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 광고가 떴다. 지구 위 생명체 수를 센다던 그 회사였다. 채용된 인원은 알 수 없다. 나는 사람, 호모사피엔스 세는 곳에 배정됐다. 뭔가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말했잖아, 시급이 중요하다고.
서현의 상상력 사전 : 오토바이
점장은 이런 기초조사의 중요성과 빅보스의 선견지명을, 그런데 자기가 젊었을 때 겪은 세상살이의 고난을, 그래서 이룩된 요즘 시대의 물질적 풍요를, 따라서 만연하고 해이한 요즘 애들의 정신력 상태를 얼굴 마주칠 때마다 늘어놨다. 서론은 달라도 이르는 결론은 항상 같았다. 기어이 이룩한 강 보이는 아파트 입성기.
점장의 이야기는 하나도 내 귀에 걸려들지 않았다. 그 입가의 허연 게거품만 눈에 거슬렸다. 내가 사는 창 없는 고시원이 왜 강 보이는 강남 아파트보다 평당 월세가 높아야 하는지 굳이 묻지 않았다. 점장 같은 세대들이 우리들 옆구리에 빨대를 꼽고 있는 거 아니냐고 따지지도 않았다. 최저 시급이라고 알려주면 최적 시급이라고 알아듣는데 말을 섞어야 피곤할 따름이다. 이 알바에서 잘리면 나는 중국집 오토바이를 타야 한다. 최저 시급은 글자 속에나 있게 되고 나는 고시원 월세 낼 일이 막막해진다.
점장이 원하면 우리는 한다. 열정을 기대하지는 마라. 점장의 말이 끝나면 나는 오토바이 열쇠를 꽂고 내달렸다. 신호, 차선 그런 건 묻지 마라. 내 인생의 목적지가 보이지 않는데 가는 길인들 보이겠느냐. 길이 보이지 않는데 무서울 건 있겠으며 아쉬울 건 있겠느냐. 세상에 내가 남길 게 있다면 오토바이의 브레이크 자국일 것이다. 나는 달린다.
나는 개 담당과 짝꿍이 되었다. 같이 출동해야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개만도 못한” 신고가 “개 같이” 접수되면 나는 짝꿍이를 뒷자리에 태우고 빛의 속도로 출동했다. 틀림없이 다 큰 어른을 보고 개의 새끼일 거라고 단호하게 주장하는 경우에도 달려갔다. 유전자 검사, 가족관계 확인원은 필요 없었다. 개와 사람은 분명히 달랐다고 나는 점장에게 문자보고를 날렸다. 그런데 대개는 신고를 한 사람들이 개처럼 이빨을 드러내며 씩씩거렸다.
“걔는 술만 먹으면 개가 돼.” 그러면 또 우리는 즉시 출동해서 지칭된 걔가 누구인지, 걔가 술을 먹고 있는지, 그리하여 걔는 과연 개로 변하는지 확인해야 했다. 걔가 개가 되기 위해 떼내야 할 그 점 하나는 밤늦게까지 끝내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빨간 담뱃재를 허공에 날려주면서 어두운 길을 달려 돌아왔다.
봄날이었다. 점장 책상의 숫자가 갑자기 -295를 찍었다. 파도도 없었는데 배는 뒤집혔고 가라앉았다. 아이들이 많았다고 했다. 9명의 상태를 아직 알 수 없다면서 점장이 나를 바닷가로 보냈다.
나도 철이 들어서 사람 보는 눈이 생겼다. 그 눈은 또 제 각각인지라 장사치에게는 사람이 돈이고 정치인에게는 사람이 표였다. 사업가에게 배는 돈이므로 돈 때문에 뜯어고쳐졌다. 고용된 선원은 돈 때문에 고용되었고 배 안의 사람은 배 안의 짐과 다르지 않았다. 자식 잃은 어미들이 곡기를 끊고 엎드려 울고 있는데 또 이빨을 드러내고 이죽거리는 무리들을 나는 보았다. 마지못해 바닷가에 온 정치인들은 왜 이런 절규의 목소리를 듣고 있어야 하는지 어리둥절해 했다. 아마 이들은 내가 알고 있는 호모사피엔스의 종류는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점장 책상의 숫자도 잘못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일을 그만 둘 때가 되었다고 느꼈다.
오토바이 열쇠를 반납하고 나올 때 바람이 조금 불어 나뭇잎이 흔들렸다. 펴보니 내 손은 텅 비었고 그 바람 끝의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하늘도 마음도 텅 비었고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아서 너무 슬펐다. 얘들아, 잘 가. ●
서현 : 한양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본업인 건축 외에 글도 가끔 쓴다. 건축에 관한 글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뒤집는 건축적 글쓰기방식에 더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