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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나 다를까. 현실과 공명하는 영화 이미지 연상작용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지하철 폭행사건, 편의점 음주 폭행사건 등으로 연이어 터져나오는 고령화사회 현상은 '죽여주는 여자'와 오버랩된다. 때마침 지난 2월 21일 외신으로 접한 영국의 의학저널 '랜싯'에 실린 논문도 고령화사회를 가늠케 해준다. 이 논문에 따르면 2030년에 태어나는 한국 여성의 기대수명은 90.82세, 86~87세 이상 장수할 확률이 90%에 달하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중 1위에 올랐다고 발표했다. 어린 시절, TBC TV에서 온가족이 같이 보던 노래자랑 프로그램 ‘장수만세’ 흑백영상이 떠오르기도 한다. 장수축하 환갑연은 이제 사라지고, 간혹 백세 장수축하연 소식이 들려온다. 이렇게 도래한 장수사회는 축복일 텐데, 한국 노인 자살률이 OECD 1위라는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바로 그 지점에서 '죽여주는 여자'는 현실 세상에 의미심장한 경고를 전해준다.
이 작품은 탑골공원에서 장충공원, 남산으로 이동하며 노인 상대로 ‘죽여주게’ 서비스 해주는 소영(윤여정)의 일상을 세세하게 보여준다. 박카스 뚜껑을 따서 권하며 접근하기에 ‘박카스 할머니’로도 불리는 소영은 ‘죽여주게’라는 수사의 이중성을 동시에 수행한다. 동전의 양면으로 설명하는 절대적 삶-사랑(에로스 에너지)과 그 이면의 죽음(타나토스 에너지)은 이 작품에서 문자 그대로 재현된다. 한 끼조차 걱정해야 하는 빈곤 노인, 돈은 있어도 병에 시달려 존엄사를 갈망하는 노인, 먹고살 돈이 있어도 고독사를 두려워하는 노인- . 그들이 ‘죽여주는 여자’를 찾는 이유는 정책과 제도, 변해버린 가족문화로는 해결되지 않는 지점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웰빙(well-being)과 웰다잉(well-dying)은 동전의 양면임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장수사회는 축복일 텐데
노인 자살률 OECD 1위
영화 '죽여주는 여자'
의미 심장한 메시지
또 다른 스웨덴 영화 '오베라는 남자'(2015, 하네스 홀름)도 프레드릭 배크만의 베스트셀러를 각색한 작품이다. 오베는 파란만장한 개인사를 가진 고집스런 노인이다. 철도회사에서 일하던 중 사망한 아버지에 이어 바로 그 철도회사에서 43년간 일했던 오베는 이제 퇴직한 외로운 노인이다. 내성적인 그를 이해해주던 아내도 세상을 떠났다. 그는 고독사 대신 스스로 인생길을 정리하기로 한다. 천정에서 내린 줄에 별러온 작업을 수행하려는 순간, 막 이사 온 이슬람 여성 이웃이 들이닥쳐 급한 도움을 요청한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철로에 뛰어들려는 순간, 그보다 먼저 뛰어든 청년을 구하면서 그는 이제 다른 인생길을 만들어간다. 우연히 발견한 일상의 그늘에서 외국인 약자 돕기가 오베의 일상사를 구성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세포가 변하듯, 인생길도 변한다. 없던 길도 만들 수 있는 것이 인생길의 묘미가 아니던가. 이런 변화는 인류의 체질과 평균 수명 변화에 따른 유엔의 2015년 발표 ‘인생 5단계’ 분류에도 반영된다. 이 자료를 보면 미성년자는 0~17세, 청년은 18~65세, 중년은 66~79세, 노년은 80~99세, 100세 이후는 장수노인이다. 지자체들이 시행 중인 ‘어르신’ 지원 목록도 이젠 중·노년으로 바꾸는 고령화 대응에 변화가 필요하다. 어르신으로 퇴화하기보다 죽여주게 자신의 인생길을 이모작,삼모작하는 인공지능 일상화를 누리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나날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유지나
동국대 교수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