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21일 양일간에 걸쳐 ‘콘데나스트 럭셔리 컨퍼런스’가 열렸다. 행사를 주관한 보그 인터내셔널 에디터이자 세계적인 패션 칼럼니스트인 수지 멘키스는 기자 간담회에서 이탈리아 피렌체에 이어 제 2회 컨퍼런스 장소로 서울을 택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오랫동안 패션계에서 일하면서 직감적으로 한국은 에너지가 넘치고 흥미로운 일이 생기는 나라, 럭셔리의 미래를 가장 잘 보여줄 나라라고 생각했다.”
그 판단의 근거는 지난해 10월 ‘서울 패션위크’에 참가했던 경험이었다. 그의 이야기 중 흥미로웠던 건 “한국의 디자이너들은 ‘젠더 뉴트럴’(남녀의 구분이 모호하고 중립적인) 의상, 즉 남성과 여성이 함께 입을 수 있는 옷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점에 놀랐다”는 대목이었다.
실제로 요즘 젊은이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비욘드클로젯, 노앙, 스티브J요니P 같은 옷을 보면 딱히 남성용, 여성용이라 구분 지을 필요가 없는 옷들이 많다. 무대에서 남녀 모델이 각각 입고 나오긴 했지만 헐렁한 핏이나 실루엣을 보인 코트나 점퍼, 재기발랄한 아이콘 로고 등이 들어간 스웨트 셔츠 등을 보면 남녀가 바로 바꾸어 입어도 무방해 보인다. 수지 멘키스가 보고 간 것이 2016 SS 컬렉션이었으니 그 옷들이 올해 봄여름 거리를 장악할 것이다. 해골 모양이 들어간 셔츠를 입고 엉덩이가 축 늘어진 바지를 입은 여자, 꽃무늬와 레이스가 들어간 셔츠를 입고 빨강 바지를 입은 남자들은 이제 평범한 풍경이 될 것이다.
이런 젠더 뉴트럴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누군가는 못마땅해 할 게 뻔하기 때문에 하는 질문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남성은 여성의 부드러움을, 여성은 남성의 파워풀한 면을 좇는 현상은 이미 시작됐다. 남녀의 역할 구분이 없어지고 능력 면에서도 동등해진 요즘,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멋지다고 생각한 부분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일은 이제 자연스럽다. 남성이 요리를 배우고, 여성이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여성이 남성스러운 옷을 입고, 남성이 여성스러운 옷을 입는다고 혀를 찰 일이 아니다. 지금의 젠더 뉴트럴 트렌드는 80년대 장 폴 고티에가 남성에게 스커트를 입히고, 여성이 아르마니의 각진 수트 재킷을 입고 유리천장을 뚫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때만큼 심각한 논리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러니 올 봄여름 꽃무늬 셔츠를 입은 남자를, 카무플라쥬 프린트를 입은 여자를 비딱하게 보진 말자. 그저 취향이고 디자인의 트렌드일 뿐이니.
글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