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기온 30도 넘으면 김밥에 시금치 빼

중앙일보

입력 2016.03.27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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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청은 제주에서 벚꽃이 관측목 기준으로 21일 개화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21일 오전 제주시 오라동 종합경기장 인근에 핀 벚꽃. [뉴시스]


4월 6일이냐, 4월 7일이냐. 남녘에서부터 벚꽃의 개화전선이 북상하는 요즘 언제 서울에서 벚꽃이 필 것이냐를 두고 마음을 졸이는 사람들이 있다. 전국의 벚꽃 개화시기 예보를 내놓은 기상정보업체 사람들이다. 벚꽃이 필 것으로 예보한 날짜가 실제 개화시기와 얼마나 일치하느냐에 따라 예보 실력이 판가름나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지는 진달래·개나리·벚꽃 등 지역별 봄꽃이 피고 절정을 이루는 시기, 설악산·지리산 등이 가을 단풍으로 물드는 시기, 김장 담그기에 적당한 날짜 등 계절예보를 기상청에서 직접 발표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이 업무를 민간 기상정보업체로 넘겼다. 올 봄꽃 개화부터 예보 정확도를 놓고 민간 기상사업자끼리 경쟁에 들어간 것이다. 예전에도 민간 기상정보업체에서 개화시기 등을 예보했지만 기상청에서 예보를 내놓는 바람에 큰 주목을 끌지 못했다.


현재 한국기상산업진흥원 홈페이지를 통해 벚꽃 개화시기 예보를 내놓은 기상정보업체는 두 곳이다. 웨더아이는 다음달 6일, 케이웨더는 다음달 7일 서울에서 벚꽃이 개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제주도의 경우 케이웨더가 3월 20일, 웨더아이가 3월 23일에 필 것으로 예보했는데, 실제 제주에서는 평년보다 나흘 이른 21일에 개화한 것으로 관측됐다. 제주도만 놓고 보면 케이웨더가 판정승을 한 셈이다.


박경원 웨더아이 예보실장은 “기상청에서 과거에 관측한 자료와 평년 개화시기 등에다 올해 장기예보 등을 반영해 개화시기를 예보하게 된다”며 “서울의 개화 예상시기는 종로구 송월동 서울기상관측소 내에 있는 벚꽃 표준목(木)의 개화시기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개화 관측 방법은 한 그루의 나무에서 한 가지에 세 송이 이상의 꽃이 피었을 때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서울시민들이 많이 찾는 서울 여의도 윤중로의 경우 송월동보다 보통 하루 정도 늦게 핀다. 윤중로의 표준목은 국회의사당 동문 건너 벚꽃 군락지에 서 있는 세 그루 나무(영등포구청에서 관리하는 118~120번 벚나무)다.


기상청 관계자는 “과거 일본에서는 도쿄 벚꽃 개화시기가 다가오면 각 방송사들이 표준목 앞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기다리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고, 어느 기상사업자가 가장 정확했는지 발표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민간 기상사업자들 사이에 본격적인 예보 경쟁이 붙으면서 케이웨더는 최근 ‘날씨보상제’라는 것을 시작했다. 모바일 날씨앱에서 강수예보 등이 틀렸을 경우 사전에 신청한 이용자들에게 소정의 상품으로 보상해주는 서비스다. 케이웨더 홍국제 홍보팀장은 “예보의 정확도를 사용자들로부터 검증받겠다는 각오”라고 말했다. 그만큼 예보의 정확도를 자신하고 있다는 의미다.


민간 기상사업자들의 경쟁은 10여 년 전부터 확산되고 있는 ‘날씨 경영’ ‘날씨 마케팅’ 등과 맞물리면서 갈수록 치열해질 전망이다. 날씨 경영이란 기업 경영에 필요한 의사결정 단계에서 날씨의 영향을 고려해 위험요소를 줄임으로써 경영의 효율을 높이는 것을 말한다. 또 날씨 마케팅은 소비자의 욕구와 구매행태 변화를 기업 마케팅 전략에 반영하는 기법이다. 예를 들어 대전 지역의 ‘봉달이명품 김밥집’의 경우 낮 최고기온이 30도를 넘거나 아침 최저기온이 25도가 넘어 열대야가 있을 것으로 예보되면 김밥 재료를 바꾼다. 상하기 쉬운 시금치 대신에 오이·부추 등을 사용하고, 항균 성분이 든 매실 엑기스와 과일 식초를 첨가한다. 파리바게뜨·던킨도너츠 등은 기상정보회사에서 제공하는 ‘날씨판매지수’를 응용한다. 비 오는 날, 눈 오는 날 등 날씨에 따라 고객들이 선호하는 상품이 달라지는 점을 감안해 재고 관리에 적용하는 것이다.


급식업체인 현대그린푸드에서는 기상예보를 바탕으로 급식사업장별 식사 인원수 변화를 예상한다. 날씨에 따라 고객이 선호하는 조리법과 주재료까지 바꾸는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해 식재료 낭비와 음식물 폐기물 처리 비용을 줄이고 있다.


날씨 경영은 골프장 같은 관광레저업은 물론 조선·항공·에너지 분야 등에서도 널리 응용되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도 날씨 정보를 주택건설 공정 관리에 활용해 연간 140억원의 유지관리비를 절감하고 있다.


이처럼 날씨 경영을 도입한 기업에서는 민간 기상정보업체에서 제공하는 기상정보서비스나 기상컨설팅서비스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국내 민간 기상사업체들은 아직 대부분 영세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상청과 기상산업진흥원이 2014년을 기준으로 523개 기상사업체 가운데 370곳을 분석한 결과, 직원이 20명 미만인 업체가 264곳으로 71%나 됐다. 전체 매출액은 3693억원, 업체별 평균 매출액도 9억9800만원에 불과했다.


국내 기상사업체를 대표하는 케이웨더의 경우도 2013년에 142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이후 지난해까지 2년째 100억원을 밑돌고 있다. 직원 숫자도 60명 수준으로 줄었다.반면 선진 외국은 기상산업 시장 규모가 큰 편이다. 2014년 한국기상산업진흥원이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기상기후산업 시장 규모는 2012년 기준으로 82억3000만 달러(약 9조6300억원)로 추정됐다. 한국의 26배다.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이 한국의 13배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한국 기상산업의 성장 가능성은 충분한 셈이다. 일본은 기상장비 제조·판매를 제외하고도 300억 엔(약 3100억원)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최홍석 웨더아이 이사는 “국내 민간 기상사업체 매출의 대부분은 기상 관련 기기나 장치의 제조·판매에 집중돼 있다”고 지적했다. 백종윤 한국기상산업진흥원 산업전략실장은 “기상 장비의 수요처는 정부·지방자치단체·공군 등이 대부분이어서 크게 늘어나기는 어렵지만 기상정보서비스나 기상컨설팅 분야는 성장할 여지가 많다”고 말했다.


기상장비 분야의 경우 중동이나 동남아시아 쪽으로 수출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기상장비업체인 신동디지텍의 강용수 부장은 “2014년 중동 카타르에 해양기상관측 장비 3대를 수출하는 등 해외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며 “기상관측 장비는 기후변화 대응과도 관련 있는 만큼 세계은행이나 아시아개발은행 등의 공적자금을 활용해 수출을 늘려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상청도 민간 기상서비스 활성화를 통한 기상산업 육성을 올해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kang.chans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