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도 골머리, 안 받아도 골머리다.”(안철수 의원 측 관계자)
“탈당도 할 수 있지 왜 못해? 막 나가야지, 안 그러니 이것들(문재인 측)이 제멋대로 하잖아.”(안철수 의원 측근인 문병호 의원)
안철수 의원이 장고 중이다. 18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안 의원과 박원순 서울시장이 참여하는 ‘3인 공동 지도 체제’, 이른바 ‘문(文)·안(安)·박(朴) 연대’를 제안했기 때문이다. 내년 4월 20대 총선까지 함께하는 5개월짜리 임시지도부다. 이와 함께 문 대표는 안 의원의 혁신안에 대해서도 “백번 옳은 얘기”라며 맞장구를 쳤다. “너무 지나치게 혼수를 요구한다”며 안 의원을 비난했던 최재성 총무본부장도 고개를 숙였다. 안 의원을 끌어들이기 위해 문 대표가 전방위로 나서는 형국이다.
제안 이튿날 박 시장은 곧바로 동참의 뜻을 표했다. 반면 안 의원은 나흘째 묵묵부답이다. 안 의원의 답변이 늦어질수록 “‘문·안·박 연대’가 무산될 것”이란 관측이 높아지고 있다. 안 의원 주변에선 “(문 대표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80% 이상”이라는 반응이다.
설왕설래가 많지만 키를 쥐고 있는 이는 안 의원이다. 제안을 받아들이면 당내 반발에도 불구하고 ‘3인 체제’는 탄력을 받으며 구심력을 갖게 된다. 반대로 거부할 경우엔 문·안 양측 모두 내상을 입거나, 최악의 경우 물러설 수 없는 한판 대결을 벌여야 할 처지다.
안 의원은 왜 머뭇거릴까. 민주당 대선평가위원장을 지냈던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안 의원으로선) 문 대표의 제안에서 다급함만 보일 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당 체질 개선이 실현될 수 있다면야 왜 마다하겠는가. 하지만 진척된 방안이 없다. 제안을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안 의원이 시한부 공동대표가 된다 한들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사실상 문 대표 체제를 인정하고, 공천권 지분을 얻는 것에 불과할 뿐”이라고 내다봤다. 과거 안 의원의 책사였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역시 “국민에겐 ‘문·안·박 연대’가 기득권 나눠먹기로 인식될 가능성도 크다”고 지적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허상이며 정치적 졸작”이라고 비판했다. “연대라는 건 외부 세력과 하는 거다. 친박과 비박, 즉 김무성과 서청원이 갑자기 연대한다고 하면 우스운 꼴 아닌가. 같은 편끼리 무슨 연대를 하겠다는 것인지 빈약한 정치적 상상력만 드러냈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안 의원도 이미 3년 전 단일화 과정에서 충분히 학습하지 않았나. 이번엔 들러리를 서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어설프게 연명하느니 승부 할 것” 전망도문 대표의 제안을 거부한다면 안 의원의 다음 수순은 무엇일까. 실제로 안 의원이 고민하는 것도 이 지점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문·안·박 연대’ 자체가 놀랄 만한 제안도 아니며, 지난해부터 야권 일각에서 꾸준히 제기돼왔기 때문이다. 안 의원 측 관계자는 “단지 제안을 수용하고 거부하는 수준에 그치질 않을 것이다. 새정치연합의 방향성과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한 복안 등 전체적인 청사진을 내놓을 것”이라고 전했다.
예상되는 안 의원의 시나리오는 우선 ‘조건부 수용’이다. 누차 강조해온 ‘낡은 진보 청산’과 관련해 문 대표가 구체적인 행동을 보이면 그걸 보고 난 뒤 공동지도부에 들어가겠다는 입장이다. 논의의 가능성은 열어놓는 것이지만 어정쩡한 모양새를 취하며 말만 핑퐁처럼 오가다 보면 자칫 피로감을 줄 수 있다.
강펀치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이미 안 의원 주변에선 “특단의 대책”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흘러나오고 있다. “내년 총선에 불출마하겠다. 나부터 백의종군하겠다. 그러니 문 대표도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대표직을 내려놓으라”는 식의 강력한 역제안을 내놓는 것이다. 국면을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하면서 “이걸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이 문 대표와는 함께할 수 없다”며 탈당의 명분도 자연스레 쌓게 된다. 호남을 비롯한 당내 비주류의 수장으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질 기회도 얻게 된다.
문제는 결단력이다. 과거에도 갈등이 극단에 이를 때마다 안 의원은 이를 정면 돌파해내기보단 우회의 길을 선택하곤 했다. 배짱 있게 밀고 나갈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는 시선이다. 이와 관련해 안 의원의 한 측근은 “예전보다 독해졌다. 사실상 벼랑 끝으로 몰리지 않았나. 어설픈 국회의원으로 연명하느니 특유의 승부사 기질을 보여줄 것”이라고 자신했다.
한편으론 자칫 삐끗했다간 안 의원에겐 그나마 남은 정치적 영향력마저 고갈될 수 있다. 무엇보다 현재 시점이 명운을 걸 만큼 결정적 시기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윤여준 전 장관은 “‘문·안·박 연대’가 과연 파괴력을 가질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임동욱 한국교통대 교수는 “제안의 수용 여부가 핵심이 아니다. 정치인 문재인과 동행하느냐, 갈라서느냐가 안 의원에겐 본질적 문제다. 더 이상 회피할 시간이 없다. 답을 내려야 할 때”라고 전했다.
안철수, 이번 주 초 입장 밝힐 듯일각에선 안 의원이 ‘문·안·박 연대’를 수용해야 한다는 시각도 나온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문 대표가 크게 양보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안 의원도) 통 크게 받아들이고 힘을 합쳐야 한다. 셋이 합쳐도 새누리당 이기기가 버겁다. 마땅한 대안도 없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과거 안 의원 보좌관을 지냈던 서양호씨 역시 “친노-비노라는 허구적 구도와 계파 온상정치를 무너뜨리기 위해선 대권주자 3인방이 전면에 나서는 것이 현재로선 최선의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문희상·이석현·김성곤 의원 등 당내 3선 이상 의원 18명 역시 “문·안·박 체제 제안을 환영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안 의원은 23일이나 24일께 ‘문·안·박 연대’에 대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최민우·추인영 기자 minwo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