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은 이 같은 층위를 영리하게 파고든다. 82세의 마이클 케인과 76세의 하비 케이틀을 주인공으로 캐스팅하고 이들을 각각 지휘자 프레드와 영화감독 믹이라는 역할로 전면에 내세운다. 도무지 젊음이라고는 어울리지 않을 법한 인물들이 마치 요양병원 같은 고급 호텔에서 논하는 젊음이라니. 그 자체로도 제법 흥미진진하다.
프레드가 이 곳을 찾은 건 안락함 때문이었다. 지휘봉도 내려놓고 작곡가 생활도 마감한 그는 매일 마사지를 받고, 산책을 한다. 반복되는 일상이 때로 무료하게 느껴지지만 스위스의 대자연이 선사하는 편안함 속에 그대로 머무른다. 그는 영국 여왕이 대표곡 ‘심플 송(Simple Song)’을 연주해달라는 특별 요청도 단호하게 거절한다. 본인은 이미 은퇴했을 뿐더러 개인적 이유로 그 곡은 더더욱 연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믹은 새로운 작품을 만들기 위해 분주하다. 젊은 스태프들과 숙식을 함께하며 공동작업의 과정을 즐긴다.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올랐지만 그동안의 영화를 집대성한 마스터피스를 만들어 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이다. 한 사람은 과거를 있는 그대로 보존하고 싶어 한다면 한 사람은 과거를 더 나은 현재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셈이다.
그렇게 타인의 삶을 관찰해 나가던 프레드도 결국 마음을 바꿔 먹는다. 호텔 복도에 들어설 때마다 매일같이 들려오던 ‘심플 송’의 바이올린 연주 덕분이다. 꼬마는 프레드가 그 곡을 작곡한 장본인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 “시작하기 쉬운 곡”이란 말에 “정말 아름다운 곡”이라고 응수한다. 사랑하고 있을 때 만든 곡이야말로 가장 단순하지만 심오한 아름다움을 지닐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셈이다.
어쩌면 감독은 전작 ‘그레이트 뷰티’에서 이미 힌트를 줬는지도 모른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사랑에 빠졌을 때고, 그 때야말로 젊음을 느끼기에 가장 좋은 순간이란 것을 말이다. 45세의 감독은 ‘더 이상 젊지 않은 나이에는 미래를 어떻게 바라보게 될까’ 궁금했다고 했다. 82세의 배우는 “요즘은 실제 영화를 선택할 때도 유작으로 남겨도 좋을 만한 각본을 선택한다”고 답했다. 극 중 뿐만 아니라 현실에 있는 우리 또한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 고민하고 그간 쌓아온 젊음이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곱씹으며 살아간다는 방증이 아닐까.
이 영화에서 무엇을 취했는가에 대한 대답 역시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압도적인 경관의 아름다움에 빠졌을 테고 누군가는 귓가에 맴도는 달콤한 선율에 심취했을지 모른다. 소프라노 조수미가 부르는 ‘심플 송’이 그 감동을 더했음은 물론일 터. 이미 다들 알고 있겠지만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살면서 맞는 어떤 순간도 완벽하게 준비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허나 그 역시 내 인생의 가장 젊은 시간이라면 조금 더 즐겨도 되지 않을까. 내가 누구인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 이 순간들이 모여 어떤 그림이 완성될지 사유하고 상상하며 말이다. 한 해를 정리하기에도, 시작하기에도 좋은 영화다. 1월 7일 개봉. ●
글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사진 그린나래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