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위기 가능성도 농업의 몸값을 올리고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가뭄·태풍 등 이상기온 현상이 늘고 30년 뒤 세계 인구가 90억 명에 도달하면 심각한 식량위기가 올 수 있다고 전망한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ICT 농업이 뜨고 있는데, 한국은 여전히 ‘쌀의 정치학’에 손발이 묶여 있다. 주식인 쌀 자급률이 지난해 100%를 넘었고 정부가 창고에 묵혀둔 쌀 재고량이 175만t에 이르지만 정부 지원은 쌀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이러다 보니 가축 사료를 포함한 곡물자급률은 지난해 기준 23.8%(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일본과 함께 꼴찌 수준이다. 쌀을 제외한 밀(1.2%), 옥수수(4.1%) 등도 자급률이 낮아 대부분 수입하고 있다. 도은진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곡물 수입처도 미국의 카길처럼 세계 유명 곡물 메이저에 의존하고 있다”며 “국제 곡물 가격 변동이 커지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기술을 개발하고 해외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농업전문 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농업계가 농민만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는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을 앞세워 대기업 진출을 막고 있어서다. 2013년 LG화학의 팜한농(옛 동부팜한농)이 아시아 최대 규모 유리온실 사업에 나섰다가 포기했고 올해 LG CNS의 새만금 스마트 농장 사업도 농민단체의 반대로 무산 위기에 놓였다.
이와 달리 중국이나 일본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밥상 지키기’에 나서고 있다. 중국은 자국 내 생산만으로 부족한 곡물 생산량을 충당하기 위해 세계적인 농업 기업들을 사들이고 있다. 올해 중국 최대 화학회사인 켐차이나가 세계 3위 농약·종자 기업인 신젠타를 인수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올해 중국 정부는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M&A 시장에 나설 수 있도록 낮은 금리로 자금을 빌려주는 정책도 내놨다. 일본은 곡물 자급률이 28% 수준으로 한국과 비슷하지만 걱정이 없다. 이미 40년 전에 식량 조달 시스템을 갖춰놨다. 1970년대 후반 한국의 농협중앙회 격인 젠노가 미국 시장에 진출해 대형 저장·유통 시설을 확보한 뒤 미국의 곡물 기업인 CGB사를 인수했다. 현재 전체 곡물 수입물량의 90% 이상을 젠노를 비롯한 자국 종합상사가 맡는다. 또 농지법을 바꿔 적극적으로 기업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2009년 ‘경자유전’ 원칙을 없앴고 올해부터는 대기업의 농지 소유를 허용했다. 김한호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일본은 40년 앞서 준비하고 중국은 풍부한 자금으로 농기업을 사들이며 농업 기술력을 키우는 데 한국만 제자리걸음”이라며 “더 이상 기술 격차가 나지 않도록 국내 기업은 풍부한 자금력을 동원해 기술을 개발·수출하는데 주력하고 생산은 농민이 맡는 새로운 역할 분담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관계기사 7면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