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가 땅 위로 올라온 시점은 데본기가 후반부에 들어선 3억 7500만 년 전. 몇몇 물고기에 강력한 지느러미가 생겼다. 지느러미의 힘이 어찌나 셌던지 자기 몸을 육지로 들어 올릴 정도였다. 그런데 궁금하다. 물고기들은 왜 굳이 땅 위로 올라왔을까?
물고기·네발동물 눈 크기 비교
‘부에나 비스타’ 이론 설득력 갖춰
뭍으로 올라오기 전부터 눈 커져
더 멀리 더 많이 잘 보게 되자
지느러미 대신해 네 다리 발달
이유를 막론하고 육지로 올라온 최초의 물고기를 물 밖으로 유인해서 육상으로 이동시킨 추동력은 무엇일까? 이 문제는 진화학자들에게 오랫동안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다. 최근 과학자들은 발달한 시각(視覺)이야말로 최고의 동력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물고기들이 수면을 벗어나서 육지로 올라오게 된 근원적인 힘은 눈이 커지고 시력이 좋아져서 수면 위의 먹잇감들을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시력 좋아지기 전 눈의 위치부터 바뀌어
이들의 연구 방법은 비교적 단순했다. 고생대에 살았던 수많은 종류의 물고기와 네발동물 화석에서 눈의 크기를 측정했다. 그 결과 3억 9000만 년 전에서 2억 5000만 년 사이에 눈의 크기가 극적으로 커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때는 아직 판데리크티스(Panderichthys)나 엘피스토스테게(Elpistostege) 같은 발달한 네발어류들이 아직 물에 남아서 첫 육상 네발동물로 진화하기 직전이다.
물고기 화석은 비교적 3차원적인 형태로 보전된 경우가 많다. 특히 안구 화석이 3차원적으로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는 경우라면 공막고리뼈를 재구성할 수 있다. 공막고리뼈는 안구를 둘러싸고 있는 두개골의 구멍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눈을 둘러싼 뼈라서 이것을 보면 눈알의 모양과 크기를 알 수 있다. 두개골 화석에서 눈구멍 크기를 비교해 보니 최초의 육상 네발동물인 양서류는 완전히 물속에서 살던 물고기보다 세 배가 커졌다.
지질시대라는 관점에서 보면 순식간에 일어났지만 단번에 일어난 일은 아니다. 물고기의 눈이 커지는 데는 몇 가지 단계가 필요했다. 물고기가 육지로 이동하는 단계에서 시력이 향상되기 위해 먼저 눈의 위치가 변했다. 앞을 보던 눈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눈으로 바뀌었다. 아래에 숨어 있다가 위에 있는 먹잇감을 기습공격하는 매복 포식자로 변한 것이다. 데본기 물고기인 판데리크티스의 머리 모양은 이런 유형의 공격에 최적화됐다. 몸길이 90~130㎝인 판데리크티스는 육기어류와 초기 네발동물의 중간 단계를 보여준다. 판데리크티스의 시력은 먹잇감을 올려다보면서 넓은 영역을 탐색하는 데 최적화됐다.
둘째 단계는 물고기들이 눈을 물에 대거나 물 위로 내민 후 공기를 통해 보는 것이다. 네발동물에 가장 가까운 물고기인 틱타알릭(Tiktaalik)이 대표적인 예다. 틱타알릭의 머리는 악어처럼 긴 모양인데 머리 중간에 있는 눈은 위로 올라와 있어서 주변을 쉽게 살펴 볼 수 있다.
지금도 중남미 대서양 해안의 맑은 바닷물에 서식하는 네눈박이물고기는 특이한 방식으로 시야을 향상시켰다. 이들은 망막을 위아래 두 부분으로 나눈다. 네눈박이물고기가 수영할 때 망막 경계선이 수면과 일치하면 수면 위의 눈은 공기 중의 물체에, 수면 아래의 눈은 수중의 물체에 초점을 맞춘다. 복초점 렌즈는 수면에 떠 있는 먹이를 탐색하면서 동시에 물속에 있는 굶주린 포식자들의 기습을 방지하기 때문에 네눈박이물고기에 아주 유용하다.
완전히 물속에 적응한 시각에서 공기를 통해서 볼 수 있는 시각이 창발되자 눈으로 받아들이는 정보량이 500만 배 증가했다. 틱타알릭 같은 물고기는 단순히 눈만 물 밖으로 내미는 것만으로도 강변에 있는 커다란 애벌레와 벌레를 찾는 시각 능력이 엄청나게 좋아졌다. 공기를 통해 보는 시각은 데본기 말에 강력한 선택합력으로 작용했다.
지느러미 줄 대신하여 발가락이 창발
물에 살던 생물이 육상에서 살기 위해서는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 수분 증발을 막아야 하므로 피부가 두꺼워져야 한다. 또 중력으로부터 머리와 내장을 보호하기 위해 두개골·갈비뼈·다리뼈가 알맞게 진화해야 한다. 또 목이 생겨야 하고 심장의 구조도 바뀌어야 한다.
‘부에나 비스타’ 이론은 물고기가 육상 진출을 하기 위한 온갖 변화를 하는 데 있어서 눈이 활강줄 역할을 했다고 제안한다. 더 멀리 더 많이 더 잘 볼 수 있는 커다란 눈이 등장하자 지느러미를 대신하여 네 다리가 발달되었고 지느러미 줄을 대신하여 발가락이 창발됐다는 것이다.
발가락 역시 육지로 올라오기 전에 물속에서 진화하기 시작했다. 판데리크티스는 지느러미 안쪽에 단순하고 짧기는 하지만 이미 발가락이 있었다. 이후 완전히 발가락이 형성되자 육지로 이동하는 게 한결 쉬워졌다.
척추동물들은 커다란 눈이 생긴 다음에야 처음으로 먼 거리를 탐지할 수 있었다. 먹잇감에 성공적으로 접근하려면 뒤에서 덮치는 것 같은 매복공격을 계획해야 한다. 먹잇감들이 자기 앞에서 접근하는 포식자를 발견하고 피신할 것이기 때문이다.
먼 거리 시력의 기원은 물고기와 네발동물의 공통조상에서 기원했다. 그 공통조상은 틱타알릭 같은 발달한 육기어류의 일원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 이전에는 그 어떤 물고기도 가보지 않은 곳을 향해 모험을 감행한 조상 물고기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하지만 먼 거리 시력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그 어떤 조상 물고기도 모험하지 못 했을 것이다. 먼 거리 시력의 발생은 우연이었다.
가오리보다 고등어가 사람에 가까워
이정모 서울 시립과학관장
연세대 생화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 독일 본 대학교에서 공부했다.안양대 교수와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역임. 『달력과 권력』『공생 멸종 진화』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