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뉴스토리아] 5월 7일 결선 앞둔 프랑스 대선
정치를 기득권자들에게 맡겨 놓을 수 없다
극우 집권 막기 위해 좌우 뭉친
시라크 대통령 결선투표와 달리
‘인간의 얼굴을 한 극우’ 내건 르펜
승패와 관계없이 최대 승자 될 듯
대통령 소속 여당 의원 없거나 2명
누가 돼도 기묘한 연립정부 예고
이번 선거의 특징은 분노한 유권자들이 생각보다 현명하게 투표했다는 점이다. 인물이 잘나도, 경력이 화려해도, 정책이 마음에 들어도 유권자들은 쉽게 마음을 주지 않았다. 아무리 잘난 인물이라도 나를 위해 정치를 할 것 같다는 확신이 서지 않으면 고개를 돌렸다. 학력이나 경력이 화려할수록 높은 자리에서 어떤 부패에 연루됐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의심이 간다. 정책이 그럴싸해도 알고 보면 그게 다 내 세금을 거둬서 선심 쓰는 것이라는 생각에 혹하는 유권자가 별로 없다. 인물·경력·이념·정책이 다 그럴싸한 피용·멜랑숑·아몽이 모두 탈락한 이유다.
유권자들은 기성 정치인이 아닌 사람, 그들과 말과 생각이 달라 앞으로 행동도 다르게 할 것 같아 보이는 후보를 더 선호했다. 지금의 이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권을 쟁기로 밭을 갈아엎듯이 확 뒤집고 싶어하는 유권자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한 선거였다. 국민은 신뢰와 변화를 동시에 요구하고 있었다. 방법은 개의치 않았다. 프랑스 유권자들은 ‘정치는 너무도 중요한 일이라서 정치인에게만 맡겨놓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이는 ‘전쟁은 너무도 중요한 일이어서 군인에게만 맡겨놓을 수 없다(La guerre! C’est une chose trop grave pour la confier a des militaires)’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총리 조르주 클레망소의 말을 살짝 비튼 것이다.)
극좌 지지자 23%가 결선에선 극우 지지로
이를 잘 드러내는 것이 1차 투표 탈락자 지지표의 향배다. 프랑스 여론조사기관 엘라베는 좌파 아몽 지지자의 93%, 극좌 멜랑숑 지지자의 77%, 우파 피용 지지자의 63%가 마크롱을 지지하겠다고 했다. 독특한 것은 좌우를 넘나드는 극단주의 지지파다. 우파 피용 지지자의 37%가 결선투표에서 르펜으로 돌아서겠다고 한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극좌 멜랑숑 지지자의 23%가 르펜을 찍겠다고 했다는 사실은 이번 대선이 얼마나 복잡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심지어 좌파 아몽 지지자의 7%도 결선에선 극좌 르펜을 지지할 뜻을 밝혔다. 극좌와 극우를 마구 오가는 유권자의 심리는 기존의 정치분석으로는 가늠조차 하기 힘들다. 유권자가 좌파와 우파로 나뉘고 이들이 충실하게 자파 후보를 지지하다 극단주의가 나타나면 힘을 합쳐 이를 막으려고 시도하던 좌우 정치의 시대가 저물고 있는 풍경이다.
그런 점에서 기존 좌우파 정치인들의 마크롱 지지 선언은 자칫 프랑스 기득권 정치인들의 지지를 받는다는 인상을 줄 우려가 크다. 르펜도 이를 놓칠세라 결선투표를 앞두고 연일 “부패한 기득권 정치인의 지지를 받는다” “프랑스에 대한 애국심이 없다”는 말로 그를 공격하고 있다. 물론 1차 투표 직후 실시된 결선투표 여론조사에서 마크롱과 르펜은 각각 64% 대 36%, 60% 대 40%, 61% 대 31%의 결과를 보였다. 20%포인트 이상의 격차로 마크롱이 앞선다는 전망이다. 이변이 없는 한 결선투표에서 마크롱이 집권하는 것은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르펜, 아버지 포함 극단주의자 출당
하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1차 투표에서 1위인 마크롱에 불과 2.71%포인트 뒤져 2위를 차지한 것은 물론 결선투표에서 31~40%를 득표할 것으로 전망된다. 2002년에 비해 1차 투표 지지율이 4.4%포인트 높아진 데다 2차 투표 예상 득표율은 22.21%포인트나 높아졌다.
2차 투표에서의 득표 확장성은 18.70%포인트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르펜이 아버지를 비롯한 극단주의자들을 출당시키는 이른바 ‘탈악마화’ 정책으로 국민전선을 ‘인간의 얼굴을 한 극우정당’으로 탈바꿈한 것이 상당히 먹히고 있는 셈이다. 르펜의 약진은 ‘톨레랑스의 나라’의 프랑스가 ‘자국 우선주의’로 가는 시금석으로 평가된다.
문제는 이번 대선 결선주자들의 현실적인 수권 능력이다. 특히 유력 주자인 마크롱이 대통령이 되면 국정을 어떻게 수행할 것이냐에 관심이 쏠린다. 마크롱은 ‘단기필마’ 상태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기반이 국민밖에 없는 ‘신선란’ 정치인이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냉혹한 현실이다. 그가 지난해 4월 6일 조직한 앙마르슈(En Marche! 전진)라는 정치조직은 정당이라고 부르기에 민망한 수준이다. 선거를 치르기 위한 개인 네트워크 조직 수준이다. 이름도 자기 이름 이니셜인 E와 M을 바탕으로 멋진 말을 만들어 붙인 것이다. 마크롱과 앙마르슈는 대선전에선 위력을 발휘했다. 유럽연합(EU)을 주도하고 친시장 정책으로 경젱력을 추구하면서 좌파 정부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 기본적으로는 따뜻한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하는 정치인이란 점이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8월 총선서 앙마르슈 약진할지 관심
이러다 보니 ‘포스트 대선’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1959년부터 적용 중인 5공화국 헌법에 따라 프랑스 대통령은 총리를 임명하고 총리는 행정을 총괄하게 된다. 책임총리인 셈인데, 여소야대일 경우 야당 대표가 총리를 맡아 동거정부가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대통령이 소속한 여당에 의원이 한 명도 없거나 2명뿐인 기막힌 상황이 곧 발생하게 된다. 이에 따라 기묘한 형태의 좌우 연립정부가 탄생할 가능성이 크다. 기존 정치세력의 도움 없이는 도저히 국정을 꾸려나갈 수 없는 묘한 상황이 연출될 수밖에 없다.
마크롱의 정치적 뿌리는 좌파인 사회당이다. 올랑드 대통령 정권에서 보좌관과 경제장관을 지냈다. 올랑드 정권에서 그가 한 일은 올랑드의 좌편향 정책을 말린 일이다. 이에 따라 좌우 균형감각이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좌우 누구와도 일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또 하나 눈여겨볼 점은 오는 8월로 예정된 의회 선거다 이번 선거에서 앙마르슈가 어떤 결과를 얻을지 관심이 모인다. 대통령만 바꾸고 기존 좌우 구도는 그대로 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선거에서 하원 다수당을 차지하는 정당의 대표가 총리를 맡아 앞으로 마크롱과 동거정부를 꾸리는 것이 지금으로선 가장 현실적인 전망이다. 좌우 대연정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대통령이 아닌 의회권력까지 성난 국민이 갈아치울 경우 ‘21세기판 프랑스혁명’의 도도한 흐름을 막을 길은 없어 보인다. 프랑스를 지켜보는 이유다.
채인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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