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 ‘경우의 수’ 줄여 초고수의 직관 뛰어넘어

중앙일보

입력 2016.03.13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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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퀴즈프로그램 제퍼디에서 IBM은 왓슨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사진 뉴욕타임스]


인간의 사고를 뛰어넘기 위한 첫 시도는 1990년 IBM에 의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당시 IBM은 세계 체스 챔피언을 이기는 것을 목표로 인공지능(AI) 개발에 착수했다. 그 결과 97년 IBM은 ‘딥블루’를 개발해 세계 체스 챔피언인 가리 카스파로프를 이기는 성과를 거뒀다.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의 사고를 이긴 사건이었다. 딥블루는 초당 2억 개의 수를 생각해 내는 빠른 연산처리 속도로 12수를 내다볼 수 있었고, 체스 챔피언을 압도했다.


IBM의 도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IBM은 딥블루를 기반으로 새로운 인공지능인 ‘왓슨’을 개발했고 2011년 2월 16일 미국 퀴즈쇼인 제퍼디에 참여했다. 그리고 최다 연속 우승기록을 가진 켄 제닝스와 최고 누적 상금기록을 보유한 브래드 리터와 맞대결을 펼쳤다. 결과는 놀라웠다. 퀴즈 질문에 바로 대답을 해 인간 참가자들을 압도해 버린 것이다.


IBM에 이어 이번에는 구글이 인공지능으로 세계를 들썩이고 있다. 바로 바둑의 최고수인 이세돌 9단을 가볍게 꺾은 것이다. 2014년 1월 구글은 딥마인드를 인수했다. 그리고 인공지능인 ‘알파고’를 개발해 바둑을 학습하게 했다. 2015년 10월 판후이 2단과의 대국에서 알파고를 처음 선보여 5-0으로 승리하고, 6개월 만에 바둑의 최고수 이 9단을 이긴 것이다.


알파고를 바둑에 적용하는 방식은 체스의 딥블루와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바둑은 체스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경우의 수가 많아 인공지능을 적용해 바둑 프로기사를 흉내 내기란 기술적으로 매우 어렵다. 가령 체스는 체스 말마다 움직일 수 있는 범위가 제한적일 뿐만 아니라 체스판 역시 바둑에 비해 훨씬 작다. 그래서 인공지능이 체스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고려해야 할 수는 바둑에 비해 훨씬 적다.


AI의 힘은 하드웨어가 아닌 알고리즘판 위에 놓을 수 있는 수를 ‘B’로 표시하고 경기에서 둬야 할 횟수를 ‘d’로 표시하자. 그럴 경우 인공지능이 고려해야 할 경우의 수는 Bd(B의 d제곱)다. 체스의 경우 판 위에 놓을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약 35수이고 평균적으로 둬야 할 횟수는 약 80수다. 그래서 인공지능이 고려해야 할 수는 3580(35의 80제곱) 정도다. 반면 바둑의 경우 바둑돌을 놓을 수 있는 위치가 거의 제한이 없고 판 역시 체스보다 크기 때문에 알파고가 약 250150(250의 150제곱) 수나 고려해야 한다. 이는 우주에 있는 원자의 수보다 훨씬 많은 숫자이고, 아무리 뛰어난 수퍼컴퓨터라도 이를 계산하기 위해서는 몇 년 이상 걸린다.


경우의 수가 무한대에 가깝기 때문에 바둑은 기계가 접근할 수 없는 인간의 영역에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알파고는 이런 한계점을 깨고 이 9단을 쉽게 이겼다. 어떻게 이게 가능한 것일까?


왓슨과 알파고의 하드웨어 성능은 수퍼컴퓨터 수준이다. 컴퓨터의 성능은 빠른 연산처리 속도에 비례한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반드시 컴퓨터의 성능에 비례하지는 않는다. 진짜로 중요한 것은 바로 알고리즘이다. 컴퓨터가 빠르게 자료를 분석하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컴퓨터가 자료를 더 잘 이해하고 정확하게 응용할 수 있게 하는 방법론, 즉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게 가장 핵심이 된다.


실제로 가장 뛰어난 인공지능을 가진 IBM 왓슨의 성능을 보면 2880개의 파워750 칩을 장착한 서버 90개로 이뤄져 있다. 연산처리 속도는 초당 80조 개로 1초 만에 책 100만 권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러나 최고 성능을 가진 수퍼컴퓨터의 연산 속도가 초당 2600조 개인 것과 비교하면 최고 수준의 하드웨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알파고도 마찬가지다. 구글은 알파고의 바둑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하드웨어에 투자하기보다는 알고리즘을 더욱더 강화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바둑에서 경우의 수는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하는 방식으로는 아무리 연산 속도가 빠른 수퍼컴퓨터라도 단시간에 이 9단을 압도하는 결과를 내놓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알파고는 두 가지 알고리즘을 사용한다. 하나는 몬테카를로 탐색기법(Monte Carlo Tree Search·MCTS)이고 다른 하나는 인공신경망 알고리즘이다. 몬테카를로 탐색기법은 알파고가 바둑의 대국에서 고려해야 할 경우의 수를 줄이는 역할을 한다. 줄이는 방법은 단순하다. 알파고는 바둑판에서 피해야 할 수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 결과 알파고는 체스보다 약간 많은 경우의 수만을 고려하면 된다.


알파고, 피해야 할 수들을 스스로 학습여기서 중요한 점은 알파고가 피해야 할 수들을 스스로 파악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논리로 이러한 수들을 판단하는 것일까? 해답은 바로 인공신경망 알고리즘에 있다. 인공신경망 알고리즘은 얼굴 인식에서 주로 사용되는데 기계가 스스로 비정형적인 방식으로 학습하게 한다.


알파고는 바둑판으로 상황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신경망 알고리즘으로 이미지를 분류하고 감독학습과 강화학습으로 바둑 능력을 향상시킨다. 감독학습 과정을 통해 기존 대국의 정보들을 분석하거나 프로기사의 지도로 바둑 실력을 강화해 나간다. 그 후 강화학습에서 알파고끼리 서로 대국을 하며 판단의 정확성과 취약점인 부분을 자가진단한다. 정리하면 인공신경망 알고리즘으로 알파고가 피해야 할 수들을 파악한 뒤 몬테카를로 탐색기법에서 분석해야 할 경우의 수를 줄여 나가는 것이다. 이번 대국으로 이런 방식의 판단이 최고수의 직관을 넘어선다는 점을 증명한 셈이다.


어찌 보면 이 9단의 패배는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알파고는 사람과 달리 쉬지 않고 지금까지 약 3000만 대국을 분석했다. 사람이 1000년 걸리는 학습량이다. 이 9단의 학습량으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알파고 생각의 속도는 이 9단보다 1000배 빠르다. 자기 자신과 대국을 해서 이 9단보다 금방 자신의 약점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도 알파고가 가진 장점이다.


‘왓슨 vs 알파고’ 구도로 가는 AI 시장현재까지 인공지능 산업은 IBM이 주도하고 있다. 현재 IBM은 왓슨으로 다양한 영역에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미 2012년 3월부터 왓슨이 60만 건 이상의 진단서, 200만 페이지의 의료 전문서적, 150만 환자 기록에 대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미국 내 1, 2위 암진료센터인 케터링 암센터와 앤더슨 암진료센터에서 의사들이 진료할 때 객관적인 조언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참고로 2014년 미국 임상종양학회에 따르면 왓슨의 암 진단 정확성은 82.6%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IBM은 금융 서비스에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싱가포르개발은행(DBS)에도 왓슨을 적용해 우수 고객 맞춤형 투자와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호주뉴질랜드은행에서도 왓슨을 활용한 투자자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외에도 호주 특허청의 특허심사, 법률자문 서비스를 제공한다.


비록 알파고는 왓슨에 비해 시장 진입이 늦었지만 곧 치열한 경쟁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이 9단과의 대국에서 알파고의 인공지능 우수성은 이미 입증됐기 때문이다. 알파고와 왓슨은 인공지능이라는 점에선 동일하지만 둘은 매우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왓슨의 경우 사람의 언어(자연어)를 이해해 사용자의 질문을 파악하고 해답을 제시하는 도구의 의미가 강하다. 반면 알파고는 복잡한 상황을 이해하고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특성이 강하다. 그래서 알파고의 경우 왓슨과 달리 자율주행차와 같은 무인로봇에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왓슨과 알파고로 나뉘어 인공지능 시장이 구성될 것으로 보인다. 사람의 보조 역할로서의 인공지능과 모든 것을 스스로 분석하고 판단하는 인공지능으로 말이다. 구글 알파고의 등장은 로봇시대의 등장을 알리는 시작종이다. 이제부터 로봇의 등장으로 인한 책임 소재, 로봇 관리 등과 관련한 법·정책적인 문제에 대해 미리 대비해야 되지 않을까?


 


 


유성민 IT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