만화가 지난 10년간 교보문고에서는 30~40대 청장년층으로 이동한 것이다.
‘잡지-단행본’ 시스템 부상과 몰락
이 같은 인기에 힘입어 만화 잡지의 판매가 올라가면서, 양사가 모형으로 삼은 일본의 ‘잡지-단행본’ 시스템이 90년대 초중반 한국에도 정착했다. 일본의 잡지-단행본 시스템은 잡지를 팔아 수익을 올리는 형태가 아니라 잡지를 폭넓게 보급하고 연재된 만화를 단행본으로 묶어 판매해 수익을 올리는 시스템이다. 잡지-단행본 시스템의 필수조건은 ① 잡지를 빠르고 다양하게 만들어서 ② 독자를 확대해야 된다.
일본은 59년 창간한 주간만화잡지 『주간소년선데이』와 『주간소년매거진』의 인기가 60년대 들어 높아지고, 68년 청년만화잡지 『빅코믹』, 주간만화잡지 『주간소년점프』가 창간되면서 다양한 연령대로 독자층이 확대됐다. 70~80년대 들어서는 싼 가격에 만화 잡지를 폭넓게 보급하고, 연재된 만화의 단행본을 팔아 수익을 크게 올리는 잡지-단행본 시스템이 완전히 정착된다.
잡지-단행본 시스템은 한정된 시장에 만화책을 임대하는 만화방 시장이나 만화잡지에서 수익을 올리는 기존 만화잡지와는 완전히 다른 생태계 모델이었다. 하지만 한국만화 주류 시장의 시스템은 변화했지만 근본적인 체질이 바뀌지는 않았다.
일본 만화산업은 주류와 비주류 시장이 교차하며 치열하게 잡지-단행본 시스템을 완성했다. 일본이라고 처음부터 수백만 부를 판매하는 대형 출판사의 만화잡지가 있었던 건 아니다. 계보는 이렇다. 도쿄에서 펴낸 신문·잡지 중심의 전전(戰前)만화→패전 후 오사카 중심의 간사이 지역에 등장한 싸구려 만화인 아카홍(赤本)→테즈카 오사무의 스토리 만화 등장과 잡지 진출→테즈카 오사무의 만화를 지향하는 젊은 작가들→테즈카 오사무 스타일의 만화에 반대하는 간사이 지역 젊은 작가들의 극화→시라토 산페이 작품을 중심으로 극화의 폭발적 인기→극화의 영향을 받은 주간만화잡지의 만화→ 『COM』을 통한 테즈카 오사무와 스토리 만화 작가들의 새로운 만화 실험→청년 만화의 대두→대규모 물량이 투여되는 점프 시스템→카도카와의 오타쿠 타깃 전략 등으로 치열하게 발전했다. 그 과정에서 주류에 반대하는 비주류의 새로운 시도가 있었고, 비주류가 주류가 되기도 하고, 주류가 비주류의 장점을 받아들여 다시 주류가 되기도 했다.
일본선 전자책이 종이책 축소 커버
그러다 2013년 이후 한국 만화는 웹툰을 중심으로 새로운 만화 생태계를 구성했다. 웹툰은 보다 간편하고, 일상적으로 만화를 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10대~50대까지 스마트폰을 들고 웹툰을 보게 된 한국의 만화생태계 환경이 30~40대의 새로운 독자들을 서점으로 인도하게 된 것이다.
공교롭게 일본도 ‘드래곤볼’ ‘슬램덩크’ ‘유유백서’까지 3대 인기 연재작이 종료된 95년 이후 만화잡지 판매량은 급격히 하락했다. 다만, 전체 만화출판시장은 장기 연재되는 인기작과 새로운 인기작의 등장으로 서서히 하락했다. 만화잡지의 급격한 하락은 신작 발굴이나 독자 확대에서 빨간불이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2016년 전체 만화 시장이 반등했다. 이유는 전자책 시장의 성장이다. 2014년 887억엔, 2015년 1169억엔, 2016년에는 1491억엔으로 늘어나면서 종이책 시장의 축소를 커버했다. 따라서 2016년 일본만화시장은 0.4% 성장한 것이 아니라, 구성이 변화한 것이고, 정확히 디지털 만화 시장이 성장한 것이다. 전자책 시장이 종이책 시장의 축소를 커버한 것이다.
전자책은 잡지보다 단행본 비중이 훨씬 높다. 일본은 새로운 독자들이 읽지 않은 기존 만화를 전자책을 통해 소비하고 있다. 일본의 전문가들은 2017~2018년에는 종이책보다 디지털이 더 많이 팔릴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일본만화의 ‘잡지-단행본’ 시스템이 한계에 도달하고 근본적인 변화를 시작했다는 의미다.
한국 만화의 경우 일상화된 웹툰이 새로운 독자를 만화에 끌어들였다. 일본 만화는 전자책을 통한 간편한 만화독서가 새로운 독자를 만화로 끌어들였다. 한국과 일본 모두 기존 잡지-단행본 시스템을 대신할 대안을 찾을 때가 됐다. 교보문고의 판매 데이터에서는 기존 출판사의 웹툰 단행본, 그래픽노블의 판매가 돋보였지만, 이 데이터에는 없는 새로운 만화들이 소셜 펀딩과 독립출판의 네트워크를 통해 한국만화의 폭을 넓혀나갔다. 앞으로 웹툰 플랫폼의 차별화된 비즈니스 모델이 필요할 때, 기존 웹툰과 다른 새로운 만화들이 변화를 이끌어 갈 수도 있다.
미국이나 일본, 한국 등 세계 어느 나라의 만화역사를 보더라도, ‘독자의 확대’가 시스템과 생태계의 변화를 끌어냈다. 만화 생태계의 중심은 웹툰이라는 걸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웹툰을 통해 확대된 독자들이 출판만화의 어떤 변화를 끌어낼 것이다. 한국은 2017년 드디어 그 시점과 마주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