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까지 나선 日 도시바 인수전
이처럼 반도체 시장이 대호황, 즉 ‘수퍼 사이클’에 들어섰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전 세계 주요 정보기술(IT) 업체들은 일본 반도체 업체 도시바메모리가 누구 품에 안길 지에 주목하고 있다. 일본 입장에서 도시바를 현 시점에서 매각하는 건 사실상 ‘눈물의 바겐세일’과 다름없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87년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낸드플래시를 개발한 곳이 도시바다. 지금도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도시바는 2위(19.6%) 업체다. 그렇지만 1조6000억원 규모의 분식회계 스캔들, 원자력 발전소 업체인 미국 웨스팅하우스(WH) 인수 실패가 문제였다. 결국 도시바는 주력 사업인 메모리 반도체 부문을 내다 팔기로 하고 도시바메모리로 분사했다. 당초 지분 20%만 매각하려했지만 회사 정상화를 위해 50%, 100%까지 완전매각할 수 있다는 쪽으로 선회했다.
삼성전자, 올들어 반도체 이익 6조
낸드 2위 도시바 가치 연일 상승
하이닉스 이어 애플·구글도 관심
UBS “반도체 호황 정점 찍었다”
중국 굴기, 이르면 내년에 현실로
AI·IoT·자율주행차까지 쓰임새 늘어
그렇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차 등 최근 급부상한 기술분야 때문이다. 애플이 도시바를 인수할 경우 아이폰과 노트북PC ‘맥(Mac)’에 들어가는 반도체 칩 상당수를 자체 조달할 수 있다. 이에 더해 차량용 반도체 칩까지 마음만 먹으면 공급받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자율주행 소프트웨어(SW)를 구동할 수 있는 고용량의 메모리 칩을 도요타의 적시생산방식(Just in Time)처럼 필요할때 받게된다. ‘애플카’와 애플의 차량용 SW ‘카플레이’, 도시바 반도체가 수직계열화된다는 논리다.
구글·아마존은 애플과는 이해관계가 약간 다르다. 이 두 기업은 글로벌 클라우드 시장에서 선두자리를 다투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데이터를 불러올 수 있는 클라우드 환경을 위해선 고용량의 데이터센터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도시바의 낸드플래시가 필요하다는게 구글·아마존닷컴의 논리다.
시장에선 D램·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부문의 수퍼사이클이 5년 길게는 10년까지 지속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IC인사이츠는 올해 메모리 반도체 시장 규모가 853억달러(약 98조원)로 지난해보다 10.3% 증가하고 2021년에는 1099억달러(약 126조38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가트너는 “올해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의 매출 규모는 전년 대비 7.2% 증가하고, 메모리 반도체가 성장세를 견인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10년, 공급이 수요 못 따를 것”
그렇지만 현재 D램 공급은 한국 삼성전자·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3개 기업이 독과점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단번에 생산 물량을 확대하기 어려운 구조다. 게다가 반도체는 갈수록 정밀도가 높아지면서 이젠 생산라인 하나를 짓는 데만 10조원 이상이 들 정도로 진입 장벽이 높다.
낸드플래시는 삼성이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현재 최고 수준 기술인 48단 3차원(3D) V-낸드플래시를 양산할 수 있는 업체는 2017년 4월 현재 삼성전자밖에 없다. 낸드플래시는 D램과 달리 전원이 꺼진 상태에서도 저장한 자료가 손실되지 않는 게 특징이다. 그래서 휴대용 저장장치(USB메모리), 소형 저장장치(SD카드)에 이어 하드디스크를 이을 차세대 저장장치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까지 활용폭이 커지고 있다. 이승우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가 서버용 3D낸드에서 내고 있는 성과는 ‘넘버 원’이 아니라 ‘온리 원(Only One)’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재고 확보 경쟁 따른 일시적 공급부족”
중국의 반도체 굴기도 무시할 수 없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자국 반도체 업체들을 대상으로 10년간 1조위안(약 170조원) 투자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대표적으로 칭화유니그룹은 지난해 말 우한에 3D 낸드플래시 공장을 착공했다. 2020년까지 총 240억달러(약 28조원)를 투입할 예정이다. 이 공장에선 당장 내년 3월부터 낸드플래시 메모리가 쏟아져나올 예정이다. 시장분석업체 IHS의 월터 쿤 이사는 “양산 기술의 수준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이르면 2018년 말, 늦어도 2020년 전에 중국 칭화유니그룹이 공급량을 크게 늘릴 것”이라며 “중국이 세계 낸드 플래시 시장을 공급 과잉 상태로 몰아 넣을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