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개혁 칼 빼든 청와대의 속내
한 검찰 간부는 20일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 내부 분위기를 이렇게 한마디로 설명했다. 실제로 최근 며칠 새 숨 돌릴 틈 없이 몰아친 ‘청와대발 태풍’에 일선 검사들도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도화선은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이 당사자로 지목된 ‘돈봉투 만찬’ 파문이었다. 청와대는 이들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는 대신 곧장 좌천성 인사를 냈고 최순실 게이트 특검 수사팀장을 맡았던 윤석열 대전고검 검사를 서울중앙지검장에 전격 임명했다. 그런 가운데 검찰총장 등 수뇌부가 잇따라 사의를 표명하면서 지도부는 공백 상태다.
돈봉투 파문 계기 전광석화 행보
예상 못했던 검찰 크게 당황
제2·3의 청산 이어지는 신호탄 격
盧 교훈 삼아 일회성 그치지 않고
인사 이어 시스템 개혁 추진할 듯
국정원·검찰 등 권력기관부터 다잡기
하지만 순서와 달리 실제 가장 큰 방점은 외교안보 분야에 찍혔다. 보수층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야당과 언론에도 비판의 빌미를 주지 않으면서 국정 추진력을 담보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당장 한·미, 한·중 관계에도 현안이 산적해 있었다. 장기로 치면 이렇게 8월 하순까지 궁단속을 마무리한 뒤 9월 정기국회부터 본격적인 행마에 들어가 각종 개혁입법을 처리할 심산이었다.
이런 기조하에서 적폐 청산도 추진은 하되 가급적 갈등을 빚지 않는 선에서, 정국의 조기 안정화에 지장을 주지 않는 한도에서, 그리고 국민적 지지가 높고 반발이 적은 분야부터 진행할 생각이었다. 국정교과서 폐지를 대통령 업무지시 2호로 내린 게 대표적이다. 그런 와중에 돈봉투 파문이 터지자 청와대가 잠시 고민에 빠졌다는 후문이다. 당초 계획대로 최소한의 수습만 하고 다음 기회를 볼 것이냐, 이만큼 확실한 계기는 다시 얻기 힘든 만큼 이참에 확실하게 정리하고 갈 것이냐를 놓고서다.
결론은 후자였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이를 “쇠뿔은 단김에 빼고 쇠도 달궈졌을 때 쳐야 하는 법”이란 말로 압축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인해 촛불민심이 들끓고 조기 대선으로 이어졌는데 마침 그 수사와 연관된 당사자들이 돈을 주고받은 것으로 드러났으니 이보다 더 명백한 개혁 명분이 또 어디 있겠느냐는 설명이다. 마침 문 대통령의 취임 후 행보에 국민적 지지와 성원이 한껏 쏠리고 있는 것도 자신감을 더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런 판단하에 지지도가 최고점을 찍고 있을 때 꺼내 쓸 카드로 검찰 개혁을 선택한 것이란 분석이다.
청와대의 향후 행보는 속전속결과 깔끔한 뒷마무리로 모아지고 있다. 검찰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일이 전개된 만큼 최대한 신속한 후속 조치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겠다는 전략이다. 투수가 중요한 순간에 타자에게 준비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해 빠른 템포로 투구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청와대가 당초 지난 18일까지만 해도 이번 주엔 추가 인사가 없을 거라고 했다가 바로 다음 날 전격 인사를 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 관계자는 “쇠뿔을 어설프게 쳐서 단번에 뽑지 못하면 거대한 몸집의 황소로부터 되치기를 당하기 마련”이라며 “그런 만큼 반격의 소지를 남기지 않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검찰 개혁이 주목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제2, 제3의 적폐 청산으로 이어지는 신호탄이란 점에서다. 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정권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서는 기득권 지키기와 조직 이기주의에 매몰된 주요 권력기관부터 개혁해야 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해 왔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으로 거론되던 서훈 전 국정원 제3차장을 지난 10일 취임식 직후 국정원장에 전격 임명한 것도 국정원 다잡기가 최우선 과제라는 판단에서였다. 이와 관련, 여권 관계자는 “국정원과 검찰 개혁이 제대로 이뤄져야 청문회 등을 통한 언론 개혁과 공정거래위원회 등을 통한 재벌 개혁도 무리 없이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6년 전부터 “지속적인 검찰 개혁” 강조
실제로 검사와의 대화에 나섰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달리 문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시스템 개혁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2011년 펴낸 『검찰을 생각한다』에서도 “검찰의 민주적 통제, 즉 견제와 분산 시스템을 만들지 않으면 검찰 개혁은 이뤄질 수 없다는 게 참여정부의 교훈”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다음에 들어설 민주정권은 첫 번째 개혁 작업으로 검찰 개혁에 착수해야 하고, 그 개혁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검찰에 필요한 건 정치적 독립이 아니라 정치적 중립이고 국민과 법원에 의한 견제와 감시”라고 적었다.
문 대통령은 이번 대선 때도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도 같은 입장이다. 지난 11일 임명된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공수처 설치는) 검찰을 죽이는 게 아니라 진정으로 검찰을 살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20일 취임 후 처음으로 아무런 일정도 잡지 않고 휴식을 취했다. 하지만 물밑에선 치열한 수싸움과 신경전이 이어졌다. 청와대가 추가 인사 카드를 손에 쥐고 검찰을 지속적으로 압박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대선 공약 마련에 관여했던 더불어민주당 중진 의원은 “검찰 내부의 자기 정화 노력이 어느 정도 가시화되느냐도 변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신홍·강기헌 기자 jbje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