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화동천’은 서점이자 갤러리이고, 강의실이면서 공연장, 그리고 카페이기도 하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먼저 오른편 책장을 메운 색색깔의 책들을 만난다. 자세히 보니 종이책이 아니라 흙으로, 금속으로 빛어낸 책 모양의 조각품들이다. 최은경 이화여대 조소과 교수가 책을 테마로 작업한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 ‘BOOKS’다.
한길사가 만든 복합문화공간 ‘순화동천’
주소 서울 중구 서소문로 9길 28
덕수궁 롯데캐슬 1층 컬처센터
영업시간 월~토요일 오전 10시~오후7시
문의 02-772-9001
책박물관에선 19세기 영국의 책 장인인 윌리엄 모리스와 프랑스 삽화가 귀스타브 도레의 ‘북 아트’전과 19세기 프랑스 풍자화가 4인전을 만날 수 있다. 영국의 시인이자 공예가, 책 디자이너였던 윌리엄 모리스(1834~96)가 인쇄공방 켐스콧 프레스에서 제작한 책 『지상의 낙원』등과 함께, 꽃과 식물을 소재로 한 모리스의 문양을 실로 짠 태피스트리(벽에 거는 천) 작품 등으로 화려하게 꾸몄다. 귀스타브 도레(1832~83)는 모리스와 같은 시기 프랑스 출판계를 이끌었던 삽화가였다. 세밀하면서도 장식적인 그의 그림에 빈센트 반 고흐가 “나는 도레의 그림을 모방하려 하지만 그것은 너무 어렵다”고 말했을 정도다.
박물관에 놓인 그림이나 책은 김 대표가 지난 수십년간 세계를 여행하며 발견해 구입한 것들이다. “외국 도시를 방문하면 고서점 등을 뒤지며 모리스가 직접 편집한 책, 도레가 삽화를 그린 책들을 찾았고, 이 작가들에 대해 각 언어권에서 발간한 책도 꼼꼼히 모았다”고 했다.
순화동천의 또 다른 전시공간 ‘퍼스트아트’에서는 사진전 ‘탐서여행’이 열리고 있다. 김 대표가 세계 곳곳에서 책의 풍경, 특히 2015년 중앙SUNDAY에 ‘세계 책방 기행’을 연재하며 방문했던 서점의 모습을 담았다. 네팔의 히말라야 산자락에서 책을 펼치고 있는 소년들의 표정은 해맑고, 프랑스 파리의 갈리냐니 서점,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의 도미니카너 교회 서점 등은 사진만으로도 웅장함이 전해진다. 그는 “멋진 도시에는 그 도시의 개성을 담은 책방이 있다”며 “순화동천도 서울의 개성을 보여주는 장소로 자리잡았으면 한다”고 했다.
큼직하게 마련된 3개의 강의실도 눈에 띈다. ‘한나 아렌트 방’, ‘윌리엄 모리스 방’, ‘플라톤 방’으로 이름이 붙은 이 장소는 책 관련 행사와 문화예술 강연 장소 등으로 쓰인다. 모임 장소가 필요한 독자들에게 대여도 할 예정이다. “책 관련 행사장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사회 문제와 인문·예술 담론이 논의되는 사랑방이자 아지트”로 만드는 것이 목표. 한길사에서는 개관을 맞아 총 5회로 구성된 ‘한나 아렌트의 정치사상’ 특강을 이곳에서 진행한다.
고서 전시장에 놓인 스타인웨이 그랜드 피아노는 음악회 연주용이다. 김 대표는 “여러 장르의 음악가들을 초청해 정기적으로 갤러리 콘서트를 열 계획”이라며 “책과 그림에 둘러싸여 음악을 듣는, 특별한 문화적 체험을 기대해도 좋다”고 말했다. ●
글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사진 순화동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