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경기도자박물관에서는 ‘기억: 삶을 돌아보다’라는 테마로 인간의 삶을 다룬 유물 140여 점과 유물이 내포한 이야기를 재해석한 현대 도자작품을 함께 전시한다. 이천 세계도자센터에서는 ‘기록: 삶을 말하다’를 테마로 1960~70년대 저명한 도자 작가들의 작품과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았다. 여주는 조금 색다르다. ‘기념: 삶을 기리다’라는 테마 아래 세계생활도자관에서 각국 현대 도자 작가들이 만든 골호(骨壺·유골함) 218점을 선보인다. “웰다잉(well-dying)이라는 말이 이제 낯설지 않을 정도로 죽음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는데, 삶의 마지막이자 새로운 안식처로서 도자기 골호의 개념을 창출하고 싶다”는 게 우 감독의 기획의도다.
제9회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 가보니
국내외 젊은 작가들이 만든 유골함 218점
사회적으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터부시하는 경향이 여전히 높은 가운데 이례적으로 유골함에 집중한 이유가 궁금했다. 현장에서 만난 정한주 큐레이터는 이 질문에 대해 “한 사람의 일생이 고스란히 담기는 건데 기존의 유골함이 천편일률적이라는 점에 착안했다”며 “죽음을 생각하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이 나오지 않을까, 그것이 기획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한국도자재단의 다양한 네트워크를 활용해 국내를 비롯한 각국의 젊은 작가 230여 명에게 유골함을 제작해 줄 것을 요청한 것이 지난해 12월. 최종적으로 국내 작가 120명, 해외 작가 98명 도합 218명이 작품을 보내왔다. 아무래도 화장(火葬) 문화를 먼저 이해해야하는 만큼 아시아 작가들이 많았다고. 실제 유골함 사이즈인 가로·세로·높이 각 22cm로 요청했지만, 실제로는 작가의 영감이 다양한 크기로 반영됐다는 설명이다.
중앙 계단을 이용해 2층으로 올라가니 제1전시장이 나온다. ‘또 다른 우리를 기리다’는 설명이 붙어있다. 우리 사회의 다른 누군가를 생각하며 만든 작품들을 모아놓은 곳이다.
전시장 한가운데 놓인 일본 작가 이시야마 테츠야의 ‘확산하는 용기(容器)’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미래의 누군가를 위해 만들었다는 이 작품은 사방팔방으로 튀는 듯한 물방울 형태 도자기에 금색 칠까지 해 더욱 돋보였다. 하얀 토끼 다섯 마리가 얌전하게 앉아있는 백승주 작가의 ‘한 방울의 눈물’은 인간을 위해 숨진 실험용 동물들을 위한 애도의 마음이 담겨있다.
그런가 하면 김병제 작가는 이순신 장군의 모습을 형상화한 ‘불멸’을 통해 한민족의 영웅을 그려냈다. 김혜정 작가의 ‘세월의 골호’와 김경수 작가의 ‘304 Memorial(2014.04.16)’은 세월호의 영혼들을 달래는 작품들이다.
김판기 작가의 청자 작품 ‘슬픔을 간직한 영’은 연꽃의 모습을 세련된 스타일로 표현했다. “늪에서 자라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면서 맑고 미묘한 향기를 간직하고 있음”에 대한 오마주다.
나가에 시게카즈는 맑고 푸른 하늘과 깊은 폭포를 맑은 하늘색으로 담아낸 ‘소라아이-아름다운 하늘’을 통해 부모님의 극락왕생을 기원했다. 아버지의 유품이 담겼던 상자를 상자 모양으로 재현한 양상근 작가의 ‘공간을 사유하다’, 늘 포근했던 어머니의 모습을 양(羊)으로 구현하고 유리로 만든 집 뒤에 반야심경까지 써넣은 김준휘 작가의 ‘아! 엄마’, 분홍 치마폭 한가득 홍시를 따서 모았다는 어머니의 태몽을 작품으로 만든 이지혜 작가의 ‘어느 가을날’에서는 부모님에 대한 애정이 절절이 묻어났다.
김승욱 작가의 ‘삶의 기억’은 10각형의 단정한 형태의 작품으로 표면이 반짝이는 무쇠와 같은 느낌을 주었는데, 정 큐레이터는 “가마에서 유약이 녹았을 때 기물을 꺼내 지푸라기, 톱밥, 왕겨 등에 넣어 급속도로 식히면서 연기와 그을음이 표면에 입혀지며 독특한 효과를 내는 락쿠(Raku)라는 기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제3전시장으로 가기 전에는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있었다. 관객 참여공간 ‘죽기 전에 나는…’ 코너는 검정 바람벽에 ‘비포 아이 다이, 아이 원트 투(Before I die, I want to)__’의 공란을 관람객이 적어보는 코너였다. 그 맞은 편은 작품과 연관이 있는 음악을 헤드폰으로 들어보는 코너. 황재원 작가의 작품 사진을 보면서 모차르트의 레퀴엠 ‘눈물과 한탄의 날’을 들어보는 식이다. 매일 추첨으로 선정된 7명의 관람객에게 미니 골호에 그림을 그려보는 체험 행사도 이곳에서 진행된다.
제3전시장은 작가가 작가 자신을 위한 유골함을 모아놓은 만큼 실험적인 스타일이 자주 보였다. 눈을 뜨고 있는 모습과 감고 있는 두 가지 자신의 얼굴을 그려낸 김생화 작가의 ‘나에게 주는 선물’, 간절한 염원이 기도하는 손끝에 배어있는 대만 리따이롱의 ‘영혼의 귀속’, 세밀한 부조로 완성한 네덜란드 카우젠 반 리우웬의 ‘사랑하는 것들에 둘러싸여’도 흥미로웠다. 타나카 테츠야의 ‘카가야키-삶의 그릇’은 푸른색 조명을 애잔하게 비추고 있었다.
관람객이 마지막으로 만나는 작품은 미국 작가 저스틴 데이비드 크로우의 ‘죽음에 대하여’다. 인간의 유한성을 말해온 작가는 200인분의 골분을 넣어 만든 유약으로 작품을 마무리하며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
삶과 도자기의 연결성을 묻다
한국의 박정근·윤지용·최지만·윤영수 작가는 이 같은 옛 유물에 대한 비틀기를 시도한다. 예를 들어 과거의 여인상이 다산과 풍요를 염원하는 성(聖)스러운 모습을 담았다면, 현대 여인의 이미지는 물질 만능의 성(性)적 이미지로 변질돼 소비되는 것에 대한 지적 같은 것이다.
이천은 ‘기록: 삶을 말하다’ 코너를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삶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을 선보인다. 미학적이고 관념적인 예술을 뛰어넘어 당대의 사회 변화에 공명한 로버트 아네슨, 바이올라 프레이, 미시마 키미요 등의 작품을 통해 도자의 현대성에 초점을 맞춘다.
이밖에 ‘2017-2018 한-영 상호 교류의 해’를 기념하는 영국문화원·영국공예청과의 기념 프로젝트, 2015년 국제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영국 작가 니일 브라운스워드 개인전, ‘애프터눈 티(afternoon tea)’ 문화를 소개하는 ‘티웨어 영국의 오후를 담다’도 관람객을 기다린다.
작가와 관람객이 함께 진행하는 국제도자워크숍, 국제도자학술회의와 각종 이벤트 및 체험 프로그램도 풍성하다. 비엔날레와 맞춰 제20회 광주왕실도자기축제(4월 22일~5월 7일 곤지암도자공원), 제31회 이천도자기축제(4월 28일~5월 14일 설봉공원), 제29회 여주도자기축제(4월 29일~5월 14일 여주도자세상)도 함께 진행된다. ●
여주(경기)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한국도자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