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이 뭐길래] 왜 배워야 하나
나이 드신 아버지가 수학 문제와 씨름하고 있는 걸 보면서, 그 나이에 그걸 왜 푸시냐고 뵐 때마다 그만두시라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막무가내였다. 고등학교 때 미적분을 배우지 못했으니 지금이라도 반드시 미적분을 정복하겠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수학이 어디에 사용되는지를 알게 되었던 것이 결국 나이 드신 아버지에게 수학 문제집을 들게 한 것이다.
상대성이론 책 읽던 70대도
흥미 느끼면 미적분과 씨름
어디에 쓰이는지 모르는 학생들
성취도평가 상위권이지만
호감도는 상대적으로 떨어져
고대 그리스선 우주와 사물의 원리
중세엔 하나님 이해의 도구로 여겨
근대 들어 과학분야 본격 활용
수와 수의 비례 통해 우주 원리 이해
수학자나 언론 등은 수학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수학을 공부한 어른 세대들 상당수가 수학이 실생활에 전혀 유용하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수학은 그저 수학자들에게만 필요한 분야는 아닐까? 수학 교과서나 문제집을 공부하는 것은 이런 문제들을 이해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문제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수학이 발전해온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수학이 계속해서 발전해왔던 것은 여러 측면에서 실용적인 분야였기 때문이다. 가령, 수학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던 고대 그리스에서 수학은 우주와 사물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는 원리라고 여겨졌다. 모든 존재 아래에 있는 수와 수의 비를 통해 우주와 사물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따라서 피타고라스 학파는 제자 양성 과정에서 수학을 주요 준비 교육 과목으로 두었다.
이러한 생각은 플라톤으로 이어졌다. 그는 우주의 근원과 그 운동을 원과 구를 포함해 다양한 도형이나 정다면체들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국가를 통치하는 통치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수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은 이후 서유럽으로 전해졌다. 기독교 사회였던 서유럽에서 기하학과 천문학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도구였다. 음악 역시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조화로운 음을 만들고 이해하기 위한 필수 분야로 여겨졌다. 결국 12세기부터 대학이 설립되면서 산술이나 기하, 음악 그리고 천문학을 포함하는 수학 분야들은 대학의 필수 교육 과정을 구성했다. 르네상스를 지나면서 수학의 유용성은 보다 더 다양한 측면에서 이해되기 시작했다. 우선 대학에서 교육되던 천문학은 천체의 운행 외에도 하나님이 창조한 인체의 질병을 이해하고 치료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됐다. 또한 천문학은 하늘의 운행을 통해 개인의 운명과 국가의 미래를 점치기 위한 도구로도 사용됐다.
한편 이 시기에는 상업 및 도시의 발전과 함께 수학이 대학을 벗어나 사립 교육기관을 통해서도 교육되기 시작했다. 수학은 이자 계산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수단이자 재료가 담긴 용기의 용량과 가격을 비교하기 위한 도구였다. 항해에서는 위도를 계산하기 위한 원리였고 그림의 구도가 실제 눈으로 보는 것과 일치하도록 하기 위한 장치였다. 이외에도 수학은 기하학적으로 조화로운 건축물을 주조하기 위한 원리였으며 군대를 효율적으로 배치하고 난공불락의 성곽을 세우기 위한 기준 등으로 활용됐다. 수학이 활용되는 분야는 점점 더 늘어났고 수학자들을 후원했던 이들은 유용성을 염두에 두고 기꺼이 돈을 지불했다.
뉴턴, 지상·천체 운동 단일화해 설명
뉴턴의 성취에 고무된 이들은 과학 연구에 수학을 응용하고자 노력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학자들은 전통적인 기하학을 대수적인 방식으로 변화시켰던 해석 기하학과 곡선의 연구를 대수적인 방식으로 정리했던 미적분학의 연구들을 적극 활용하였다. 18세기 말에 천체의 운동을 대수적인 방식으로 설명했던 해석역학의 연구는 그 대표적인 성취라 할 것이다.
그런데 일부 과학 분야에 수학이 쓰이기는 했지만 18세기 동안에도 대부분의 과학기술 분야에 수학은 효과적으로 활용되지 못했다. 과학기술 분야가 수학적인 방식으로 기술되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먼저 정밀 측정이 가능해야 했다. 하지만 정밀한 시계나, 매우 높거나 낮은 온도를 측정할 수 있는 온도계, 아주 정확한 눈금이 그려진 비커나 미세한 무게를 측정할 수 있는 저울 등은 한참까지도 표준 제작되지 않았다. 길이를 재는 자나 무게를 재는 저울 등은 지방이나 국가별로 통일되지도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과학기술 분야들을 수학적으로 기술할 수만 있다면 해당 과학기술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가능했다. 결국 그러한 측정 도구나 정밀 장치들을 개발하는 노력은 꾸준히 계속되었고 그 과정을 통해 화학이나 열역학, 전자기학 그리고 파동학 같은 분야들이 수리 과학 분야가 되어 갔다. 수학이 과학기술 분야의 언어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 19세기 동안에는 기존의 수학이 과학기술 분야에 응용되는 것을 넘어 수학 그 자체의 논리적인 발전 과정에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수학 분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유클리드 기하학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생겨났고, 미적분학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해석학이 발전했으며, 2차원에서 논의되던 대수학은 n차원 공간에서 논의되는 선형대수학 등으로 발전했다. 또한 이 시기에는 통계학, 위상수학 그리고 집합론 등 새로운 수학 분야들의 발전도 이어졌다. 새롭게 등장했던 수학 분야들은 처음에는 기존 수학의 연구 과정에서 발전한 것이었다.
그러나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아 새로운 수학은 과학기술을 넘어 사회학이나 인류학·예술·건축·알고리즘 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 응용 가능함이 발견됐다. 현재에도 수학은 여전히 진화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응용 가능성은 계속해서 새롭게 발견되고 있다.
중·고교 수학 분야별 발전 유래 설명할 것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는 2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서서히 발전해 온 수학의 기본 내용들을 상당 부분 담으려다 보니 가르치는 내용이 방대해졌다. 수학 교사들 입장에서는 광범위한 수학 분야의 역사적인 발전 과정을 모두 이해하기 힘들고, 과학기술 분야를 전공하지 않은 상태에서 과학기술 응용 사례 등을 구체적으로 가르치기가 힘들어졌다. 학생들이 자신이 배우는 수학이 어디에 활용되며 어떤 측면에서 유용한지를 이해하기 어려운 현실이 된 것이다.
본 칼럼에서는 바로 그러한 문제들에 착안해 중·고등학교 수학 교과서에 나오는 수학 분야들과 문제들이 과거 어떤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발전했으며, 그러한 성취는 이후 수학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 칼럼을 통해 수학이 발전해온 발자취를 살펴보면서 수학 교육의 현재와 문제 등을 이해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조수남 수학사학자
sunamcho@gmail.com
서울대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박사.현 서울대 강사, 과학문화센터 연구원, 전북대 과학학과 박사후연구원으로 있으며, 과학사와 수학사를 연구하고 있다. 고등과학원 초학제연구단에서 연구했으며, 『욕망과 상상의 과학사』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