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이번 무대는 파리 오페라 발레의 간판스타 출신으로 2016/17 시즌부터 감독직을 수행하고 있는 오렐리 뒤퐁(Aurelie Dupont)이 이끈 첫 해외 투어이었기에 도쿄 뿐 아니라 파리 언론의 관심도 높았다. 그 현장에 중앙SUNDAY S매거진이 다녀왔다.
노장 무용수 투어 제외 … ‘뒤퐁 시대’ 개막
세계 最古 파리 오페라 발레 이끄는
오렐리 뒤퐁 감독의 깜짝 행보
투어 프로그래밍은 밀피에 시절 이뤄졌고 뒤퐁은 레퍼토리를 존중했지만, 이번 캐스팅으로 향후 리더십의 방향을 예고했다. 뒤퐁과 무용수로 함께 활동한 노장들은 모두 투어에 빠졌다. 마리 아네스 지요, 에르베 모로, 레티샤 퓌졸은 물론 뒤퐁의 남편인 제레미 벨랑가르도 곧 발레단을 떠난다. 백전 노장인 카를 파켓도 2018/19 시즌 ‘신데렐라’로 은퇴작이 잡혔다.
뒤퐁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밀피에 시절의 혼란을 수습하고, 누레예프 시절부터 이어온 파리 오페라 발레 스타일을 유지·재생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파리 밖에서 열리는 갈라 출연에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고, 누레예프 버전의 사용료를 부과하는 방침도 세웠다.
인사권을 손에 쥔 뒤퐁의 리더십에 공개적으로 반기를 드는 무용수는 없지만, 예전 같으면 발레단에서 보기 어려운 행태도 뒤퐁을 중심으로 일어난다. 뒤퐁은 2015년 5월 ‘마농’으로 파리 오페라 발레 수석 무용수 자리에서 내려왔지만, 2016년 2월 감독으로 지명된 이후에도 발레단 밖에서 댄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2월 말 발레단이 파리에서 웨인 맥그레거의 ‘트리 오브 코즈’를 올리는 동안 자신은 도쿄로 넘어와 도쿄 발레단이 무대에 올린 모리스 베자르 ‘볼레로’의 솔로를 맡았다.
뒤퐁은 스테판 리스너 파리 오페라 총감독이 참석한 2월 28일의 투어 기념 회견에는 스케줄 상 불참했지만, NBS가 올 여름 개최하는 파리-로열 발레 합동 갈라를 위한 7일 간담회에는 기획자로 등장했다. 또 ‘그랑 갈라’가운데 밀피에 안무의 ‘다프니스와 클로에’에 본인이 직접 출연했다. 발레단 은퇴 무용수가 파리 오페라 발레 공식 공연에 오르는 건 누레예프 사후 파리에선 없던 일이다.
커튼콜에서는 ‘사복 차림 막춤’ 파격
‘그랑 갈라’를 관통하는 주제는 전통과 혁신 그리고 음악성이었다. 12일 갈라의 첫 작품은 조지 발란신 안무의 ‘테마와 바리에이션’. 이 작품은 1947년 뉴욕에서 초연되고 1993년 파리 오페라에 오르기까지, 발란신 재단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발레단들 사이에 이형태(異形態)가 존재한다.
쇼팽 건반곡에 맞춰 질베르와 조슈아 오팔트가 함께한 제롬 로빈스 2인무 ‘아더 댄스’는 음악 속에서 개인의 스타일을 드러내고픈 에투알의 욕심과 마주하는 작품. 각자 개성에 맞춰 박자를 쥐었다가 풀면서 본인의 템포감을 발동작으로 선명하게 표출했다. 어느덧 노장에 접어들었지만 맵시가 가지런한 질베르의 청순함은 여전했다.
라벨 관현악에 맞춰 진행된 ‘다프니스와 클로에’는 무용 언어의 세공면에선 거칠었지만, 준주역급 배역에서 개성파 무용수들이 여럿 등장하면서, 발레단의 저력이 파리 오페라 발레학교가 배출한 풍부한 군무진에 있음을 방증했다.
커튼콜에는 관객들의 박수에 맞춰 사복 차림의 뒤퐁이 무용수들과 막춤을 췄다. 이 역시 기존 감독들의 행동에선 볼 수 없던 장면이다.
오는 7월 뉴욕 링컨센터 데이비드 코흐극장에서는 발란신 ‘보석’ 초연 50주년 기념 공연이 열린다. 파리 오페라 발레는 3부작인 ‘보석’ 가운데 ‘에메랄드’를 공연할 예정이다. 소속 발레단을 대표하는 무용수 명단에는 한국인 프리미에르 박세은도 있다. 특히 ‘루비’는 뉴욕 시티 발레가, ‘다이아몬드’는 볼쇼이 발레가 맡아 사상 유례없는 ‘발레 삼국지’를 벌일 예정이다. 발란신 스타일은 신고전주의 계승과 정통성 논의에 가려 단체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여 왔는데, 이번에 한 눈에 그 차이를 볼 수 있게 된 셈이다. 전세계 발레팬들의 관심이 벌써부터 뜨거운 가운데 오렐리 뒤퐁이 어떤 무대를 보여줄 지 기대된다. ●
도쿄 글 한정호 공연평론가 imbreeze@naver.com, 사진 Kiyonori Hasegawa·일본공연예술진흥회(N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