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 무대. 공연의 포문을 열기 전 양성원은 무대에 올라 베토벤에 대해 간결하면서도 흥미로운 해설을 들려주었다. 영상까지 준비해 청중들의 이해를 도왔다. 하이든에게 가르침을 받고 호머와 셰익스피어를 탐독했으며 그리스 철학에 영향을 받은 음악가였음을 다시 상기시켰다. 조금이라도 작곡가를 이해한 채로 연주회를 즐겨달라는 당부는 그만큼 연주를 통해 베토벤을 무대로 불러내 보이겠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했다.
첫 곡 ‘Opus 1번’부터 이 불세출의 작곡가를 온전히 만날 수 있었다. 젊고 야심찬, 작곡에 대한 열망으로 들뜬 젊은이가 거기 있었다. 햇살처럼 쨍하고 밝은 음색을 가진 바이올린이 나서면 절제와 균형을 갖춘 담백한 첼로가 선율을 이어가고, 묵직하고 신중한 피아노가 그 사이를 채워나갔다. 서로 다른 세 악기는 각각 밸런스를 유지하며 베토벤의 초상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유령’으로 끝을 맺기까지 다양한 얼굴을 한 베토벤이 무대를 왔다갔다 하는 듯했다. 세종체임버 홀은 각기 다른 특색을 지닌 세 악기가 합을 맞춰가는 균형감을 전달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관객들 역시 보기 드문 집중으로 이에 화답했다.
9일 연주 역시 강약조절을 살린 절묘한 프로그램이었다. 패기 넘치는 젊은이부터 청력을 잃고도 음악을 써내려간 노장을 만날 수 있었다. 전날의 연주가 강렬한 필치를 가진 장승업의 그림을 연상케 했다면, 이날의 연주는 아틀리에 한복판에서 끌과 정을 들고 혼신을 다해 조각을 빚어가는 로댕을 떠올리게 했다.?
피날레인 ‘대공’에 이르러 그들의 음악은 대리석을 파고드는 끌과 정처럼 강렬하게 피부 깊은 곳으로 들어왔다. 걸작 앞에 선 우리가 손쓸 수 없이 압도당하며 한동안 무력해지는 것처럼, 온몸으로 다가오는 베토벤의 형상은 하나의 조각상이었다. 귀족들의 향락을 위한 음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류를 위한 음악을 분출했던 대가의 형상. 의지·고뇌·한탄·에너지·낭만·서정·속삭임·기쁨·애수 같은, 가장 많은 색깔을 품은 화가와도 같았던 대 작곡가의 현현을 마주한 느낌이었다.
사실 음악으로 다른 차원의 예술을 경험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솔리스트로서 각자 이미 뛰어난 커리어를 가진 이들이 어째서 트리오를 결성했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이런 순간이 있기에 이들은 ‘함께’가 되는 것을 선택했으리라.
서로 다른 존재인 이들이 함께하는 순간에만 다다를 수 있는 이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 자신들이 빚어낸 음악을 나눔으로써 더 크고 눈부신 음악과 마주하기 위해 서로의 일정을 쪼개 대륙을 넘나들며 지금까지 함께 음악을 만들어 왔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무대였다. ●
글 김나희 클래식평론가 nahui.adelaide.kim@gmail.com사진 세종문화회관