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하면서 개성은 뚜렷한 멋쟁이 아이템

중앙일보

입력 2016.06.26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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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오픈한 신세계 백화점 면세점을 둘러보다 한국공예품 숍에서 멋진 물건을 하나 발견했다. 공예작가 전경미씨가 만든 에코 백이다. 겉감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이보리·검정 천인데 안감을 색동 비단으로 마감했다. 어깨에 메거나 손으로 들었을 때 슬쩍슬쩍 색동 속살이 드러나는데, 그 느낌이 꽤 근사하다. 윗면을 살짝 접으면 멋스러움은 더한다. 외국 여행길에 메고 가면 그 가치가 더욱 빛을 발할 물건이다.


사실 안감과 겉감을 달리하는 게 최근 럭셔리 브랜드의 가방 디자인 전략이다. 가방 한쪽 면을 오픈하면 전혀 다른 분위기의 안감이 ‘까꿍’하고 드러나는 펜디 ‘피카부 백’은 웨이팅리스트를 적고 몇 달은 기다려야 구입할 수 있는 베스트셀러다. ‘피카부’라는 이름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드러내며 아기들에게 “까꿍” 소리를 내는 놀이의 이탈리아 이름이다. 가방을 오픈하고 덮개 부분을 뒤로 젖혀서 자석으로 고정시킬 수 있는 크리스찬 디올의 ‘디올에버’ 백도 겉감과 안감의 전혀 다른 대비가 특징이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에코 백을 보면 그야말로 개성이 철철 넘친다. 환경보호와 저렴한 생산비를 고려해 색깔은 블랙·화이트·아이보리 세 가지 컬러가 대부분이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직사각형의 크기, 가로·세로 방향, 줄 길이만으로 형태의 승부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즉 군더더기 같은 장식을 일체 뺀 상태에서 아름다운 비율만으로 디자인의 승패가 갈린다. 소비자로선 자신의 체격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서 유용하다. 그야말로 ‘내 몸에 꼭 맞는’ 인간공학적인 디자인이란 이런 게 아닌가 싶다. 앞뒷면의 빈 공간을 채운 타이포 그래픽과 프린트는 개인의 개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길거리에서 만난 무수히 많은 캔버스 백 중에 똑같은 걸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그런데 왜 에코 백일까? 경제침체로 저렴한 가격대의 상품을 찾는 심리가 우선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이 원인일 순 없다. 럭셔리 브랜드의 가죽가방과 에코 백은 가격 차이가 너무 크다. 로드 숍, 미술관 아트 숍에서 판매하는 에코 백의 가격은 1만~2만원 선. 그렇다면 가죽 가방 대신 에코 백을 찾는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에코백은 주로 봄부터 여름 사이에 인기가 높다. 가벼워진 옷차림에 어울리는 천 소재이기 때문이다. 흰색 운동화가 유행하면서 자연스레 짝을 맞추기에도 쉽다. 가격이 저렴한 데다 빨아 쓸 수 있기 때문에(사실 빨면 직물이 수축해서 모양은 망가진다) 함부로 굴려도 된다는 점도 장점이다. 이건 가방 주인이 혹여나 비싼 가죽 가방 흠집 날까 안절부절 하는 여자보다는 털털하고 담백한 성격의 소유자임을 드러내 주는 사인이다. 얼마 전 종영한 KBS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강모연(송혜교)이 왜 우르크 사막은 물론이고 서울에서도 내내 에코 백을 메고 다녔을지 생각해보라.


1년 전쯤 블로그에 ‘365만원 짜리 가죽 가방 대신 1만원 짜리 에코 백 365개를 사서 매일 바꿔서 메는 건 어떨까’라고 제안한 적이 있다. 그 생각은 아직도 유효한데, 숫자는 조금 바꿔야 할 것 같다. 에코 백을 내놓는 캐주얼 브랜드와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점점 늘고 있다. 네임 파워가 있으니 가격도 점차 오른다. 더 멋진 디자인을 만날 수 있다면 좋은 일이지만, 가격이 오르는 건 글쎄…. 경쟁에서 밀려 옷장 속에 남겨진 에코 백은 또 어쩌란 말인가. 환경을 생각하는 에코 백이 정작 쓰레기가 되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글·사진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