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0주년 기획] 한국에 사는 이방인, 마이그런트 200만 <상> 인구 4%가 그들
김창원(39)씨는 아프리카 브룬디 출신이다.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부징고 도나티엔이라는 이름의 마라톤 선수로 참가했다가 그냥 한국에 눌러앉았다. 고국의 내정 불안정 때문에 난민 신청을 한 지 7년 만인 2010년 한국 국적을 땄다. 도나티엔은 성씨는 한국에서 가장 많은 김으로, 이름은 제2의 고향이 된 창원을 따 붙였다. 김씨는 부룬디에서 온 부인과 아들 하나를 뒀다. 아들 이름은 한빈(韓斌)으로 지었다. 한국에서 빛나는 아이라는 뜻이다.
유학생·새터민·난민 등 늘고
결혼 이민자는 줄어드는 추세
저출산·고령화로 노동력 부족
이주민들 위한 정책 전환 필요
통일 대비 이질적 문화 수용 연습
2015년 현재 외국인 결혼이민자는 총 14만4912명이다. 외국인 중 약 7%에 불과하다. 한국 국적을 딴 혼인 귀화자를 다 포함해도 약 23만 명이다.
반면 국내 거주 마이그런트의 구성은 복잡해지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57만여 명), 중국 등 외국국적 동포(21만 명), 불법체류자(14만 명), 유학생(8만 명), 북한을 탈출한 새터민, 난민 등이다. 특히 난민 신청자의 증가가 눈에 띈다. 2009년 한 해 324명이던 난민 신청자는 지난해 7542명으로 늘었다. 내전을 겪는 시리아인도 지금까지 980명이 한국에 난민 신청을 해 956명이 인도적 체류허가를 받았다. 한국에서 ‘다문화의 다문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일부 외국인에게 예산 중복 투입
예산도 다문화가족으로 쏠렸다. 2012년 외국인 정책 사회통합 분야 예산 중 결혼이민자와 자녀 관련 예산이 95%(1184억원)를 차지했다. 윤광일 숙명여대 다문화통합연구소장은 “내국인 복지 소외 계층도 많은데 일부 외국인에게 여러 부처가 중복해서 예산을 투입한 낭비적 요소가 있었다. 예산을 효율적으로 재배치해 마이그런트 전반에 써야 하고 특히 고급인력 유치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종천 고려인강제이주 80년 안산시민위원회 사무국장은 “소련 연방에서 살던 한국인 4세들인 고려인의 아이들이 안산에만 500명이 넘는데 결혼이주민 자녀 교육이 대부분인 다문화 대책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재한 줌머인 연대 고문인 로넬 차크마나니는 “한국의 외국인 정책은 한국에 왔으니 한국 사람처럼 살라는 정도, 김치 잘 먹으면 한국 사람, ‘오 한국말 잘하시네, 한국 사람이네’ 그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말했다. 유엔은 태어난 곳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체류하는 외국인을 마이그런트라고 칭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더 좋은 물질적, 사회적 조건, 더 나은 삶을 위해 다른 국가 혹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사람들과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적용된다. 불법체류자도 마이그런트에 포함된다. 불난 집에 뛰어들어 이웃을 구해 최근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LG 의인상을 수상한 스리랑카 출신의 니말(39)도 어머니의 암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5년째 한국에서 일하는 불법체류자다.
한국이 이런 마이그런트까지 챙겨야 할까. 김현숙 숙명여대 다문화통합연구소 책임연구원은 “한국이 어려울 때 많은 사람이 미국 등으로 이민을 갔다. 한국도 받았으니 돌려줘야 하는 의무도 있고, 이에 앞서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한국의 국격이자 인도주의”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마이그런트 정책이 어려운 외국인을 무조건 받아주고 도와주는 ‘퍼주기’가 돼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많다. 나라가 잘 살기 위해, 내국인이 잘 되기 위해 선별해서 외국인을 받는 것이 이민 정책의 대전제라는 것이다. 정기선 이민정책연구원 원장은 “한국에 필요한 외국인들을 유입해 국내총생산과 1인당 소득이 늘어나는 구조로 만들어야 한다. 외국인 때문에 일자리를 잃는 사람도 있는데 외국인을 고용하는 사업주와 이런 회사를 하청업체로 둔 대기업이 그동안 저임금의 과실을 독점했기 때문에 사회 전체로 나누는 제도가 필요하다. 또 외국인 노동력을 통해 산업구조를 바꾸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누구를 어디까지 지원할지 합의 못해
좋은 인력을 얻으려면 그들도 잘살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콩고 출신 난민으로 광주대 교수가 된 욤비 토나(51)는 “외국인에 대한 대책은 서류상으로만 존재한다. 가난한 나라에서 온 사람 중 제대로 된 직장 가진 사람은 나 한 명뿐인 것 같다”고 말했다. 시리아 다마스쿠스에서 대학을 다니다 현재 일산 폐차장에서 일하는 알하리리 누르리딘(24)은 “한국 정부로부터 아무런 지원도 받지 않았다. 정당하게 일을 하고 (한국인보다 훨씬 적은) 돈을 버는 것뿐이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우리가 이곳을 점령하려 한다고 여긴다. 전쟁만 중단된다면 내일이라도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가장 이상적인 영입 대상 외국인은 유학생이지만 그들을 끌어안기엔 제도적으로 허술한 면이 적잖다. 요르단 출신으로 경희대 교육대학원에서 한국어 교육자 과정을 밟고 있는 자키야 다우드(26·여)는 “오기 전에 한국 친구를 많이 사귈 거라고 생각했고, 전공하면서 한국 친구랑 대학 공부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 중국 사람이에요. 저는 이집트 친구와 어울리고 아랍어 쓰고 허탈해요. 학업이 끝나면 특별히 할 일이 없어 돌아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성호준·강기헌·박민제 기자, 조수영·나영인 인턴기자, 숙명여대 다문화통합연구소 윤광일 소장·김현숙 책임연구원·신혜선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